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 ⓒ최선영

등이 굽은 할머니는 손수레를 끌고 언덕길을 힘겹게 오릅니다. 수레 안에는 접힌 종이박스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크고 작은 종이박스와 많이 책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비비고 있습니다.

종이를 가득 실은 수레는 할머니보다 몸집이 더 컸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깊어지는 늦여름은 여전히 뜨거운 햇살을 한가득 쏟아냅니다. 그 햇살에 그늘 한 점 없는 언덕길을 오르는 할머니의 등은 더 휘어지고 발은 무겁습니다.

멀리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할머니는 문득 손자 생각이 납니다. 한 번 돌아보고 싶지만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수레 때문에 고개조차 돌리기 힘이 듭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수레가 뒤로 미끄러질 것 같아, 할머니의 귀를 두드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그냥 닫아버립니다.

“지영아, 민호야 이리 와 봐.”

“응 왜?”

“너희들 저기 할머니 보이지?”

“응”

“빨리 가서 할머니 리어카 좀 밀어드리고 와”

“왜?”

“할머니 혼자 저렇게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려면 얼마나 힘드시겠어. 도와드리고 와.“

“아~하. 알겠어.”

“그냥 막, 밀어드리지 말고. '할머니 저희가 뒤에서 좀 밀어드려도 될까요' 물어보고.”

“응. 응.”

지영이와 민호는 쪼르르 달려가 할머니께 여쭈어봅니다.

“할머니 저희들이 도와드릴까요?”

“어이쿠, 얘들아. 다치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조심해서 밀게요.”

“고맙기도 하지.”

지영이와 민호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힘껏 할머니 수레를 밀어드립니다.

할머니 수레를 밀어 주는 민호와 지영 ⓒ최선영

작은 아이들이지만 마음을 모으고 힘을 더하니 할머니 수레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예뻐서 할머니의 주름진 이마가 활짝 펴집니다.

언덕길을 다 오른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알사탕 하나라도 주고 싶어 주머니를 뒤져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혜지는 동생들을 부릅니다.

“얘들아, 인사드리고 어서 와.”

혜지가 부르는 소리에 지영과 민호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쪼르르 다시 달려옵니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손을 또 한 번 더 흔들고 길모퉁이를 돌아서 가셨습니다.

“잘 했어. 앞으로도 길을 가다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만나거나 하면 꼭 도와드려.”

“응 알겠어.”

“근데, 누나.”

“응 왜?”

“이상하게 쪼금 힘은 들었는데 할머니가 막 고맙다고 하시니까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팡팡 해지면서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어.“

“어, 나도 나도.”

“어때? 좋은 기분이지?”

“응. 기분이 좋았어.”

“그게 바로 행복이라는 거야.”

“앞으로 많이 행복해지려면 많이 도우면 되는 거네.”

“호호, 우리 민호, 이제 학교에 가도 되겠다.”

혜지, 민호, 지영 ⓒ최선영

11살 혜지는 동생 민호와 할머니 댁에 놀러 왔습니다. 민호와 또래인 지영이도 혜지와 민호가 온다는 소식에 같이 놀고 싶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이들이 집 앞에서 놀다가 혜지가 수레를 끄는 할머니를 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혜지는 어릴 때 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진 탓에 할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을 들고만 있어야 했는데 동생들이 혜지의 마음을 대신해주어서 고맙고 좋았습니다.

어린 동생들은 누나와 사촌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누나와 사촌 언니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열심히 했습니다. 누나와 사촌 언니가 하라고 해서 그냥 했을 뿐인데 이들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혜지도 자신이 직접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동생들의 손을 빌려 그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 달 후, 다시 그곳에서 그들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그날도 수레에 종이들이 가득 쌓인 채로 그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 길이었지만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지나기에는 몹시 힘든 길입니다.

“어, 종이 할머니다.”

민호와 지영이는 이번에는 혜지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쪼르르 달려가 수레를 밀어줍니다.

“또 만났네. 고맙다 얘들아.”

할머니는 혹시라도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주려고 사탕을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고 하시며 사탕을 아이들 손에 쥐여줍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탕 하나만 더 주시면 안 돼요? 저기 누나가 있어서요.”

“그래그래 더 줄게. 누나는 저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데 더 어린 너희들이 이렇게 이 할미를 도와주는구나.”

“누나는 다리가 불편해서 못 도와드렸어요. 할머니 리어카 밀어드리라고 누나가 시켜서 한 건데요.”

“에구...... 저런.”

할머니는 혜지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듭니다.

혜지도 고개 인사를 하며 할머니께 미소를 보냅니다.

그날 저녁 아빠가 데리러 오셔서 혜지와 민호는 할머니 그리고 지영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옵니다.

“아빠, 오늘도 종이 할머니 만났어요.”

“종이 할머니?”

“저번에 만났던 할머니인데 큰 리어카를 혼자 끙끙거리며 가고 있었는데 누나가 밀어드리라고 해서 지영이와 제가 밀어드렸거든요. 오늘 또 만났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고맙다고 사탕도 주셨어요.”

“어이쿠, 녀석들 기특한 짓 했네.”

힘들어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정말 도와드리고 싶은데 자신은 할 수 없어서 동생들을 시켰다는 말에 아빠는 마음이 짠... 해집니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혜지 ⓒ최선영

“아빠, 제가 불편하다고 해서 남을 돕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저를 보면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가방이라도 들어줄까?'라며 도와주려고만 하는데 장애인이라고 도움만 받고 남을 돕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직접 돕지는 못하지만 동생들을 시켜서 도와줄 수 있는 것처럼.”

혜지는 어린 나이지만 어리지 않은 마음입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모르는 이기적인 어른보다 더 성숙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들고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다른 사람의 힘들고 불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움을 많이 받아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혜지는 생각합니다. 무조건 도움받으려고만 하는 장애인은 되지 말자고.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것은 이루고 싶었고, 나보다 더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 덜 힘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활짝 웃는 혜지 ⓒ최선영

대학생이 된 혜리는 가난한 아이들을 후원하기 위해 친구들과 작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소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수익으로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민호와 지영이도 누나와 사촌 언니를 통해 배우게 된 행복을 실천합니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 행복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원과 양로원에도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혜지는 미소를 짓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도움만 받는 건 아닙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불편함에 도움을 주듯이 장애인도 비장애인의 어려움을 보고 도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다르지만 하나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혜지는 말합니다.

혜지와 민호, 지영이는 가끔 그 언덕길에서 만난 할머니를 생각합니다. 할머니의 수레에 작은 힘을 실어주는, 장애인 비장애인을 구분 짓지 않는 그냥, 따뜻한 세상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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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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