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나온 자존감 관련 책들. ⓒ네이버 책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자존감’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덩달아 각광 받을 뿐만 아니라 ‘자존감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성행 중이다.

세상은 온통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뜨겁고 ‘자존감’은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핫이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그 이면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존감’ 향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결국 낮은 자존감을 앓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자존감 수업" 정도도 모자라 ‘자존감 연습’이라는 어떤 강의 제목을 접할 때는 ‘어머나, 세상에 자존감 연습이라니...’ 했다. 자존감도 하루 몇 분(어떤 책은 하루 15분이란다!) 운동하듯이 연습하면 저절로 얻어지려나? 물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는 노력과 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자존감마저 ‘애써 연습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좀 서글퍼지기도 한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어떤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른바 일류대학이 아닌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면접까지는 매번 가보지도 못하고 항상 서류전형에서 이미 미역국이다. 게다가 웬만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이쁘지 않아서, 신체조건이 맞지 않아서 거절당하기도 여러 번이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버렸다.

그런데 성공하는 삶을 위해서는 낮은 자존감이 문제라며 치유해야 하는 불치병처럼 세상이 떠들어대고 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문제들이 낮은 자존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세상의 말대로 자존감 연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마저 느낀다. 그래서 날마다 거울을 보며 “나는 예쁘다!” “나는 잘 할 수 있다!”를 외치고 또 외치며 자존감 높이기 연습에 돌입한다. 며칠 후 그녀는 과연 높아진 자존감을 실감할 수 있을까?

거울을 보며 반복적으로 외칠 때는 아주 조금 자신이 이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는 듯도 하다.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지방대 출신이라며 삼류 취급이다. 아무리 이쁘다고 혼자 외쳐 보아도 바깥에 나가면 모욕적인 외모 지적이 날아오기 일쑤고 심지어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그녀만 바뀐다고 낮아진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 연습이란 요요현상을 매번 동반하는 다이어트만큼이나 허무하고 맥빠지는 일 이 아닐 수 없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네이버 책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한다.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세상의 조언처럼 누군가 날마다 거울을 보며 “나는 부자야, 사실 나는 잠시 곤경에 처한 것뿐이야.”라고 외친들 실제로는 통장잔고에 한 푼도 없는 가난뱅이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책이 정의하는 자존감이란 ‘주관적인 자기개념이나 평가의 산물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자기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치가 그가 가진 돈이나 권력 등의 가치로 대체되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헬조선이라 불리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자존감’를 지켜내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존감을 짓눌러대는 힘겨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만들어지는 것이 어쩌면 ‘가짜 자존감’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가짜 자존감’을 일컬어 ‘실제로는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높게 평가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쾌감’이라고 정의했다.

‘가짜 자존감’이란 어떤 이에겐 자기가 가진 학력일 수도 있고, 고급차일 수도 있고, 명품일 수도 있고, 주목받는 외모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진정한 ‘자존감’일 수 없으며 낮은 자존감을 숨기고 싶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쾌감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가짜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사실상 자존감이 낮으므로 과시 충동이 심하며,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월감에 도취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자꾸만 확인하려 든다는 것이다.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가 거울 앞에서 누가 젤 이쁘냐고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 ‘갑질’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한 자존감을 높이려는 개인적인 노력은 헛된 수고에 불과하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진정한 자존감을 가질 수도 없다. 결국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바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이 책을 보면서 내 생각은 계속 그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

장애는 그저 다름일 뿐이다. 장애도 개성이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능력마저 장애인 것은 아니다... 장애 당사자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외쳐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스스로에게 얼마나 주문을 걸어 왔던가. 마치 ‘자존감 연습’하듯 그렇게... 그러나 사회 속에서 날마다 그들이 겪는 일상은 얼마나 잔인하고 치열한지...

다른 몸이 아니라 이상한 몸이다. 개성이 아니고 비정상이다. 붐비는 지하철에서는 왜 나와서 민폐냐는 소릴 듣기 일쑤다. 능력과 생산성을 이유로 일터에서 외면받고 장애인 콜택시 이용시간에 따라 통금과 이동통제를 받아야 하며 심지어 ‘술 마시면 이용금지’라는 말도 안 되는 제한도 당한다.

배고파도 갈 수 없는 식당이 부지기수며 먹고 싸는 일도 맘대로 할 수 없는 모욕감을 수시로 견뎌야 한다. 번번이 무시되고 배제되고 차별되고 차단되는 일상의 연속이다. 그런 현실에서 장애인은 어떻게 자존감을 지켜내며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인정받을까.

"한국사회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싶다면, 싸워야 한다!"

이 책은 마지막에 이렇게 단언했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를 바꾸는 것,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이뤄내는 것. 그것이 각 개인의 진정한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불의한 권력과 부조리한 사회에서 약자들이 순응하는 한 결코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며 진정한 자존감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을 “우리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면, 싸워야 한다!”로 바꿔 읽는다. 장애에 대한 온갖 편견과 차별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장애’를 독특한 개성의 자존감으로 갖게 되려면 적극적 저항만이 변혁을 이뤄낼 수 있다.

네이마르 부상 관련 연합뉴스 캡쳐. ⓒ네이버 뉴스

'3천억 원이 쓰러졌다' 네이마르, 오른발 골절상.

오늘도 이런 기사의 헤드라인이 인터넷에 대문짝만하게 걸렸다. 내 조막만 한 오른발은 10원도 안 할텐데... 한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이렇게 손쉽고 얄팍하게 수치화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치를 달성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게 더 쉽기 때문에 세상이 권하는 가짜 자존감에 쉽게 매혹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쉬운 것’보다 ‘옳은 것’을 하면 좋겠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장애가 자존감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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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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