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주 낯익은 모습으로 등장하곤 한다.

누군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한껏 웅크린 자세로 빗발치는 카메라의 뭇매를 온몸으로 맞으며 최대한 불쌍하게... 이름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그래 왔다. 일명 ‘불쌍모드’로 등장해 국민들의 날 선 적의를 어떻게든 누그러뜨리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연출일 것이다.

그 ‘불쌍모드’를 완성하는 필수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휠체어다. 거기에 옵션으로 마스크나 무릎 담요 한 장을 더 코디하고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는 휠체어에 이끌려 나오면 그야말로 완벽하게 ‘불쌍모드룩’이 완성된다.

이런 식으로 불쌍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다.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2008.MBC)에서와 같이 온갖 패악을 저지른 악인이 마지막에 휠체어를 탄 모습으로 등장하면 착한 주인공은 그 모습을 한없이 불쌍하게 바라보다가 결국 용서해 버리고 마는 결말의 막장드라마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쯤에서 한 번쯤 질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대체 왜 휠체어를 타면 불쌍해 보일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은 불쌍하고, 안 됐고, 뭔가 좀 봐 줘야 할 것 같다고 여기는 그 인식에서 그런 식의 연출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건 아닐까?

<오 나의 귀신님>(tvN.2015) <내 딸 금사월>(MBC.2015). ⓒ방송화면 캡쳐

지난 2015년 인기리에 방송됐던 tvN의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는 배우 신혜선이 사고로 중도장애를 입은 ‘강은희’ 역으로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그 드라마를 보며 내내 아쉬웠던 점은 ‘강은희’라는 여자가 너무나 수동적이고 연약하며 ‘불쌍한’ 장애인의 이미지로 소비된다는 것이었다.

은희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음에도 오빠(조정석)와 남편(임주환)이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매번 등장할 때마다 ‘저걸 굳이 왜 뒤에서 밀어주나’ 싶었고 은희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오빠와 남편이 일부러 일을 미루면서까지 달려오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과연 ‘장애’를 무엇이라고 느낄까 의문이 들었다.

“불쌍해요, 불행해 보여요, 도와줘야 해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장애’에 대한 느낌을 물을 때 어김없이 과반수로 터져 나오는 이 대답들의 이유를 분명히 알려주는 드라마 속 장애 이미지였다.

또 막장드라마의 대명사 <내 딸 금사월>(2015.MBC)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등장하던 전인화의 모습은 어땠을까. 전동휠체어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비서인 유재석이 그녀의 전동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며 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보다 한참 전인 드라마 <괜찮아, 아빠 딸>(2010.SBS)에서도 사고로 장애를 입은 아버지 박인환이 전동휠체어를 탔는데 매번 온 가족이 나서서 뒤를 밀어주는 장면이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는 전동휠체어가 지금만큼 대중화되지 않았으니 그랬다 치고, 그보다 훨씬 급변하는 시간을 여러 해 건너온 이후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드라마의 영향인지 가끔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애써 전동휠체어를 밀어주려는 어르신들을 만나곤 한다.

<보스를 지켜라>(SBS.2011) <그래도 푸르른 날에>(KBS.2015). ⓒ방송화면 캡쳐

게다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휠체어들은 왜들 그렇게 하나같이 구식인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환자형 휠체어’ 일색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드라마 속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하게 무겁고 구식인 ‘환자형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다.

마치 다들 고급 브랜드 운동화 신고 다니는 시대에 검정 고무신 신고 나타나는 격이랄까. ‘휠체어도 패션’이라며 장애 대중이 형형색색 프레임의 활동형 휠체어를 타고 다닌 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전동휠체어도 총천연색 프레임으로 주문 제작된 지도 벌써 한참 전이다.

심지어 수동휠체어를 전동화하는 다양한 탁찰식 모터가 출시돼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자기 개성과 필요에 맞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요즘인데도 미디어 속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환자형 휠체어’에 앉은 채 밀어주는 대로 끌려다니며 도움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지난 노희경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tvN)에서 조인성만이 얄쌍한 ‘활동형 휠체어’를 타고 나와서 시대가 요즘임을 겨우 입증했을 뿐이다.

<언터쳐블 1%의 우정> <미 비포 유>. ⓒ방송화면 캡쳐

이것과 비교해서 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Untouchable, 2011)>과 <미 비포 유(Me Before You, 2016)>가 보여주는 휠체어는 사뭇 다르다.

일단 전동휠체어의 장점을 잘 활용하고 있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은 아주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이다. 구닥다리 휠체어에 앉아 뒤에서 밀어주는 대로 이끌리는 우리 드라마 속 장애인의 모습과 신나고 역동적인 모습의 이 영화 속 장면들을 비교 컷으로 보여주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확연히 대비 된다.

전자는 “불쌍해요, 도와줘야 해요” 등 동정적인 반응 일색이지만 후자는 “재밌어요, 신나 보여요”... 긍정적인 공감들이 나온다. 아무도 후자의 모습에서 ‘장애인은 불쌍하다’고 여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때 어느 지역에서 사방을 유리로 만든 ‘투명한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어서 꽤나 원성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장애인 화장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의 이유는 나름 호의적이었다. 화장실 이용 중 장애인에게 비상상황이 발생할시 얼른 달려가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나만 생각한 아주 단순무식한 이유이긴 하지만 어쨌든 호의였음엔 틀림없다. 장애인을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 인식할 때 그것이 호의일지라도 사회 곳곳에서 얼마나 황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사례일 것이다.

‘도와주면 해결되는’ 작은 턱, 가파른 경사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계단... 이 모든 것들이 사실 확실한 ‘장애인 접근 거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합리성’이란 말로 둔갑하고 아주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도와줄 테니 해봐!’라고 조건부 자유를 윤허하는 ‘은혜로운’ 사회,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는 미디어. 과연 정말 장애인에게 호의적이고 긍정적인가.

앞으로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형형색색의 화려한 휠체어를 타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최신형 휴대폰이나 노트북만 간접광고하라는 법 있나? 다양한 기업의 휠체어도 드라마 속 주인공을 통해 소비자로서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장애도 개성일 뿐이라고 애써 부르짖지 않아도 다양한 휠체어의 모습을 통해 저절로 인식되기를, 그리고 휠체어가 더 이상 ‘불쌍모드’를 완성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아도 될 만큼 장애에 대한 동정적 인식도 사라지기를 새해 바람으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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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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