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있는 그 ⓒ최선영

그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많이 보지는 못합니다. 보지 못하는 그가 영화를 보는 방법은 귀를 통해서입니다 그는 귀로 영화를 봅니다.

남녀 주인공의 대사와 배경음악 그리고 미세하게 지나치는 여러 가지 소리는 그의 상상력과 만나 그만의 새로운 영상을 만듭니다.

하지만 남녀 주인공의 대사가 끝나고 긴 침묵으로 이어질 때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상상력이 막다른 길을 만나 멍-하니 정지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답답함 때문에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그랬습니다.

“안녕하세요.”

“아... 네.”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졸업할 무렵 경쟁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레슨을 받기로 했습니다. 프리토킹 수업을 받고 싶었습니다.

인터넷 강의 같은 배움의 길은 다양했지만 그가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미드를 보며 귀가 어느 정도 열리고 듣기는 되는 듯했지만 말하기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선생님을 찾다 동생 영어 과외를 해주는 선생님께 부탁했는데 문화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오고 가는 길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면 될 것 같아 바로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그곳에 계신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받게 된 동기들의 배려로 첫 수업부터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다정한 미소를 보내는 그녀 ⓒ최선영

“집이 어디세요?”

함께 수업을 듣는 그녀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같은 방향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저... 장애인 콜택시 부르면 되는데...”

“괜찮아요. 많이 돌아가는 길도 아니고 10분 정도만 돌아가면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밝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배려에 그는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와 그녀 ⓒ최선영

“영화 좋아하세요?”

“네 많이 좋아해요. 사실 영어 듣기도 미드를 통해 했고요.”

“잘 됐네요. 저랑 영화 보러 가실래요?”

“영화요?”

“네.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제’라는 게 있어요.”

“배리어프리? 처음 듣는데...”

“잘 모르시는 분도 많으시더라고요. 장벽(barrier)과 자유(free)가 합쳐진 용어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장애인의 생활에 불편을 주는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에요. 고령자나 장애인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공공시설의 문턱을 없애자는 것에서 시작되었어요. 베리어프리 영화는 기존 영화 화면에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 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한글자막을 넣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화인데 이번 영화제에도 좋은 작품이 많이 상영되거든요.”

“그런 것도 있었군요. 정말 가보고 싶네요. 그런데 수진 씨는 어떻게 그런 걸 알게 되셨어요?”

“제 동생이 청각장애인이에요. 그래서 저도 관심을 갖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아... 그러셨군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장애와 상관없이 모두 다 함께 즐기는 영화 축제'라는 슬로건 아래 2011년 ‘배리어프리영화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해마다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어요. 저는 동생 때문에 2014년 처음 이 영화제를 접하게 되었고요.“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다가오는 그녀의 존재도 설레고 영화가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해설과 함께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또 많이 설렙니다.

그녀와 함께 한 영화제에서 그는 개봉작 소나기를 보았습니다. 해설과 함께 보는 소나기는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진한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고마워요. 수진 씨 덕분에 이렇게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네요.”

“아니에요. 함께 할 수 있어서 저도 좋았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대학원을 진학했습니다.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강의를 나가고 여러 활동을 하느라 바쁜 일정 때문에 문화센터는 나가지 않지만 그녀와 여전히 함께 하며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서로를 아껴주고 응원합니다.

어쩌면 그는 그녀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은 혹시라도 그녀에게 부담을 주게 될까 봐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저... 할 말 있어요.”

“응, 뭔데? 해봐요.”

“집에서 선을 보라는데...”

“선?”

“네... 선.”

“벌써? 아직 나이가...”

“저희 집은 다들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고 그래요. 언니도 졸업하고 바로 결혼했고..”

“......”

“저... 어떡해요? 선... 봐요 말아요?”

“그게...”

“설마 저 혼자 감정인 건가요? 우리 서로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수진 씨가 부담스러울까 봐 수진 씨를 향한 마음 많이 누르고 눌렀어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왜 감정을 눌러요? 제 동생도 장애인이에요. 저 그런 편견 없어요. 제 부모님도 마찬가지고요.”

“수진 씨...”

“어렵겠죠... 사실 그동안 저도 많이 생각했어요. 내가 끝까지 잘 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혹시라도 동생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생각하고 또 고민했어요. 사람 마음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동정심으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데 감정을 누르고 자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 마음... 확실해요 사랑 말고 다른 건 없어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안아줍니다.

“우리 이번에는 문화센터 동기도, 친구도 아닌, 연인으로 함께 가요.”

“배리어프리 영화제?”

“네^^”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포스터. ⓒ최선영

오는 7일~11일까지 열리는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설렙니다. 연인이 된 그녀와 함께 볼 영화를 생각하며 많은 장애인이 다양한 문화를 누리기를 소망해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장애인도 많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문화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이기를 바라며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통해 영화의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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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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