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인내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인내하는 것들 중 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일까? 어려움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또 상황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에 그것을 인내하며 겪는 고통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오며 마주해야 했던 어려움들 중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만큼 큰 인내를 필요로 했던 시기들 중 하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한 때였던 것 같다.

일단 소득이 없으니 경제적으로 형제들에게 의지해야 했고, 정해진 시간과 주어진 순서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일도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밤과 낮의 구분도 없어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희망도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 중 졸업 후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이런 저런 대비들을 하고 나름의 능력을 갖추어 가지만 나는 그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떠한 준비들을 해야 하는지 그 자체를 알지 못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만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당장에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더라도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면 어떠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처럼 좌절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때의 그런 경험이 지금 내가 직업재활이라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사람을 지금 만난다면 최소한 희망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도 아직까지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시각장애와 발달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 졸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한 직업재활 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십여년전부터 해 왔다.

사실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 꼭 풀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진다. 마치 학기초에 이번 학기 과제는 무엇인데 과제 제출은 불시에 받을 것이고 학기가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제출 받을 것이니 언제든 제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라는 안내를 받은 것 같은 그런 문제가 바로 시각장애와 발달장애를 동시에 가진 이들을 위한 직업재활 서비스 마련이다.

나는 약 12년전 쯤 직업재활분야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맡았던 업무가 직업평가였다. 다양한 평가도구들을 활용해 시각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적 흥미와 적성, 다양한 능력 등을 알아보고 그 결과와 상담 내용 등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잘 맞는 직업이나 직종을 추천해 주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 직업평가센터가 전국에 1개소밖에 없어 시각장애 특수학교 등을 직접 찾아가서 직업평가를 하는 이동평가도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맹학교라 불리는 시각장애 특수학교로 이동평가를 나갔을 때 시각장애와 발달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평가도구들이 거의 없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로 느껴졌던 것은 맹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 중 이런 중복장애 학생들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부터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직업재활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이러한 생각을 했지 정작 그 방법들을 찾아보기 위한 특별한 시도를 하지 못한채로 12년여가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 전 외근을 갔다가 졸업식을 마치고 나오는 고교생들을 보고 처음 시각 중복장애 학생들을 위한 직업재활서비스의 필요성을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12년이면 그 당시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학생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마치고 졸업을 하는 기간이다. 아직 시각 중복장애 학생들을 위한 전환기교육 프로그램이나 직업재활 서비스가 마련되지 못했기에 이들은 졸업 후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큰 상실감 속에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아갔던 것처럼 이 학생들도 졸업 후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 떠올라 한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요즘은 시각중복장애 학생들을 위한 학습지원센터도 생겼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생각하려고 애를 써 보기도 했다.

물론 근래에는 다양한 치료프로그램에서부터 시각중복장애학생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을 위한 서비스까지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졸업 후 직업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서비스는 아직도 부재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 방향조차 잡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최근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와 시각장애를 모두 가진 이들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특히 이들이 특수교육 환경에서 떠나야 할 때를 준비하기 위한 전환기교육이나 직업재활 서비스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또, 이들에게 과연 직업재활서비스가 필요한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수도 있다. 자칫 이러한 서비스들이 그들이 원하지도 않는 작업장이나 훈련 환경 속으로 이들을 내몰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문제를 계속해서 미루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한다.

12년전 시각장애와 발달장애를 동시에 가진 학생들을 위한 직업재활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러한 고민만 해 왔고 어떠한 방향조차 잡지 못한 내 경우를 생각하면 좋겠다.

또, 졸업 후 누군가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도 소속되지 못하고 상실감이나 소외감을 느낄 수 있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장애로 인해 졸업이 희망의 상실을 의미하는 아픈 현실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말아야한다.

적합직종이나 성공적인 모델 발굴은 미루더라도 전환기교육이나 간단한 작업훈련 만이라도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시급하다.

그동안 지원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기에 최근에 다양한 지원정책들이 마련되고 있는 발달장애 영역은 그래도 특수교육을 마치면 직업적응 훈련이나 보호작업장 등 제한적이나마 소속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시각장애와 발달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졸업생들은 졸업 후 소속될 수 있는 곳 조차 찾기 어렵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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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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