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접근해서 잘 대해 주면 처음에는 “내가 그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나”라고 생각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가 “혹시 다른 속셈이 있어서 내게 잘 해 주는 건 아닐까?”라고 한번쯤 의심해 보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 이면에 숨겨져 있는 저의와 복선을 생각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상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가 있다.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있는 그대로 믿는 경향이 크다. 사람들이 웃으면 정말 재미있고 좋아서 웃는다고 생각하고 또 울면 정말 슬퍼서 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른 그럴싸한 표정이나 행동, 태도로 잘 포장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자신의 생각, 감정 등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여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당하기도 한다. 또한 그런 점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도에 쉽게 이끌리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가 보여주는 그 모습을 모두 진짜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런 특성은 현실과 허구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전날에 본 드라마를 현실의 일처럼 이야기 해서 주변 사람들을 깜빡 속게 만드는 장애인들도 있다. 그들에게 있어 세상이나 사람들은 늘 보여지는 대로의 모습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사람을 좋아하며, 자폐가 있는 친구들조차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이 세상 누구도 사랑을 원치 않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 애정 등은 발달장애인들도 원하는 것들이다.

사람들과 비교적 잘 어울리는 지적장애인들의 경우, 사랑을 추구하는 모습은 좀 더 적극적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도 잡고, 스킨십도 스스럼없이 한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상대를 좋아한다는 표현이다. 좋아한다는 그들의 감정에는 상대를 성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는 없다. 그저 그 사람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람들에게 하는 좋아하는 신체적 표현들은 어떤 의도가 없기 때문에 사실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에 지켜야 할 예의가 있으며, 이런 것은 성인들에게 특히 더 요구된다.

문제는 그들의 이런 특성을 잘못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어떤 잘못된 의도를 갖고 발달장애인들에게 접근해서 좋아한다는 것을 신체적으로 표현을 하면 발달장애인들은 그 표현을 자신들이 하듯이 어떤 의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를 경계하거나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상대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어주게 된다.

그럴 때 ‘그루밍’이라고 표현되는 은근한 성추행과 성폭력이 시작될 수 있다. 그루밍은 “길들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서로 장난치듯이 혹은 예뻐하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다가 상대가 경계를 침범당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체적인 침입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다.

많은 어린아이들과 발달장애인들이 아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당한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루밍과 같은 성추행이나 성폭력으로부터 발달장애인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아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믿지 말고 경계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순진무구하고 좋은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이, 자신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는 것이고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경계(바운더리)에 대해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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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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