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이 많이 느린 것 같아요. 아직 모방 행동을 잘 하지 않아요.”

아이가 15개월 즈음이었을까 정기 검진을 위해 소아과를 찾은 나는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았던 걱정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의 발달은 다 다르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고 조금 기다려보세요”라는 뻔한 대답을 예상했던 나의 기대와 달리 의사 선생님이 작은 책자를 건내셨다.

주정부 조기 개입 프로그램(Early Intervention Program). 여기 적힌 번호로 전화해서 약속을 잡고 아이의 발달 정도를 평가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함께 건넨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만 15개월부터 주정부 교육부 지원으로 조기 개입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미국 연방정부 장애인 법(ADA, American Disability Act) 밑에는 만 0세부터 22세까지의 장애 아이들을 위한 특수 교육법(IDEA,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이 있다.

1990년대부터 특수 교육 분야 중에 한 부분으로 소개된 만 0세에서 3세까지 아동을 위한 조기 개입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미국 연방 정부와 주정부가 막대한 기금을 쏟아부으면서 투자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1990년 즈음부터 수많은 연구들이 만 0세에서 3세까지 뇌의 무한 잠재 가능성에 대한 결과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발달의 황금기(Golden Age), 이 시기에 주는 자극과 교육이 의학적으로나 발달상으로 장애의 위험이 있는 아이들의 발달 지연을 최소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물론, 미숙아, 의학적 질환이 있는 아이들, 발달 지연을 보이는 아이들, 심지어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까지 만 3세 이전 아이의 발달을 지연시키는 모든 위험 부담을 조금이라도 가진 아이들은 이 조기 개입 프로그램의 대상자가 된다.

지역 센터에 전화해 문의 전화를 하고 나면, 작업 치료사, 물리 치료사, 언어 치료사, 특수 교육을 전공한 선생님,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전문팀이 가정을 방문해 아이의 발달과 건강들을 검사하며 조기 개입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마다 다르지만 당시 우리가 살았던 메릴랜드 주의 경우 다양한 발달 검사(인지 발달, 운동성 발달, 언어 발달, 사회성 발달 등) 중에서 단 한 가지 영역에서라도 또래보다 25% 이상의 발달 지연을 보이면 조기 개입의 대상자가 된다. 장애 진단명이 있는지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발달이 또래보다 조금 느리다는 이유 하나면 충분히 서비스의 대상자가 된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서비스는 전적으로 가정 방문으로 이루어진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어딘가를 방문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이 시기에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가정이다 보니, 가정이란 환경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 함께 아이의 발달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여러 영역에서 조금씩 발달 지연을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주로 일주일에 한번 작업 치료사, 물리 치료사, 언어 치료사 등의 전문 인력이 한 시간씩 가정 방문을 하여 아이를 가르친다.

이외에도 특수 교사가 매주 한 시간씩 가정을 방문해 부모에게 어떻게 환경을 바꾸고 교육을 이어갈지 가르쳤다. 아이의 필요에 따라서 아동 상담사나, 청능사(Audiologist), 영양사가 방문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결국 전문 인력의 배치는 오로지 아이의 필요에 따라서 구성되는 셈이다.

이렇게 만 3세까지 조기 개입을 받은 아이들은 3세가 되면 다시 검사를 받고, 아직도 발달 지연이 발견되면 특수 어린이집이 설치된 공립 학교로 입학을 하게 된다. 더이상 서비스가 필요 없다는 결과를 받는 아이들은 만 3세에 조기 개입 프로그램을 졸업하게 된다.

미국 조기 개입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적으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첫 번째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실제 전문 서비스가 시작되는 날이 반드시 45일 이내여야 한다고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45일이라는 시간을 법이 보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만 0세에서 3세까지는 하루 한 달이 아이의 발달의 황금 시기(Golden age)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장애인 법은 예산이나 프로그램 운영의 미숙, 전문 인력의 부족, 예산의 부족 등의 핑계로 이 시기를 놓쳐버릴 여지를 주정부에 허락하지 않는다.

주정부는 예외없이 서비스가 필요한 가족이 들어오면 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전문 인력을 충당하여 이 법이 정한 시간을 맞춰야만 한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속도로 자란다. 대부분의 경우, 조금 느린 아이가 있고 조금 빠른 아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일분, 일초가 언젠가 일 년, 십 년, 혹은 평생의 발달 지체와 장애로 연결될 아이들 또한 세상에는 존재한다.

조기 개입 프로그램만이 그 일 년의 십 년의 혹은 평생의 차이를 조금은 줄여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는 미국에 더 이상 두고 봅시다(wait and see)라는 조언은 통하지 않는다. 무한 가능성을 가진 발달의 황금 시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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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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