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발달장애인에게 성교육을 제공하기에 적절한 사람들이 발달장애인들 곁에 있는 학교의 교사들이나 복지기관의 종사자들이라고 소개하였다. 사실, 이들이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하기에 적합한 일차적인 사람들은 아닐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발달장애인 성교육자로서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장애인들의 부모들이다.

97년에 필자가 정신지체인(지금의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나서 복지현장에 나와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하면서 고민한 것들 중 하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발달장애인에게 성교육을 제공할 가장 적임자인가?”였다.

필자가 석사학위 논문을 위한 자료수집과정에서 접하게 된, 70년~90년대에 미국에서 유명한 장애인성육자들 중 한 명인 위니프레드 캠튼(Winifred Kempton)과 운 좋게도 연락이 취해졌다.

캠튼은 사회복지(social work) 석사학위를 지닌 분으로, 정신지체인 성교육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교육해 오면서 미국의 장애인성교육 분야를 이끌고 있는 유명한 성교육전문가였다.

필자는 그분과 손 편지와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이제 막 장애인성교육 분야에 입문한 초보자로서 필자가 궁금해 온 그것(누가 적합한 성교육자인가?)을 그분에게 물었을 때 그분은 장애인의 부모가 장애인성교육의 일차적인 적임자요 책임자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성교육은 자녀가 가정 안에서 부모로부터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가정교육이자 사회화 교육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성교육을 제공하는데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말은 자녀를 둔 모든 부모들에게 도전이 되는 말일 수 있다. 특히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의 부모들은 성교육을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없는 영역으로 생각하면서 그 역할을 주로 학교 교사나 기관 종사자들에게 넘겨왔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녀의 생존을 위한 일차적인 삶의 영역들을 지원해 주는 일만해도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녀의 성에 대해 가장 민감해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들이 발달장애 자녀의 성교육자로서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성을 특별한 교육으로 여기거나 혹은 성에 대한 민감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 자녀에 대한 성교육이 다른 과목들처럼 학교 교사들이나 기관 종사자들의 전문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인 성교육자인 이유는,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성교육이란 단순히 생식과 관련된 활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몸과 성적 욕망을 지닌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보며 또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에 관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자녀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어떤 태도와 행동을 하는가는 부모가 자녀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기대를 표출하고,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한 인간으로서(성적 존재로서) 그 환경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해 주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이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성교육이다.

이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이런 것들을 가르쳐 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이런 가르침이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확장되거나 깊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성교육은 무엇일까? 그리고 부모들은 발달장애 자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며, 자녀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발달장애 자녀를 위한 성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크게 달라진다.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자녀를 위한 성교육에서 부모들의 역할 또한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발달장애 자녀와 성에 대한 부모의 인식과 태도, 그리고 행동은 모두 발달장애 자녀가 자기 자신과 성에 대해 갖는 인식과 태도 및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들 스스로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상관없이,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부모들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발달장애 자녀의 중요한 성교육자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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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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