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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만을 위한 자원봉사는 적폐다

진학 수단으로 자리잡은 자원봉사 폐해 양산 가능성 농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6-08 10:16:03
수서행 지하철 안. 입이 없는 여자가 앉아있다. 그녀는 옆에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본다. 남자는 눈이 없다. “이번 역은 신촌, 신촌역입니다. 내리실 문은…”이란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가방에서 케인(시각장애인들이 앞에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 사용하는 지팡이류의 도구)을 꺼낸다. 남자가 그것을 꺼내면서 지갑도 빠졌다. 눈이 없는 그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열차를 빠져 나와 계단을 오른다.

그 때, 입이 가려진 여자가 다가온다. 그에게 지갑을 쥐어준다. 이렇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2015년에 열린 장애인영화제서 상영된 <케인>의 첫 장면이다. 입이 없는 언어장애 여성과 눈이 없는 시각장애 남성의 사랑 이야기였다.

특히 시각장애 남성이 언어장애 여성을 업으면서 시각장애인의 입과 언어장애인의 눈이 결합해 하나의 얼굴이 되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장애유무에 관계없이 불완전한 인간이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메시지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로토스고핑(배우들이 촬영한 뒤 움직이는 대상을 선으로 표현한 영상기술)이라는 기법을 사용해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극대화한 영화였다.

참신한 발상으로 장애를 재해석해 신진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감독은 경기도에 위치한 한 예고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하던 세 명의 여고생이었다.

선천적으로 성대가 없어 목소리가 작은 한 학생과 비장애인인 두 친구가 힘을 합쳐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하고자 제작했다. 이는 그들이 장애∙비장애를 넘어 친구라는 인식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별의 굴레에 갇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어린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을 만나왔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한 감독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애시설에 봉사를 다녔고, 그들과 함께 등산도 다녔다”며 “초등학교에 들어와서도 학교에 장애학생들이 있는 사랑반이 있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의 경험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나아가 장애를 가진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해준 거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빨리 자라게 하려 벼의 순을 잡아 빼다가 결국 말라죽게 한 농부의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자원봉사를 대하는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쟁의 늪에 빠진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인성(人性)까지 갖추길 요구한다. 인성을 가시화하는 도구로 자원봉사가 떠올랐고, 이는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시설은 봉사 시간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장소로 인식된다. 그들의 활동은 대개 빨래를 널거나 이불을 개는 등의 비대면적인 것들이다. 행여나 발생할 사고에 대비해 시설 관계자들도 그 이상의 것들은 시키지 않는다.

이런 봉사활동은 아이들의 인성과 가치관 확립이나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려 장애인을 돕는 행위가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비치게 하는 잠재적 도구로 인지되게 하는 폐해를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先) 지식 후(後) 인성을 추구하는 오늘날 인재양성은 차별 없는 사회의 도래를 어렵게 한다. 때로 지식이 인성의 바탕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머리와 가슴의 거리는 예상보다 먼 법이다.

이럴 때는 인성을 만들어 지식으로 발전하게끔 해야 한다. 체득된 앎은 이성보다 빨리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행했던 봉사활동이 장애를 도구가 아닌 친구로 만든 <케인>처럼.

교육제도를 재편하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참에 내신에서 봉사활동의 비중을 없앨 것을 제안한다. 시간 따기식 봉사는 학생에게도, 그 서비스를 받는 이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대신 초등학교 저학년 교육과정에 봉사활동을 넣기를 권한다. 유연한 사고를 지닌 어린 친구들은 장애를 차별이 아닌 차이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분별한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은 근절되어야할 적폐 중의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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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심지용 칼럼니스트 심지용블로그 (yololongy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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