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길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 『구약성경』 창세기 1~2장

# “하늘과 땅이 생길 때에 미륵님이 탄생하니,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여 하늘은 가마솥의 뚜껑처럼 돋우고 땅은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웠네.” – 함흥 지역 무가 『창세가』

# “그 시대에는 존재와 비존재도 없었다. 대기도 없었고, 그 위에 하늘도 없었다. (중략) 그 당시에는 죽음도 죽지 않음도 없었고, 낮과 밤도 없었다.” – 기원전 1200년경 만들어진 고대 인도 경전 『리그베다』

태초는 혼돈에 대한 정리로 점철됐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인 우주에 지구가 생겼으며, 누군가가 그곳을 하늘과 땅으로 나눴다는 것이 세계의 시작이다.

이때부터였다. 인간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타자를 자기화하는 일에 ‘나누기’를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 말이다. 우리는 세상 만물을 구분했고, 그러기 위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나누기’ 자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유별(有別)’이다. 특성이 있다는 이 말은 개개의 개성을 그 자체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것은 그래서 구분이나 구별, 분별 등 모든 나누기의 상위개념이다.

또한 유별은 특성을 인정하기에 그 안에 상하개념은 없다. 가령, 남녀 사이에 다른 특성만 있을 뿐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는 것은 없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사장과 대리는 하는 일에 따라 유별되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유별은 평화로운 세계 건설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하고, 이런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운영됨으로써 사회가 그야말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유별하던 사람들이 차별(差別)의 늪에 쉽게 빠져서다. “너와 나는 달라”까지가 유별의 범위라면, 여기에 “그래서 내가 더 나아” 따위의 단서를 붙이는 것이 차별이 된다.

며칠 전 복지카드가 새로 나왔다. 그동안 등급심사를 미뤘다가 최근에야 다시 받았다. “우리가 소나 돼지인가”라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 혜택이 불가피해서 등급 판정에 목을 메야하는 장애인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릴 적 인연을 맺은 의사 분께선 “옛날에 내게 치료받은 분들이 몇 년 전부터 장애등급을 받기 위해 나를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봐도 봐도 속 뒤집어지는 뉴스가 장애를 도용한 사건이다. ‘장애 이용권’을 발급받은 고위층이나 그의 자제들에서 이젠 그 범위가 일반 시민들에게로 확대됐다.

급기야 고려대와 서울시립대의 학생들이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부정 입학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더니 전주교대도 명단에 추가됐다.

다행히 주범 두 명은 검거됐고,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5일 “주범을 구속하고, 부정입학한 학생 4명은 불구속 입건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경찰은 브로커들에게 돈을 건넨 학부모 2명도 공범으로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고려대와 서울시립대는 관련 학생들을 모두 입학 취소 처분했다.

한때 ‘진박감별사’란 유령이 여의도를 지배했다. 주군의 명령을 받들어 편 가르기의 진수를 보여준 창조적 정치인들이다. 이들로부터 낙인찍히면 목줄과 밥줄이 줄줄이 끊겼다.

문득 이들의 황당한 동상의 발상이 떠오른다. 대학이나 공공기관, 각종 시험 출제기관에 국가공인 ‘장애감별사’라는 직을 신설하는 건 어떤가? 웃자고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 장애감별사가 된다면, 장애가 없어 보이는 지원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왜 장애인이 되고 싶으십니까?”라고.

이런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참 쓰리고, 아린 이유는 차별철폐를 외치면서도 어떤 면에선 차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 때문이다.

더불어 그렇게라도 대학에 가야 부수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개탄스럽기 그지없으며,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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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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