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로와 단차가 함께 존재하는 광진구 건대입구역 문화거리의 한 카페. ⓒ서인환

최근 건국대 전철역 주변의 어느 연구원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위한 무장애 환경(BF) 심의를 하였다.

이 심의 회의에 참석한 위원은 총 5명이었는데, 건축과 교수가 1명이었고, 건축사무소 사장이 1명, 도교육청 시설 담당 공무원이 1명,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1명, 시각장애인인 나 자신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휠체어를 사용하시는 분은 건축사이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로서 복지에 종사하는 자격으로 온 것인지, 아니면 건축사로서의 자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분이 심의위원장임에도 물어볼 문제는 아니었다.

2시에 회의를 시작하여 그날은 심의 안건이 많지 않아 4시 경에 마쳤다. 나는 6시 반에 잠실에서 약속이 있어 시간이 두 시간 정도 비었다. 건대입구역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심의위원장이신 그 분을 다시 만났다.

그분은 자신은 최근 무척 바쁘기는 하지만 나를 오랜만에 봐서 기쁘다며 기꺼이 시간을 같이 보내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커피까지 사겠다고 하셨다.

건대입구역은 식당가로 번화한 곳이니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들어가는 데에 불편하지 않은 카폐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좁고 울퉁불퉁한 거리를 골목골목 바둑판 선을 따라 가듯이 카페를 찾아 헤매었다. 문화의 거리도 결코 반듯한 바닥이 아니었고, 깨어지거나 툭 튀어나온 블록들로 마치 공사를 하다 만 것 같았다.

턱이 있어 들어갈 수 없는 카페를 여러 곳 지나갔다. 문화의 거리에서 다시 차도가 있는 곳으로 나와 카페를 뒤졌다.

이번에는 경사로도 있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데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살 수는 있어도 앉을 의자가 없었다.

카페에 앉아 쉴 곳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 점원은 2층이라고 했다. 그런데 2층은 계단으로 되어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짜리 건물들이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고층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판매점은 1층이지만 좌석은 2층에 있었다. 우리는 먼저 좌석을 확인하고 내려와서 커피를 살 계획이었다. 벌써 수 십분 돌아다녀서 지쳤지만 혹시 이곳도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서 2층 버턴을 누르니 눌러지지 않았다. 2층은 가까운 층이니 계단으로 다니라는 것이었다. 상업지역임에도 2층은 계간으로만 가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면 쫓겨난 것이다. 이제는 좀 서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화의 거리에서 희망을 발견하였다. 경사로였다. 길모퉁이의 한 카페 출입구에 경사로가 있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서로 힘을 합하여 고행의 행군 끝에 찾은 희망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경사로는 있지만 한 계단만 오를 수 있었고, 두 번째 계단은 턱으로 되어 있었다. 불과 두 개의 단으로 된 계단이었지만 우리는 들어갈 수 없었다.

경사로를 하려면 두 게단 전체에 경사로를 설치하지 왜 한 단만 형식적으로 설치한 것일까? 장애인용이 아니라 비장애인 고객들이 발을 헛디디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 넘어지지 않도록 한 것일까? 그런 배려라면 왜 금속재질로 비가 오면 오히려 미끄러지기 쉽게 설치했을까?

카페가 생기기 전부터 있어서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서 장애인을 위한 지원을 하는 것을 받아놓고 사용은 못하는 것일까? 구청 등에서 경사로 설치를 하라고 하니 설치를 하여 사진은 제출하였는데 공무원은 사용할 수 없는 경사로인 줄 모르고 통과시켜 준 것일까?

생색은 내면서 사실상은 배제하거나 법은 지키는 척을 하면서 끝까지 이용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악의적인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림의 떡으로 보기만 하고 들어오지는 말라는 태도는 더욱 화나게 하고 약을 올리기에 충분했다.

요즘 선거철이다. 공약을 빈 공자로 해석하여 공약은 지켜지지 않는 속임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찾은 카페는 간판에 영어로 ‘공차’라고 적혀 있었는데, 공동의 장소로 차를 마시자는 말인지, 장애인에게는 빈 공자로 차를 팔지 않겠다는 말인지 해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밥은 그릇에 담아 품위 있게 주어야 하지만 빈 그릇을 주며 밥을 주는 시늉을 하면 이는 인권침해일 것이다. 우리는 차가 들어 있지 않은 빈 그릇을 공차에서 받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 나니 돌아서는 나의 마음이 텅 비어 있었다.

행길에 내어 놓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한참을 돌아다닌 더위를 식히고 나는 전철을 타기 위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그분을 위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러갔다.

도로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손잡이에 점자를 만져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거나 전철역 안으로 들어가는 정보는 없었다. 뒤로 돌아서 밖으로 나가는 정보만 있었다.

전철역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온 사람인라면 이미 방향을 알고 나왔을 것이다. 나와서 방향이 아니면 다시 들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 자리는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자신이 타는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정보가 필요한 장소이다.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뒤돌아 나가는 정보만 화살표로 알려주고 있었다.

편의시설을 갖추라고 하면 추가비용이 든다며 징징거리는 사람들이 보복 차원에서 이용하지 못하는 고생을 장애인에게 시키는 것일까? 진정 추가 비용이 아깝다면 투입된 비용이 제대로 쓰이도록 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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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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