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더 외출하기가 싫어진다.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조차 싫다. 점심시간 가벼운 산책 역시 내키지 않는다. 초여름이지만 벌써 30도를 넘나드는 날씨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점자형 유도블록이나 장애인 편의시설이 부족해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비장애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벌이는 행태들 때문에 자꾸만 집 밖을 나서기가 싫어진다.

좀 전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왔다. 며칠 전 인도를 걷다가 점자형 유도블록 위를 질주하는 자전거에 받히고 말았다. 자전거가 맹렬히 달려오는 것을 느끼고 옆으로 살짝 피하려 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던 사람이 청소년이라 차마 연락처 등을 받지도 못했다.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자전거에 부딪힌걸로 큰일이야 나겠냐 싶어 그냥 가도록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부기나 통증이 진정되지를 않았다.

어렵사리 동료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다녀왔다. 다행스럽게도 엑스레이 검사 결과 골절은 아닌 듯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주일쯤 더 지나도 계속 아프면 정밀 검사를 해보자며 오늘은 그냥 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병원을 나오는데 어딘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공연히 우울해졌다.

예전에 전동휠이나 킥보드 같은 개인용 이동수단들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글을 썼는데 막상 이렇게 병원에 다녀오고 나니 밖을 다니는 것이 공포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전거나 전동휠 같은 것들이야 워낙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에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장애인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들이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없을 만한 것들을 몇 가지만 이야기 해보겠다.

첫째, 이렇게 더운 날이면 양산을 쓰고 길을 거니는 중년의 여성들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라 불리며 유독 강한 전투력을 가진 이들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길을 가다 누군가와 마주치거나 할 때 옆으로 충분히 비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한 치 앞까지 밖에 안 보이는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은 이들이 양산을 쓰고 마주올 때 안전거리까지 비켜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양산 살에 얼굴이나 눈 등을 긁히기 일쑤다. 이상하게 그들의 양산살 높이는 주로 안면부에 근접하게 된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잔존시력 마저 잃게 할 수 있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둘째, 한국의 애견인구가 천만에 달한다고 한다. 애견 호텔에 애견 장례식장, 거기다 사람도 쉽게 사먹기에 부담이 되는 가격을 자랑하는 홍삼브랜드에서는 애견용 사료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강아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도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저녁 무렵 길을 걷다보면 유독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이들이 많다. 견공들의 활동폭을 넓혀주기 위해서인지 긴 목줄을 사용하는 이들이 참 많다.

마주 오는 사람을 무사히 피하고 걷다보면 뭔가에 다리가 걸리며 한쪽에서 ‘깨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많다. 분명히 넘어질 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법도 한데 강아지가 목이 졸리며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내준 까닭에 싫은 내색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야 하는 경우가 많다.

목줄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것도 문제지만 자칫 성질 사나운 강아지에게 걸리면 물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일 수도 있다.

또, 장을 보러 다닐 때 많이 사용하는 핸드캐리어도 보행에 큰 위협이 된다. 이 핸드캐리어 역시 ‘아줌마’라는 호칭의 유유자적한 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아이템이다. 이들 역시 마주오는 보행자 등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이들을 피하더라도 핸드캐리어에 다리나 흰지팡이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

사실 시각장애인이 보행을 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위험요인들은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리고 이게 비장애인들만 일방적으로 뭐라 할 수도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시각장애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거니와 시각장애인이 보행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또, 그들이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할 만큼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활동지원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을 한다.

그렇기에 홀로 집 밖으로 나서면 많은 위험들과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마주오는 사람을 겨우 부딪히지 않고 스쳐 지나갈 정도만 피하는 습관에 대해서는 비장애인들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상대방이 이만큼 피할테니 나도 이만큼 피하면 안부딪힐 것이라는 계산은 위험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로든 상대방이 내가 예상한 거리만큼 이동하지 않는다면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다.

비단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한 발씩 더 비켜 지나지 않는다면 또 누군가는 오늘의 나처럼 병원을 방문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조금만 배려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한결 안전한 거리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장애인 이동권이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 해소의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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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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