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5.(화)

총회, 스포츠 사업단 운영계획안 및 신규 사업 기획안 작성 등 설 전에 마무리 지어야할 산적해 있는 문제들로 마음이 조급한 요즘.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사무실 책상 머리맡에 앉아 있어야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니 ‘정시 칼 퇴’란 미풍양속이요 계승해야 할 전통이 된지 오래입니다.

pm. 20:00

되도 안 한 머리를 굴려봐야 거기서 거기. 몇 시간째 진도 없는 계획서에 껌뻑이는 커서에다 눈꺼풀을 싱크(sync)시키니 이내 “레드 썬~” 최면에 걸린 듯 졸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때...

“지부장님, 태은이(이하 ‘공군’)가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왔다고 어머니께 연락이 왔는데 어쩌지요?” 협회 팀장님(이하 ‘탁팀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뭔 소리여? 사무실에서 출발한지가 네 시간이나 지났는데.

사실 잊을만하면 터트려 주는 공군의 전력에다 아직 *최고기록엔 미치지 못하는 터라 그리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습니다. “어머니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합시다. 또 버스를 잘 못 탔나 보죠 뭐.”

*종전기록: 버스로 30분이면 갈 거리를 ‘4시간’만에 도착함.

pm. 21:00

“지부장님, 아직도 안 들어 왔데요. 가끔 늦긴 했었어도 이렇게 늦은 적은 없는데 어쩌지요?”

그러고 보니 자신의 종전 기록을 깡그리 갈아 치운데다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맹추위에 평소보다 얇은 점퍼를 걸치고 온 녀석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 진짜 바빠 죽겠는데. 너 이 쉑히, 내 손에 잡히면 뒈졌어’ 속으로 수없이 되새기며 그 길로 퇴근해 버스 터미널에서 반대편 종점까지 역으로 수색해 갑니다.

큰 메인도로를 이등분 해 터미널에서 공군이 내리는 정류소까지는 (걱정이 되는지 함께 찾겠다며 그 밤에 달려온) 탁팀장이, 혹시나 걸어오다 마주칠지도 몰라 공군 집 근처 도로를 기점으로 배터리 방전으로 휴대폰이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위치가 확인되었던 정류소를 경유해 마지막 종점까지는 제가.

pm 23:00

두 시간에 걸쳐 수색경로에 있는 정류소란 정류소는 하나도 빼지 않고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 사이 공군 어머니는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했고요.

‘너 이 쉑히, 뭔 일 있음 뒈졌어’

그 사이 마음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혹시나 차비가 없어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류소 수색을 중단하고 인도를 중심으로 집 앞까지 몇 차례 더 순찰합니다.

pm 23:30

“팀장님, 어머님껜 별 소식이 없나요?”

“네...”

“할 수 없죠. 실종신고를 했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요. 어머님께 말씀 좀 잘 드려주세요...”

천근만근인 몸과 마음을 이끌고 방향을 틀어 집으로 향합니다.

pm 23:32

“지부장님, 찾았어요.”

절망이 흥분으로 변하기엔 2분이면 충분했습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게 이런 것이었나 봅니다.

나: 정말요? 어떻게요?

탁: 방금 전 지세포에서 출발한 마지막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삼촌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나: 지, 지세포요? 헐~~

(좌) 우리가 찾아 헤매던 경로, (우) 공군이 버스로 이동했던 경로. ⓒ제지훈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도피행각을 벌이던 공군의 일탈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만, 만에 하나 삼촌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오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am 12:10

가족들 모두가 잠든 시간.

좁은 방 한 칸에 아내와 아이들 셋이 나란히 누워 잠든 모습을 보니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복에 겨워집니다.

am 10:00

치열했던 밤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아침.

공군이 협회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지부장뉘~임, 나 어제 지세포까지 버스타고 여행 갔다 왔어요.”

확~ 저 녀석을 어찌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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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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