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냉면집이 있다. 메뉴는 다양하지만, 선택하는 건 늘 비빔냉면이다. 3대째 내려오는 비법으로 무장한 매콤한 소스는 눈물과 콧물을 뽑아내며 항복을 유도한다. 너무 매워 ‘다시는 안 먹는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해도 출출할 때면 또 생각나는 별식이다.

익숙한 공기는 편안함을 선물한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아저씨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바로 면을 뽑기 시작했다.

주문도 하기 전에 양념을 덜어내며 “맵게 하실 거죠?”라고 묻는다. 얼떨결에 긍정의 대답을 보냈고, 바로 비빔냉면이 나왔다. 역시 맛있었다. 그날 밤 뱃속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가 화장실로 이끌긴 했지만.

한데 사실 그날은 물냉면을 먹고 싶었었다면 어땠을까? 매번 하던 일도 싫증날 때가 있고, 늘 가던 길도 돌아 가보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냉면집 주인은 졸지에 손님을 무시한 악덕 업주가 되는 거고, 말 한마디 못하고 매운 냉면을 꾸역꾸역 먹은 손님은 돈 내고 원하는 것도 못 먹은 피해자로 둔갑한다.

게다가 한밤중에 뱃속 전쟁까지 치렀으니 이로 인해 생긴 피해를 보상해야 하는 것도 업주의 몫일 게다.

실과 바늘이나 햇님과 달님처럼 두 단어가 한 묶음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언젠가부터 하나의 단어로 기능하기 시작했고, 고로 선과 후도 고착화됐다. 바늘과 실보다 실과 바늘이란 말이 더 익숙하게 들리는 이유다.

선후의 결정은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이지만, 때로 그것에 대한 합리성은 모호하다.

‘존중과 배려’는 말의 결이 좀 다르다. 두 단어가 한 단어로 쓰인 다른 경우보다 합리적인 결합이라고 볼 수 있어서다. 냉면집 주인의 행동은 손님에 대한 배려였다. 식성을 알고 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 메시지다.

단골 음식점의 공기가 편안한 이유기도 하다. 하나 그날의 행동이 손님을 존중한 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손님의 의견을 무시한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존중이 선행돼야 상대에게 배려받았다는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거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존중이 배려로 치환되는 일이 다반사다. 십 수 년을 함께 한 가족의 경우나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온 연인 등이 이러한 갈등을 자주 경험한다. 상대에 대해 잘 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가끔 만나는 음식점 사장님도 그럴진대 추억을 공유한 사이는 오죽하랴?

예나 지금이나 장애인 시설에서 발생하는 폭행이나 폭력사건도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한다. 사회에는 여전히 장애인을 대하기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어쩌면 그들 중에는 장애인을 짐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을 거다.

그래서 직업이 특수학교 교사라거나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한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경험에 의하면, 누구보다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해줘야 할 이들이 외려 장애인에 대해 더 많은 편견을 가지고, 무시하는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런 행동의 근본적 이유는 우월의식과 장애인에 대해 타인보다 많이 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설에서 일하는 이들은 장애인을 통제의 대상으로 본다. 나아가 일반 사람들보다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많기에 장애유형별로 차별대우하는 경우가 생기고, 이를 정당화시킨다.

예컨대 지능이 떨어지고, 부모나 가족이 없는 장에인들은 막 대해도 누군가에게 알릴 능력이 없으며, 혹 누군가 안다 해도 그가 자신을 더 믿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 이런 인식들로 인해 성폭행 등 장애인 시설에서의 장애인 대상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 거다.

결국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폭행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일단 장애인 시설에 근무하는 이들의 의식변화가 중요하다. 핵심은 자신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깨닫는 거다. 그다음으로 당국의 시설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어져야 한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가 도래하기 위해선 장애인에 대해 안다는 함정에서 벗어나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는 게 절실히 필요하다. 시설이건 사회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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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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