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어린 희연. ⓒ최선영

희연은 하늘을 보며 그리움을 띄워보냅니다.

"아빠! 내가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불러도 이해해줄 거죠?"

희연은 희미해진 아빠 얼굴을 더듬으며 그리움을, 미안함을 하늘 저 너머에 있는 아빠에게 전합니다.

8살 어린 희연은 4년 전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두렵습니다.

가족여행을 가던 길. 마주 오는 큰 트럭은 희연 가족이 타고 있는 차를 거침없이 받아버렸습니다.

그 사고로 아빠와 이별을 해야 했고 희연은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오빠는 큰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시간이 치료할 수 있는 부상이었습니다.

끔찍한 고통의 순간이 세월 속에 바래지지 않고 여전히 두렵지만 희연 가족은 서로를 더 안아주고 위로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예고 없이 만나게 된 이별, 그 아픔은 그리움이 되어 마음 한편에 눈물이 되었지만 그리움을 담은 아빠와의 추억이 있기에 눈물이 달래주고 서로를 안아주는 위로 속에 그 추억이 살아가는 또 다른 힘이 됩니다.

아빠를 데려 간, 잔인한 기억을 안고 있는 봄.

그 봄을 또 만납니다.

그날 이후 한 번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는 희연 가족은 늘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희연보다 3살 많은 희철은 희연을 업어주며 봄바람을 쐽니다.

"조심해!!"

"꽈~당"

조심하라는 엄마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희철은 희연을 업은 체 넘어집니다.

"괜찮아? 다친데 없니?"

옆을 지나던 아저씨가 희연과 희철을 일으켜 세우며 말을 건넵니다.

옆에는 희철 또래의 남자아이가 서있습니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희철은 아저씨를 보며 일어섭니다 그리고 희연을 일으켜 세우며 다친데 없는지 여기저기 살펴봅니다.

엄마가 달려와 희연을 안아줍니다.

"크게 다친 데는 없는 듯하네요.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엄마는 아저씨의 친절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희철과 희연을 데리고 집을 향합니다.

그리고 가끔 그 공원을 갈 때면 어김없이 아저씨와 남자아이를 만났습니다.

1년 후.

그들이 함께 식사를 합니다. 희철과 아저씨의 아들 재민이 같은 반이 되면서 더 가까워졌습니다.

공개수업이 있던 날, 교실에서 엄마와 아저씨가 만나고 재민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웃이 아닌 가족이 되기 위해 준비합니다.

함께 소풍을 가고, 함께 밥을 먹고, 쇼핑도 함께 합니다.

아저씨는 아빠의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주는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그들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까칠하던 재민도 희연에게는 늘 친절한 오빠입니다.

아픔도 슬픔도 그 자리에 묻어두고 이제 행복한 순간만 이어질 줄 알았습니다.

"희철이 희연이? 예쁘게 생겼네."

아빠 친구는 희연을 안아주며 삼촌으로 부르라고 했습니다.

외로운 희연 가족에게 아빠, 삼촌까지 생겨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방학이 되자 삼촌네 가족과 희연 가족은 함께 여행을 갑니다.

사고 이후 여행을 가지 않았던 희연, 그들에게 여전히 두려운 여행이었지만 아빠와 삼촌의 든든함이 그 아픈 기억을 접고 여행이라는 두려움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희철과 재민 그리고 삼촌의 아들 지훈은 농구를 하며 깊어가는 밤을 잊은 체 땀을 흘립니다.

어른들의 술자리는 계속되고 희연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엄마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희연이 그만 자야겠다."

엄마는 텐트로 희연을 안고 들어가 재웁니다.

자다 눈을 뜬 희연은 덩그러니 혼자인 게 두려워 엄마를 부릅니다.

"제가 가볼게요."

희연을 찾아온 건 술이 많이 취해있는 엄마를 대신한 삼촌이었습니다.

삼촌도 술 냄새가 났습니다.

희연의 머리를 쓰다듬던 삼촌의 손이 희연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희연은 기분 나쁜 느낌이 싫어서 엄마를 부르려 했습니다.

희연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삼촌. ⓒ최선영

"쉿~ 삼촌이 희연이 예뻐하는 거 알지? 예뻐해 주는 거야."

삼촌은 희연이 몸을 움츠리는데도 자꾸만 싫은 행동을 했습니다.

울먹이는 희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뻐서 그런 건데 싫구나, 실망이야. 희연이도 삼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삼촌 좋아하는데 이러는 건 싫어요."

"싫은 거 아니야. 좋아하게 될 거야. 잠깐만 삼촌이 하라는 대로 가만히 있어봐."

엄마에게 가려고 일어나는 희연을 삼촌이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소리 지르거나 하면 지금 술이 많이 취해서 아빠 옆에 자고 있는 엄마가 놀라고 삼촌 싫어한다고 아빠가 희연이 미워할 거야. 재민이도 희철이도 널 다 싫어하게 될 거야. 자꾸 엄마 부르려고 하면 삼촌이 너 많이 아프게 할 거야. 그러니 가만히 있어."

"엄마......"

음악을 틀어놓은 밖에서는 희연의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희연은 아빠가 안아줄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두려운 얼굴을 하며 싫다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희연아 왜 그래?"

희연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삼촌이 비밀을 지키라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희연에게 엄마는 조곤조곤 물어봅니다

"엄마랑 희연이는 비밀이 없는 사이지? 희연이가 요즘 왜 시무룩하고 그런지 말해주면 좋겠어."

희연은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숙인 체 말을 시작합니다.

"엄마, 좋아하면 만져주는 거야?"

"희연이 좋아하니까 아빠가 희연이 볼도 만지고 머리도 만져주고 안아주고 그러지.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싫어요'하고 소리쳐야 해. 알지? 그런데 아빠한테는 그러지 마. 서운해하시잖아. 아빠가 싫어?"

"아니, 아빠가 싫은 게 아니고....., 가슴이나 엉덩이 만지는 건 나쁜 거지?"

"왜? 희연아, 너 누가 너한테 그런 적 있어?"

희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엄마는 불길한 예감에 희연을 안아주며 괜찮으니까 말하라고 안심시켜줍니다.

"저번에 삼촌이 희연이 예쁘다고 하면서 그랬어."

"뭐? 삼촌이?"

"응. 예쁘다고 했는데 너무 싫어서 울 것 같았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희연 엄마는 화가 나고 속상했습니다.

엄마는 삼촌에게 따지며 물어보았습니다.

삼촌은 그런 적 없다고 재우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게 술에 취해서 실수한 것 같다고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아빠는 삼촌 편을 들었습니다.

"저도 삼촌이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실수든 뭐든 희연이에게 잘못한 일이니 사과하세요."

엄마는 눈물을 닦고 치솟는 화를 참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실수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희연이가 싫었다면 사과해야죠. 동철이랑 저랑 어릴 적부터 친구입니다. 어린 희연이 말만 듣고 이렇게 죄인 취급하시니 기분 나쁘네요"

삼촌은 오히려 화를 내며 가버렸습니다. 아빠는 자다 깬 어린애가 착각할 수도 있는데 사람 이상하게 만들었다며 오히려 엄마에게 서운하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자식이 아니어서 그러는 거겠지......"

엄마는 혼잣말을 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울고 있는 엄마를 보는 희연. ⓒ최선영

"내가 엄마를 슬프게 했어. 미안해 엄마. 삼촌이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안 그러면 엄마도 아빠도 다 싫어할 거라 그랬는데, 내가 비밀을 지키지 않아서 엄마가, 엄마가......"

희연은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며 자기 탓을 합니다.

아빠도 엄마도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묻어둔 체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자상한 아빠였습니다.

다행인 건 그 일이 있은 후 삼촌과 만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흐릅니다.희연이 벌써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삼촌에 대한 기억, 그날 밤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를 않았습니다. 아빠와 오빠가 아닌 남자는 늘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미투로 사회가 떠들썩해지고 희연은 그날의 기억이 또다시 또렷해졌습니다.

차마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던 삼촌의 다른 행동들.

"내가 만약 그때, 엄마를 크게 불렀더라면, 만약 내 다리가 불편하지 않아서 빨리 뛰어나왔더라면......"

희연은 그때의 기억이 악몽처럼 남아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제대로 그날의 일을 다 말할 수도 다른 사람들처럼 미투를 외칠 수도 없습니다. 희연은 화가 납니다.

그러데 지적장애여성들은 일관된 진술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어떤 일을 어떻게 당했는지 알릴 수가 없다는 기사를 보며 희연은 더 화가 났습니다.

자기 의사표현을 가감 없이 할 수 있는 비장애 여성들도 미투를 외칠 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들이 있는데 제대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장애 정도를 가졌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을지......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장애여성들을 향해 저지르는 성추행, 성폭행 죄는 더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투(Me Too.) 글씨. ⓒ최선영

희연은 장애인들 특히 장애여성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성적 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삼촌은 더 이상 술을 핑계 대며 희연을 몰아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희연은 삼촌이 꼭 반성하고 사과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희연은 A4용지에 'MeToo'를 쓰고 거울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는 죽을 만큼 아픔을 느껴. 그거 아니? 이 나쁜 삼촌 놈아."

그리고 희연은 어린 희연에게 말합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이제 희연은 죄의식에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냅니다.

누가 힘들어질까 봐 내 잘못이라는 죄의식 때문에 외치지 못한 미투를 외치며 장애여성들의 고통을 덜어 줄 그날을 위해.

하늘을 보며 아빠를 그리워하는 희연 ⓒ최선영

희연은 하늘을 보며 그리움을 띄워보냅니다.

"아빠, 저 많이 컸죠? 하늘나라에서도 저 응원해주세요.

아빠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많이 보고 싶어요."

아빠가 희연이를 향해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 같아 희연은 더 힘을 얻습니다.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이런 나쁜 짓을 저지르는 범죄자가 없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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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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