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색 예쁜 어느 봄 날.

복지관, 치료실을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가 똑같은 우리 아들들과 잠시 기차 타고 가벼운 나들이 하자고 뭉친 엄마와 아들 3세트!

하루라도 결석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는 줄 알고, 매일을 성실하게 복지관과 치료실을 떠돌던 우리 책임성실 모자 세트들.

쳇!!! 모르겠다!

빛나는 청춘 아들들하고 햇살 좋은 봄 날, 나들이 떠나 볼까?

가자! 가 보자!!

평일에 복지관 땡땡이(요즘은 ‘짼다’라고 하던데)하고, 기차타고 설레는 낯선 세상 속으로 출발.

# 낯선 세상 하나 – 낯설지만 친밀한 서로들.

큰 형님 ,스물 여섯, 젠틀맨 정호씨!

둘째 형님, 스물 셋, 핸섬가이 하진씨!

여드름 막내, 스무 살, 고집불통 화가 규재씨!

엄마들이 각자 이름 소개를 하며 오늘의 나들이 팀으로 서로 인식시키기 시도.

역시나 자폐인의 멋짐으로 서로 무심한 듯 시선을 돌리지만, 우리 엄마들은 안다, 아들들이 저들의 방식으로 서로를 입력했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에게 동화되고 있다는 것을!

젠틀맨 큰 형님 정호씨.

# 낯선 세상 둘 – 기차 안.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는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위풍당당 우리의 아들들은 나들이 기대에 한껏 부푼 모습들.

움직인다, 출발한다, 간다! 간다!

창 밖 풍경에 심취해서, 경치 감상 즐기는, 낭만을 아는 젠틀맨 정호씨.

기차에 비치된 책자를 뒤적이며, 독서중인 송충이 눈썹 핸섬가이 하진씨.

고속열차라는데 왜 이렇게 느리냐고, 놀이동산 기구 속도와 비교중인 불만 툴툴 규재씨.

핸섬가이 하진씨.

# 낯선 세상 셋 – 대전역 중앙시장.

대전역에서 점심 해결도 할 겸 타지의 재래시장도 구경할 겸 시장 탐색하기.

살림하는 엄마들의 속성상, 젤 먼저 눈에 띈 것은 튼실하고 실해 보이는 생죽순.

탐나도다! 사고 싶지만 귀한 아들들과 도보, 대중교통 여행의 쾌적함을 위해 짐 만들지 않기.

잰 걸음으로 앞서가는 젠틀맨 정호씨.

한 번씩 씨익~ 살인미소 날리며 잘 따라오는 핸섬가이 하진씨.

유독 사람 붐비는 장소를 힘들어하는 불만 툴툴 규재씨는 몰려드는 시각자극을 가리느라 엄마 등 뒤로 숨어버리고.

그래도 우리 아들들을 사회 속에서 적응시키려는 엄마들의 그간 노력의 시간들이 느껴지는 순간 순간들.

시장 북새통을 잘 헤집고 다녀,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씩 차고앉아,

특이한 젓가락질 분주하게 한 그릇 뚝딱 젠틀맨 정호씨,

양념까지 복스럽게 흡입한 핸섬가이 하진씨,

탕수육이 없다고 짜장면에 탕수육세트에 집착강박 있는 툴툴이 규재씨는 시위하듯 반 정도 남기고(그러거나 말거나, 네 배 고프지 내 배 고프겠니?).

사진찍기 좋아하는 고집불통 막내 규재씨.

# 낯선 세상 넷 – 우리의 나들이 장소 [수생식물학습원]

충청도 대청호가 예쁜 산들과 어우러져, 이름 모를 들꽃들과 암석들과 수생식물들로 꾸며져 있는 예쁜 정원 같은 아늑함에, 여차저차, 계획된 버스가 아닌 택시로 이동하게 되었던 긴장감이 풀어지고.

야광 주황색 봄 점퍼를 날리며 화보 모델 같은 인생샷 건진 젠틀맨 정호씨.

이곳저곳 기분 좋은 표정으로 구경 다니며 까페의 봉고 악기도 두드려 보는 호기심 뿜뿜, 핸섬가이 하진씨. 근데! 하진씨, 봉고 두드릴 때 양 손을 교대로 두드린다! 놀라운 협응력! 와우!

디지털카메라 들고 맘에 드는 식물 찍는다며 혼자놀이 즐기는 고독한 화가 고집불통 규재씨.

서로 각자 취향대로 즐기는 각각의 스타일을 지켜보며, 햇살 따뜻한 봄볕에 등을 맡기고 엄마들은 사는 얘기, 고민거리, 웃음폭발 만담 같은 이런저런 수다가 이어지고.

그런데 막내 규재씨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식물 사진 찍느라 엄마 시야에서 멀어지면 엄마가 불러 젖히는 소리가 거슬렸던 듯. 안 간다, 안 가의 반항의사로 자갈로 꾸며진 마당에 주저앉아 카메라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는 심통 난 막내 동생 규재씨 곁으로 핸섬가이 하진씨가 성큼성큼 다가간다. 어? 분명 규재씨와 하진씨는 거리가 많이 떨어진 곳에서 각자 놀고 있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바닥에 주저앉아 심통 부리는 동생이 걱정스러운 듯, 아니면, 왜 그럴까? 궁금한 듯 규재씨 등 뒤에 서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하진씨 특유의 상동행동을 하면서도 계속 시선은 규재씨를 맴돌고 있더라는. 순간, 울컥 했다.

아직 언어표현이 충분히 발화되고 있지 않은 하진씨가 동생의 감정 변화에 공감을 보이고 있는 모습. 아! 누가 자폐인들은 공감 능력이 없다했나! 누가 자폐인들은 스스로 닫은 사람이라 했나!

엄마들이 또 한번 감동한 일. 큰 형님인 젠틀한 정호씨는 따뜻한 정수기 물을 받아오라는 미션을 주자, 한 박자 천천히 “온수...” 반복하며 스스로 머리에 입력하는 듯 말하더니, 마당에서부터 그 낯선 카페까지 가서 구석에 놓여 진 정수기를 찾아서 텀블러 적정선까지 온수를 잘 담아 온다. 와우! 큰 형님 정호씨 멋지다.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예쁜 경치에 온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시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심통 막내 규재씨가 마음이 풀렸는지 “다음에 또 오자아~~~~”

상동행동 하면서도 동생 걱정중인 하진씨.

# 낯선 세상 다섯 – 버스 정류장까지 걷기.

올 때 대전역서 식물원까지는 버스 시간 애매해서, 택시타고 산길 구불, 기사아저씨에게 웃돈 주고 왔지만, 귀가는 버스 시간 맞춰서 버스 승강장까지 걸어서 30분.

역시 걸음 빠른 큰 형님, 젠틀맨 정호씨, 시원시원 앞서가고.

곰살맞은 눈웃음, 핸섬가이 하진씨, 잘 걷네.

크엑! 걷기 싫어하는 복부비만 막내 규재씨, 왜 올 때처럼 택시 안타냐고, 왜 일까요?

1번 없어서, 2번 안와서, 3번 택시가 안보여서, 4번 사라진 택시.....

말도 안 되는 사지선다형 퀴즈 문제 무한반복떠버리 시작되고.

정겨운 시골 버스 타고 대전역에 도착, 꿀맛 저녁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

젠틀맨 정호씨, 피곤한지 눈이 충혈되고.

핸섬가이 하진씨, 피곤하다는 표현 확실하게 해 주고.

고집 툴툴 막내 규재씨, 너무 늦었다며 이규재 수고했네, 스스로에게 격려하고.

아침 10시 시작한 우리들의 나들이는 밤 9시 20분 서울 도착으로 끝.

아들들이 보여 준 새로운 감동에 감사하며.

빛나는 청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아들, 딸들!

너희는 소중한 보물. 아주 특별한 보물.

그러니 빛나거라!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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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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