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한 번씩 장애인의 취업이 어렵다는 기사가 보도되곤 한다. 이런 기사들에는 주로 장애인 경제활동 참가율이나 장애인 취업률과 같은 자료들이 활용된다. 자료 특성상 장애인 취업의 어려움에 대해 취업과 미취업, 경제활동 참여와 비참여로만 문제를 한정해 버리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이 장애인의 직업생활 환경을 개선하는데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활동 참여인구나 취업자 수가 절대적으로 낮다는 데에만 집중하여 당장에 수치를 끌어올리는 것만을 목표로 한 정책들이 시행되기 쉽다. 보다 안정적인 장애인의 직업생활환경 조성을 위해 이러한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간단한 식사 메뉴를 고르거나 물건을 살 때에서부터 제도나 정책의 성과를 측정할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양’과 ‘질’을 놓고 고민을 많이 한다. 양적인 측면을 우선시 할 것이냐, 질적인 측면을 우선시 할 것이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지곤 한다.

그리고 과연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서도 명확히 답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 한 가지만을 추구하면 그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 직업생활과 관련된 정책은 그동안 양적인 측면에 너무 집중해 왔다. 이러한 선택이 가져온 부작용도 많다.

첫째,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당장 취업이 가능한 분야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장애인들이 진정으로 일하고 싶은 분야나 직업에 대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량을 갖추기 위한 인프라도 확충되지 못하였다.

만약 취업률이 조금 천천히 높아지더라도 장애인들의 흥미와 욕구를 고려하여 각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들이 바라는 분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학습이나 훈련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각종 직업학교나 훈련기관, 민간기업 등이 장애인들을 교육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선행되지 못했기에 아직도 직업 전환기 학생들의 진로지도에서 장애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들을 들을 때면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희망사항들은 점차 다양해지는데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결국 그 간극만 날로 커지고 있다.

둘째,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생각은 뒷전이었다. 당장 취업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 일을 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급여나 근로자의 권리보장 등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결국 장애인의 근로소득이나 가구소득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근래에는 다수의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들이 근로시간을 줄이고 줄어든 시간을 모아 추가적인 고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됨에 따라 절대적인 취업인구는 늘어날 수 있지만, 근로시간이나 평균소득은 오히려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일자리의 질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양적 측면에만 집중한 나머지 장애인들의 삶을 궁핍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취업자 수만 놓고 볼 때 실제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호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셋째, 직업생활을 원하지 않거나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까지 취업시장에 내모는 문제도 있다.

취업률 향상을 최우선으로 직업재활서비스들이 제공되면서 취업에 관심이 없는 이들까지 직업재활 서비스에 연계되기도 하고 좀 더 취업 준비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능력향상을 통해 다른 일자리를 가지는 것 대신 당장 취업이 가능한 영역으로 하향지원하여 직업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장애 당사자는 좀 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었을 것이고,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은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근로자들의 가치관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곤 한다. 급여가 조금 낮더라도 근로시간이 짧거나 충분히 자신의 여가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 직업재활 현장에서도 이런 현상을 체감하게 될 때가 있다. 작업 시간이 길거나 노동 강도가 높은 일자리에 대해서는 구인난을 겪기도 한다.

또, 주 40시간 근로를 통해 2~300만원 정도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자리와 주 25~30시간 정도 근로를 통해 150만원 내외의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자리 중 후자를 택하는 이들도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직업과 일에 대한 가치관은 장애와 비장애를 막론하고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한국 사회의 주요 정책과제로 꼽히고 있어 더욱 걱정스럽다.

변화나 현실, 일자리의 질적 측면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취업률, 실업률, 경제활동 참가율 등의 수치에만 연연해 양적인 성과만 추구하는 정책을 계속 펼쳐 나갈 경우 장애인들의 직업생활과 비장애인들의 직업생활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며 장애 당사자의 욕구나 의사는 외면당하는 현상은 심화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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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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