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에 간 항승과 주리 ⓒ최선영

햇살에 비친 하얀 눈이, 아름답게 빛나는 날입니다. 항승의 마음에 주리를 담고, 주리의 눈에 항승을 가득 넣고. 그들은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 그 첫 시작을 합니다.

그 시작이 평창동계패럴림픽으로 이어지리라고는 항승도 주리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족을 하고있는 항승은 어쩌면 불가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족 스노보드 커뮤니티인 ‘헝그리보드’에서 같은 조건으로 스노보드를 즐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조언은 ‘어쩌면...’이라는 막연한 불가능을 ‘당연히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부츠를 착용하고 의족 철봉에 준비해왔던 수건을 꺼내 테이프로 칭칭 감았습니다. 공간이 남는 부츠 속을 채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 중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습니다. 고글을 쓰고 있었지만 그 시선이 고스란히 항승과 주리를 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주리는, ‘사랑’ 그 시작의 손을 잡은 이후부터 그런 시선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성우에 심철 첫 개장날.

초보자들이 데크 신고 일어나는 것을 연습하는 오작교 중간의 작은 언덕에서 항승의 꿈이 시작됩니다.

오른쪽 다리가 의족, 오른쪽 팔은 어깨까지만 있는 항승은 왼쪽 바인딩을 채우는 것은 왼팔이니까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오른쪽 바인딩을 채우려니 왼팔이 반대로 가서 힘을 줘야 했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몇 번 해보더니 혼자서도 잘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는 혼자 일어나기입니다. 보통 앉아서 바인딩을 차면 오른손으로 데크 앞 부분을 잡고 왼손으로 뒤 바닥을 짚으면서 일어나지만 항승은 왼손 밖에 쓸 수가 없으니 바닥만 뒤로 짚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어때? 너무 힘들지 않아?”

“아니, 할만해.”

그곳은 경사가 거의 없어서 일어나자마자 중심을 잡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 일어나기도 쉽게 성공했습니다.

“오~ 스노보드 체질인데^^ 너무 잘 한다.”

첫날의 목표를 20분 만에 이루고 나니 주리에게는 더 큰 욕심이 생겼습니다. 둘 다 한 번 느낌이 오면 끝까지 가보는 성격이라, 일어나서 앞으로 내려오는 단계에 바로 도전했습니다.

2시간 정도 타고나니 항승은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혼자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나도 초보라 말로 설명하는 게 더 어렵다. 내가 타는 걸 잘 보고 힘이 들어갈 곳을 한 번 찾아봐”

주리의 시범을 보고 항승은 신기하게도 알아서 잘 찾아내고 자세를 잡아갑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보드를 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리와 항승은 기뻤습니다.

“난 장애 때문에 사실 보드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리 너 때문에 절대 불가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고마워.”

이렇게 시작한 항승은 어느새 주리보다 더 잘 타게 되었습니다.

스노보드를 타며 웃고 있는 항승 ⓒ최선영

“평소에는 속도 내서 달리지 못했는데 보드 위에서는 달릴 수 있어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서 정말 좋아”

주리는 그의 말에, 네 살까지 마음껏 달릴 수 있었던 그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겠지만 항승에게는 아련히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리지 못하는 현실이 많이 답답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항승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스노보드 정말 잘 시작 한 것 같아”

“응 정말 고마워 주리야.”

새하얀 눈 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그들에게 많은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헝그리보드’에 올린 주리의 글을 보고 친히 강습해 주시겠다는 전문강사님 덕분에 주리의 능력 밖에서, 주리보다 더 잘 타게 된 항승이, 체계적인 강습을 받는 모습에 주리는 강습을 해주고, 응원하며 선물을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감사한 마음 가득합니다. 세상이 보내는 따뜻함으로 그 겨울이 몹시도 포근했습니다.

복지 재단에서 주최하는 절단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키/보드 캠프 소식을 듣고 항승과 주리도 참가했습니다. 주리와 항승은 그곳에서 의족을 한 채로 스노보드 협회 강사 자격을 취득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께 궁금했던 점들을 묻는 과정에서 그동안 답답했던 부분들에 대한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했던 레귤러에서 구피로 바꿔 처음부터 다시 연습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이 당황스러웠지만 의족을 한 채로 스노보드를 타는 항승에게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부츠를 신고 벗는 어려운 문제까지 해결되어 주리의 도움 없이 온전히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항승을 평창동계패럴림픽의 길에 더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승에게 ‘버즈런’에서 제작해준 맞춤 부츠는 그에게 새로운 보드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단순히 취미로만 시작했던 스노보드에 좀 더 강한 열정을 쏟아붓게 만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보드를 타고나면 항승의 의족 소켓(다리와 연결되는 통)에는 피가 섞인 땀이 가득 고여있었습니다. 보드를 타다가 의족 발목이 돌아가서 로보캅처럼 걸어 다녀야 한 적도 있었고, 의족 나사가 풀려 정말 큰 사고가 날뻔한 무서운 상황이 일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만날 때마다 차라리 좀 더 편하게, 좀 더 안정적으로 다른 취미생활도 하고 일상생활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노보드 안에 담겨있는 항승의 열정이 너무 커 보여서 주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마음 아픈 순간도 많았지만, 그를 응원하며 미소를 보냈습니다.

보드를 좋아하는 주리의 마음과, 보드를 사랑하는 항승의 마음이 함께 만난 그들의 겨울은 강원도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보낸 기억이 없습니다.

“보드 탈 때 엄청 멋있는 거 알지?”

“응 정말 고마워 주리야. 나...”

항승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주리를 바라봅니다.

“응 말해.”

“나... 연습해서 평창동계패럴림픽에 나가고 싶어.”

“동계패럴림픽에?”

“응...”

주리는 항승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경제적인 문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지훈련도 가야하고... 우리 많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꼭 도전해보고 싶어.”

항승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봅니다. 늘 반짝이는 사람이지만 보드를 탈 때 가장 빛나는 항승,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동계패럴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다정한 모습 ⓒ최선영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서 평창동계패럴림픽 선수가 되자.”

“고마워. 주리 네 덕분에 큰 꿈이 생겼어. 너와 함께라면 이루지 못할 꿈도, 하지 못할 일도 없을 거야.”

“난 항승이라는 남자 만나고 이해심도 깊어지고 더 많은 걸 보게 된걸~나도 고마워.”

“우리... 결혼식도 설원에서 할까?”

“호호 멋진 생각인데. 좋아 그러자.”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항승을 가족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주리는 많은 고민을 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항승을 데리고 강원도 부모님댁으로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항승과 부모님을 만나게 했고, 그럴 때마다 항승의 장점들을 줄 세워 말하며 부모님이 항승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주도면밀하게 순탄한 결혼을 위해 하나하나 진행해 나갔습니다.

스키장 인근인 시골집에는 장작도 패야 하고 사소하게 해야 할 집안일이 많았습니다. 주리는 장애가 있어도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항승에게 장작을 패게 하고 그의 좋은 성품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나중에 눈치를 채신 부모님은 주리가 항승의 칭찬을 하려고 하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해라. 좋은 사람인 건 잘 알고 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님도 이미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아있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이 심적 사회적 고난을 겪어 실패할 때, 다시 일어나는 게 상대적으로 힘들지 않겠니...”

“걱정 마세요. 저희 지켜보셨잖아요. 잘 할 수 있어요.”

부모님은 그들의 단단한 사랑을 보며 남은 걱정마저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항승과 주리의 결혼식 ⓒ최선영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그들의 바람대로 설원에서의 결혼을 진행했습니다. 하객들 입장을 고려해 예식은 리조트 홀에서 하고 신랑 신부 행진을 스키장 슬로프에서 합니다.

아름다운 그들의 첫걸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 인해 그들은 겨울, 그 시작의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위해 주리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아무 염려 말고 마음껏 보드만 타. 대신 남은 인생은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해.^^”

사랑스러운 미소와 속 깊은 그녀의 마음에 항승은 무척이나 고마웠습니다.

나가고 싶다고 다 나갈 수 있는 올림픽은 아니지만 평창에서 열리다 보니 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이미, 경기도장애인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와 미팅을 진행했고, 항승의 스케줄에 맞춰 훈련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고난 숨은 재능과 노력으로 그는 평창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로고와 스노보드 사진 ⓒ최선영

항승이 출전하는 스노보드는 2014소치동계패럴림픽에서 알파인스키 세부 종목에 포함돼 시범 종목으로 경기를 치렀는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장애인 스노보드는 상지장애와 무릎 위 하지 장애, 무릎 아래 하지 장애로 등급이 나뉘고 스노보드 크로스, 뱅크드 슬라롬으로 각각 성별, 등급에 따라 총 10개 부분에서 치러집니다.

항승은 상지절단과 하지 절단, 중복이기 때문에 분리한 상황입니다. 상지절단으로 등록해 출전을 하기 때문에 항승은 의족 적응훈련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지훈련을 떠날 때면 주리의 마음은 텅 빈 공간이 되고 항승의 빈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웁니다. 죽을힘을 다해 훈련하는 항승도 늘 주리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땀을 흘립니다.

“주리야 사랑해”를 외치며.

이들의 사랑에는 장애가 없어 보입니다.

미소짓는 항승과 주리의 다정한 모습 ⓒ최선영

항승과 주리는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패럴림픽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항승과 주리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선수가 되기까지의 도전을 보며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지 삶에 다른 걸림을 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항승과 주리의 꿈이 이루어지고 그 사랑이 영원히 빛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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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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