탈시설 운동의 현재 진행 양상은 시설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시설을 부정하는 것이 시설에 대한 투쟁이고, 시설 운영자는 공공의 적으로 간주해야 탈시설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문제가 있는 시설이 탈시설의 공격 대상이 된다. 거주시설 종사자들은 의욕을 잃고 저항세력이 되고 있다.

시설의 문제란 족벌 위주의 운영방식으로 장애인을 위한 것인지, 운영자 가족의 철옹성 같은 사업체인지를 따져서 문제를 삼기도 하고, 회계 부정이나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는 시설을 대상으로 시설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탈시설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계란이 외부에서 껍질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듯이 거주시설 내부에서 탈시설 운동이 일어나야 가장 바람직하다.

시설 운영자들의 운영 목표가 무엇이냐고 하면, 자립이라고 하고, 자신들도 탈시설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로 탈시설의 대세를 막을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나 지자체의 정책도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외부 전문가나 당사자 동료 활동가를 투입하여 시설을 방문하여 탈시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설 운영자들과 자립생활을 추구하는 운동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 탈시설을 가속화시킬 방안은 없는 것일까? 교남소망의 집 원장의 탈시설 이론을 빌어 탈시설 모형을 논해 보고자 한다.

탈시설 조건을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자와 탈시설 지원자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당사자 측면이다. 인과적 조건으로 자신이 원치 않는 시설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이 있다.

이들은 비자발적 입소자로 오랫동안 시설생활을 해 왔다. 거주생활에서의 단체생활도 불편하고, 통제받는 삶이 싫고, 정해진 일상도 싫다.

맥락적 조건으로는 시설생활의 안주에서 불편함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경계인이 되어 대인관계가 부재하고 지역사회에 포함되지 못함에 대한 자각도 필요하다. 그리고 탈시설을 지원해 줄 지원자와 만남이 필요하다. 지원자의 필요성을 알고 지원자와의 관계설정이 필요하다.

중재적 조건으로 시대의 발전과 성장과정에 대한 불안감과 활동지원에 대한 서비스 부재의 고민이 생긴다. 이는 예측할 수 없는 일상에 대한 불안감을 안겨준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거나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갈망으로 동거 파트너 선택의 고민도 있다. 틀에 박힌 장기 거주시설 생활로 인하여 장애인식과 수용 태도에 대한 재인식도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으로 탈시설 체험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립생활, 즉 개인생활 경험을 통한 자유와 막연함에 대한 두 가지 감정이 양존하게 된다. 이때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도전과 변화를 원치 않는 반대에도 부딪친다.

이 시기에 지원자와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데, 지속적 정보제공과 정서적, 행동적 지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취업이나 소득지원 등의 경제적 지원과 여가, 건강, 일상, 주거 등의 상시적 지원도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 결과 어제와 다른 거주시설 생활을 계속하거나 완전한 자립을 쟁취하여 개인생활의 만족감과 질 높은 개인생활을 영위하게 되지만, 이 경우도 탈시설 사후 지속적 지원은 필요하다.

이번에는 지원자 측면을 검토해 보자. 인과적 조건으로 지원자는 거주시설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탈시설의 장벽도 인식해야 한다. 시설은 서비스의 제공방식에서 한계점도 있고 탈시설 장벽으로는 보호자나 후견인의 반대를 포함하고 있다.

맥락적 조건으로 종사자가 지원자로 역할 변화를 가질 경우, 종사자가 먼저 인식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탈시설로 인한 달라지는 삶도 인식해야 한다. 개인차를 이해하고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중재적 조건으로는 거주시설의 내외부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자립생활이 거주시설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거주시설은 그러한 탈시설의 준비장소로 변화하여야 한다. 탈시설에 적극 동참하고 지지하는 시설이 되어야 한다.

거주시설도 지역사회 서비스 시설로 전환하거나 지역사회 생활 즉 자립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탈시설을 위한 이용자 개인을 위한 자원을 개발하고 지원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어나는 중심 현상으로는 거주시설은 지역사회 생활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서비스가 되어야 하고, 장애인 개인의 삶의 질과 인권에 기반한 역량개발과 내일의 꿈을 키우는 당사자 입장에서 일하는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일어나는 상호작용으로는 단순 거주시설로서의 서비스가 아니라 다면적 종합적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동에 대한 지원, 재정적 지원, 거주지원, 의사소통 지원 등의 탈시설 이후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하고 이용하는 방법과 연계, 대인관계와 전환교육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탈시설 동인이 제공되고, 자립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게 되고, 지역사회 생활에서 자유와 평등과 참여를 누리는 삶을 영위하는 테크닉과 향유를 누리게 된다.

자립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서비스 외에도 노인 서비스나 아동 서비스 등 특별한 서비스도 연계되어야 하고, 개인의 취향과 독창성과 개성이 반영된 욕구를 충족할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누리도록 전달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립생활에서 닥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원하여 막아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방치되는 취약문제를 미연에 막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문제의 거주시설을 해체하는 방법으로 탈시설을 선택하는 방식으로는 탈시설의 속도는 너무나 느리기도 하고, 준비가 미흡한 가운데 지역사회에 방치될 가능성도 매우 높으며, 탈시설 후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탈시설 정책은 국가적 정책으로 선언되어야 하고, 거시적 측면에서 종합적 구체적 정책과 지원 예산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남게 되는 빈 거주시설과 종사자들을 활용할 방안도 마련하여 재원과 인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장애인 쉼터나 직업재활시설로 운영하도록 전환하거나 아니면 재산을 처분하여 끝까지 탈시설을 지원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종사자들은 새로운 서비스 인력으로 재교육 후 배치하여 복지인력의 재활용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복 중증 장애인의 입소자격을 엄격히 하되, 입소와 퇴소가 자유롭게 하여 자립생활에서 돌봄이나 지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 거주시설을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시설의 존재는 필요하다.

노인이 되어 보호자 부담이 너무 커서 요양원에 의탁하듯이 장애 노인도 자립이 아닌 요양을 위주로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탈시설의 종합적 국가계획과 예산을 이제는 수립하여야 할 때이다. 거주시설이 탈시설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흥정해서도 안 되고, 탈시설이 거주시설 운영권 교체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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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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