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네이버영화

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나는 엄청 울컥하며 가슴 찡하게 봤는데 다른 관객들 반응은 영 신통치 않은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2009)>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애절하고 가슴 시린 영화…’ 카피가 이러하니 멋진 현빈과 이보영의 가슴 시리고 애절한 멜로를 기대했을 텐데 막상 보고 나면 그런 달달한 로맨스를 느낄 수 없으니 관객 입장에선 속은 느낌일 수밖에.

이 영화 속의 사랑은 결코 ‘로맨틱’ 하지 않다. 사실 사랑 얘기라 봐 주기도 어렵다. 이 영화에선 잘 생기고 멋진 현빈을 결코 기대해선 안 된다. 한없이 망가지고 볼품없기까지 한 애처롭고 가엾은 한 남자가 거기 있을 뿐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와 엄청난 도박빚을 남기고 자살해버린 형, 그래서 버겁기만 한 삶으로부터 도망쳐 버리고 싶었던 주인공 만수는 결국 정신을 놓아 버렸다.

과대망상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만수는 그곳에서 그녀, 수경(이보영)을 만난다. 직장암 말기의 아버지를 간호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수간호사 수경, 그녀의 삶 역시 악몽이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월급마저 차압 당하며 괴로운 현실을 위태롭게 견디고 있는 그녀에게 병원비에 보태라며 종이에 ‘천만 원’이라고 써서 그만의 돈을 서슴없이 쥐어주는 과대망상증 환자 만수는 한 줄기 따사로운 위안이다.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의 만수, ⓒ네이버영화

정신을 놓으면서까지 필사적으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사람을 굳이 잔인한 현실로 되돌려 놓아야 할까?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까지 이른다.

만수의 정신과 담당의 형철(김성민)의 집요한 치료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의사의 당연한 치료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잔인한 일처럼 느껴진다.

병적인 착각일지라도 ‘제발’ 그 행복 속에 만수를 내버려 둘 수는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냉철한 직업의식만 있는 의사 형철에 대해 증오마저 느낄 지경이 된다.

또 직장암 말기인 아버지의 고통을 바라보는 수경은 어떤가. 환자인 아버지는 더 이상 고통스런 생명을 애써 이어가고 싶지 않다. 병원비 걱정과 병수발에 지쳐 아버지인 자기보다 더 수척해가는 딸을 보는 일이 그에게는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

그래서 제발 치료를 중단해 주기를 애원하지만 딸인 수경은 그런 아버지를 놓아줄 수 없다. 과대망상 속에서 행복해하는 만수를 끝내 현실로 되돌리려는 의사 형철이나 아버지의 선택을 끝내 외면하는 딸 수경이나 어쩌면 둘 다 잔인하긴 마찬가지.

의사로서, 딸로서 당연한 그것이 잔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가 지금껏 당연하다고 믿어 왔던 어떤 것이 뒤흔들리는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 묘한 대비로 우리의 생각을 뒤흔드는 이 기막힌 이야기의 바탕은 이청준의 원작 <조만득 씨>에서 가져 왔다. 명불허전의 이 노련한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너무도 날카롭게 우리에게 되묻는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것이 과연 정답인가?

영화 <청원>, 영화 <미 비포 유>, ⓒ네이버영화

영화 <청원(2010)>과 <미 비포 유(Me Before You,2016)>는 둘 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안락사 문제를 다루었다.

<청원>은 일명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 영화로 ‘안락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발리우드 영화답게 화려한 음악과 춤으로 볼거리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마술사인 주인공의 마술쇼까지 어우러져 꽤나 판타스틱한 영화다.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그야말로 잘 나가는 마술사인 이튼이 그를 시기한 친구 때문에 사고로 척추를 다쳐 장애를 갖게 된다. 마술은 다시 할 수 없게 됐지만 이튼은 개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제2의 또 다른 삶도 멋지게 살아낸다.

그러나 제2의 또 다른 의미의 삶도, 그를 사랑하는 간호사 소피아의 지극한 마음도 ‘고통스런 삶’을 끝내고 싶은 이튼을 삶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이튼이 법원에 자신의 ‘안락사’를 청원하고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청취자에게 자신의 ‘안락사’ 선택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장면들을 통해서 ‘안락사’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지루하지 않게 녹여냈다는 점도 이 영화의 장점이겠다.

그리고 ‘안락사’를 선택하는 또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 <미 비포 유>. 촉망받는 사업가였던 윌 역시 사고로 목 아래로는 모든 기능을 잃어버리는 장애를 갖게 된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에 ‘안락사’를 신청해 놓고 남은 6개월 동안 함께 하는 루이자 클라크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윌 역시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끝내고 싶은 주인공이다.

그럼 이제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가 우리에게 묻는 방식으로 다시 질문해 보자. 만수를 잔인한 현실로 되돌려 놓는 것만큼이나, 수경이 아버지를 놓아 줄 수 없는 것만큼이나 이튼과 윌에게 ‘그래도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일인가?

나는 그 답을 <나는 행복합니다>의 결말을 함께 보는 것으로 대신 하고 싶다. 결국 만수는 끔찍한 현실로 되돌아 왔다. 다시 악몽의 시작이다. 아니 어쩌면 꿈속에 있다 돌아온 현실은 더 고통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마지막 장면은 캄캄한 새벽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달리는 만수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다시 생존을 위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다시 살아남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짙은 어둠은 앞이 보이지 않게 그를 둘러싸고 있다.

오토바이 라이트만큼의 빈약한 빛을 의지해 앞을 가늠하며 끝없는 어둠을 뚫고 만수는 달려간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 그래도 사는 삶... 어쩌면 참 잔인하고 냉정한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냉혹한 삶터로 밀려온 만수에게 윌과 이튼이 소원하던 ‘인간답게 죽을 권리’는 과연 어떻게 들릴까?

몇 년 전 ‘장애인의 태어날 권리’에 대한 다큐 제작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설문 조사한 적이 있다.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장애가 있다는 검사결과가 나온다면 당신의 선택은?”... 설문 결과, 장애가 중증이어도 사회활동이 많은 장애인일수록 장애아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서 장애를 ‘긍정적’으로 경험한 사람일수록, 주변 장애인들과 상호관계가 많을수록 설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윌과 이튼의 선택에 대해서도 다른 질문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안락사’ 선택이 과연 옳은가? 혹은, 그들에게 그래도 삶을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일인가?를 묻기 이전에 그들에게 ‘장애’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 사회에는 과연 책임이 없는가? 하고 말이다.

지난 2016년 리우 패럴림픽에서 벨기에 휠체어 스프린터 ‘마리케 베르보트’ 선수는 올림픽이 끝난 후 안락사를 실행할 계획이라고 밝혀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날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던 그녀는 올림픽 출전을 마지막으로 그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결국 은메달 소식과 함께 안락사에 대한 뜻을 거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녀의 안락사 계획에 대한 기사가 과장된 오보였든 계획 철회였든 올림픽 출전에 대한 긍지와 승리에 대한 성취감이 결국 그런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존엄한 죽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모두 다양한 토론과 접근이 필요한 중요한 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존엄한 죽음’이란 반드시 ‘존엄한 삶’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단지 결핍과 고통이 없는 삶만이 완전하고 존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만수가 그랬듯,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을지 모를 그 작은 빛에 의지하며 그래도 걸어가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삶이 열어 보여주는 신비, 그것이 바로 삶을 완성하고 존엄하게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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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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