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 나라가 ‘미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필자 또한 관심이 많아 미투와 관련된 뉴스들은 열심히 들여다본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분노가 폭로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이는 이 과정은 우리 사회가 조금씩 성장해가고 성숙해 가는 성장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투의 본질은 남녀의 성에 관한 것이기보다 인간 존엄성에 관한 것, 파워에 관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편 요즘 분위기에서 개인의 이런 생각을 지면에 공개하는 것이 조금은 두려워지기도 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보다 성적 착취를 당할 위험이 높고 또 그런 착취적 삶을 살고 있을 많은 발달장애인들의 삶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기도 한다.

발달장애인들의 삶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들의 성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해 온 일들이 너무나 허다하다.

그들만큼 사람들로부터 무가치한 취급을 당해 온 사람들이 또 있을까!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람으로서의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적으로 이용당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필자가 만나 온 발달장애인들 가운데도 성적 피해자들이 꽤 있었다.

거주시설이나 학교에서는 원장/교장, 종사자/직원, 같은 장애인 등으로부터 또 가정에서는 부모, 형제자매, 친인척 등으로부터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는 부모의 친구, 이웃사람과 같은 아는 사람들이나 낯선 사람들로부터도 자신들의 성을 유린당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가해진 그 활동이 성폭력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설혹 알았다 하더라도 가해자의 협박이나 생존 때문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었다.

필자가 있던 시설에서 당시 20세인 한 발달장애여성이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시절에 당한 성폭력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필자는 늘 하던대로 시설의 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하였는데, 그 날은 성폭력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다양한 내용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장애인들에게 상황극처럼 설명해 주고 있었다.

해당되는 상황극은 “당신이 아는 아저씨와 단둘이 방에 있는데 그 아저씨가 ‘바지 벗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안돼요, 싫다고 말해야 해요, 도망가요, 엄마에게 말해요” 등의 반응을 하였다. 그런데 그 여성이 갑자기 필자에게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갑자기 숨이 멎는 듯했으며 좀 의아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인지 기능과 언어 기능이 상당히 좋을 뿐 아니라 부모로부터 매우 좋은 보호와 지원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가 병이 들어 잠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소홀한 적이 있었고 바로 그 시기에 그녀의 친구(발달장애인) 아빠가 친구의 집에서 그녀를 성폭행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친구 아빠가 위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녀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하교 때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과자를 사주면서 으슥한 장소나 자신의 집에서 그녀를 3년에 걸쳐 성적으로 착취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성폭력으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성폭력은 폭력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또 아는 아저씨가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자신을 예뻐하고 자신과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그 아저씨는 그런 활동을 자신과 그녀만의 비밀로 해야 한다고 그녀에게 당부시켰고 그녀는 그 약속을 거의 10년 넘게 철저히 지켜왔다.

아는 사람에 의한 발달장애인들의 성폭력은 이렇게 은근히 또는 매우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위압적인 상태에서 두려움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성폭력도 있지만 서로가 잘 아는 관계에서의 성폭력은 놀이 비슷하게 또는 사랑이나 보호의 미명 하에 일어나는 게 많다.

그러면 무엇이 발달장애인들을 성폭력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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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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