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재가 그림을 시작하고 중2병의 방황이 조금 잦아들면서 잠시 엄마의 마음에 평화가 오는 듯했지만, 그 평화는 오래 못가고 또 다른 더 심각한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유난히 혼자 시간을 즐기는 규재의 성향이 그림을 하며 정서적으로는 안정이 되는 듯 보였지만 사실 자폐적 특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인기를 앞둔 규재의 복지관 친구들은 세상 구경을 즐기는 것인지, 호기심이 생기는 것인지, 외출하기를 좋아해서 가끔 말없이 집 밖을 나갔다 오기도 하고 새로 개통된 지하철 노선을 탐색하러 슬쩍 가출^^을 감행하기도 해서 그 엄마들은 행여 길을 잃을까, 나쁜 일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걱정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규재는 점점 더 은둔형으로 고착되면서 집 밖으로 나가길 거부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 앉아서 종이접기나 퍼즐이나 조립,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습니다.

주변에선 얌전하게 보이는 규재를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어마무시한 대략난감의 큰 자폐적 특성이 무럭무럭 증식되고 있었습니다.

몸의 움직임이 날렵한 편이 아닌 규재는 그 대신 ‘입’의 움직임이 매우 날렵하여^^ 그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 괴성, 혼잣말은 상상초월의 청각 고문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많아질수록 그 중얼거리는 혼잣말이 점점 큰 고함으로, 게다가 자기만의 시나리오가 있는 모노드라마나 구연동화를 하듯 등장인물도 생기고 효과음도 넣어가며 자기몰입이 너무 심해져 갔습니다.

자폐성장애인들의 특성 중 큰 고함이나 큰 괴성은 일종의 폭력 행동의 하나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어서 병원에서 관찰 치료도 받아보고 상담 치료도 오래 다녔지만 사람마다 가진 성질. 성격, 취향의 문제로 진단되어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규재의 그림은 일취월장하여 자기만의 화풍이 생기면서 색감 예쁜 그림들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첫 개인전이 열리고 많은 분들이 축하 방문을 해 주셨습니다. 근처를 지나는 분들도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을 보고 그림이 궁금하다며 들러주시기도 했는데, 그 중 본인이 화가라고 소개하는 어떤 분이 쭉 그림들을 둘러보고 엄마인 나에게 다가와 해 주는 얘기를 듣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아트브로]한우리정보문화센터 작업실. ⓒ김은정

“작품들을 시기별로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어느 그림이 제일 최초 그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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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그림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지요?”

"혹시 실례지만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점점 더 자폐스러워지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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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분 누구지?

젠틀한 분위기와 조심스러운 말투 때문인지 “실례지만...자폐스러워지지... ” 라는, 나에게 꽤 민감한 부분의 표현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규재의 자기몰입이나 모노드라마같은 소리 놀이나 흉내 놀이가 증폭된 점에 대한 걱정스럽고 고민스러운 부분을 술술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화가들 화풍과 장애인의 무의식 세계가 자극받아 나오는 에이블아트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며 앞으로 그림이 심화될수록 더 자폐스러워질것이라고...

“어머님이 고민을 많이 하셔야 할 듯 합니다”한마디 남기고 돌아서는 ‘그 화가’의 뒷모습에 찔끔 눈물이 났습니다.

‘더 자폐스러워진다니... 악담도 아니구....훌쩍... 그럼... 그림을 덜 그리믄 되지....’

규재가 그림이라는 취미가 생기면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은 당연히 혼자만의 시간이 되고, 손은 그리면서 머릿속으론 공상과 상상이 도를 넘어 자기몰입이라는 특성이 덩어리가 커지면서 자기세계의 시나리오가 입으로 터지는 과정을 자기자극으로 즐기는 정도가 심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좋아하는 그림은 그리면서 혼자 있는 시간들을 줄이는 방법....

‘아! 우리아이들이 같이 모여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임이나 공간이 있으면 서로 적극적인 교류는 힘들지만 곁에 누군가가 같이 있다는 의식들은 있으니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사회개념 학습은 되겠다!!’

규재가 고흐가 될 재목도 아니고... 요즘 현대 미술의 추세로 보자면 “당대에 안 뜨면 사후도 안 뜬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규재에게 그림은 그냥 그림일 뿐...그림이 심화되는 것보다 사람들과의 소통의 방법이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알게 해 주고 싶은 생각에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모아 엄마들과 함께 작은 그림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림이 좋아질수록 아이들 양상은 더 자폐스러워졌다는 결론에 다들 대공감하며 [아트브로;그림형제 Art Bro.]라는 혈맹 같은 이름을 붙인 우리들만의 모임이 생겼고 감사하게도 서초구립한우리정보문화센터에서 예쁜 작업실을 제공해 주셔서 마음 놓고 좋아하는 그림을 함께 모여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 자폐성장애인들 중에 그림을 즐기는 이들은 아직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당사자와 조력자로서의 부모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그림모임이 더 많아지길 바라던 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안산에서 그림을 좋아하는 우리 자폐성장애인의 어머니가 주축이 되어 [블루윙스;Blue Wings]라는 예쁜 이름의 그림모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파란 날개...”참 멋진 이름입니다. 우리 자폐성장애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파란색이 모티브가 된 것이겠지요.

[블루윙스]작업실. ⓒ김은정

반가운 마음에 [블루윙스]의 대표 곽은주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시간 제약 없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작업실이 필요했고 지금까지의 미술치료나 렛슨 형태의 수동적 활동이 아닌 자신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며, 독특하고 특별한 시선으로 그려 내는 선과 색감이 미래의 4차 산업 시대에 자폐성장애인들의 특화된 직업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장애 고등학생들과 초등학생이 활동 중이며 향후 성인기가 되었을 때 경제 활동으로 전환되어 정기적 소득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고, 예술인으로서도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도 구상중입니다.

우리 사회가 자폐성장애인도 주체적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 주길 바라며 우리 부모님들도 내 아이가 벽에 그린 한 줄의 낙서도 그 아이가 선택한 표현의 방법으로 존중하고 지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자폐성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즐겁게 누릴 수 있는 행복권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활성화와 제도와 정책을 바꾸어나가는 개혁운동이 촘촘한 네트워크로 협력해서 직업과 자립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곽은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후배 엄마들의 현명함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장애인’은 복지와 치료만의 대상이 아닌 보편타당한 원칙과 룰이 적용되어 성과를 생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당당한 인적자원으로 인정받아야 함을 다시 한번 고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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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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