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인으로 지내다가 원치 않는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장애라는 생소한 낙인을 받게 되었을 때의 좌절감과 분노를 잊지 못한다. 부정-분노-타협-좌절-수용의 단계를 짧은 시간에 극복하고 장애를 수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수용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행히 다양한 후유증과 합병증과 싸우면서도 척수장애를 받아들이고 지낼 쯤에 또 다른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의 심정은 어떨까? 필자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으로 지내다가 불의의 사고로 척수장애까지 감당하게 된 회원의 담담한 모습에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최근 회원 중의 한 분이 방광암에 걸렸다. 어린 나이에 척수장애를 입고도 오랫동안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소변에서 피가 나오고 상황이 좋지 않아 검사를 받은 결과 방광암으로 확진을 받았다.

전이를 막기 위해 약물과 방사선치료를 한 후에 방광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고는 신장에서 방광으로 연결되는 요관을 복부로 돌려 요루를 설치하고, 장(요)루용품을 사용하여 소변을 처리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요루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워낙 품성이 온화한 분이라 겉으로는 불안함과 분노 등의 표현은 안 하시지만 그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문제는 새로운 장애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소변을 배출하는 시스템이 바뀌어서 소변이 새기도 하고 냄새가 나는 등의 곤란함이 있었다.

배변에 관련한 장루를 설치하고 장루용품을 사용하고 있는 척수장애인들이 과거에 비해 점차 눈에 띠게 늘어가고 추세임에도 보험적용 등 용품에 관하여 정확히 알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참고로 장루(인공항문)란 소장 및 대장 내 질병으로 인해 소장 혹은 대장의 일부를 복벽을 통해 꺼내서 장에 구멍을 내어 복부에 고정한 것을 말하며, 항문을 대신하여 변을 배출한다. 신경인성 장증세를 가지고 있는 척수장애인들은 원할치 않은 배변의 후유증으로 장루장애를 갖기도 한다.

장루와 요루에 대해 오픈하는 사람들도 매우 적었다.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척수장애인들이 초기에 정보를 어렵게 얻는 과정과 너무 흡사하였다.

각 장애유형마다 장애인단체가 있어서 병원에서 연결을 시켜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척수장애를 가지게 된 환자가 있다면 바로 척수협회와 연결을 해주면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 경로를 거친 후 다행히 한국장루장애인협회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요루장애에 대한 설명. ⓒ한국장루장애인협회 홈페이지 캡쳐

암 등으로 인해 요루장애가 된 경우에는 수술 후 60일간은 무제한으로 소변백의 처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후에도 피부발진이 있다면 하루에 한 개의 처방이 가능하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4개까지 수가가 적용된다. 수술 후 5년간은 5%가 자부담이고 이후 장애등록을 하면 20%의 자부담을 내야 한다고 한다.

심각한 문제는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장루장애 뿐만 아니라 요루장애를 가질 수 있는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늘 방광과 신장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신체적인 구조(선천적 또는 후천적 신경인성방광)를 가지고 있다.

자연배출이 안 되는 신경인성방광에 의해 도뇨카테타로 하루에 5~6번 소변을 배출하는 것도 힘이 드는데 배 밖으로 요관을 빼내어 소변 처리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 아는 바이지만 철저한 방광관리가 중요하다. 적절한 양의 물을 섭취하고 강제적으로 소변을 배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방광과 관련된 정밀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방광초음파 검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장애인건강권법에 의해 장애인건강검진이 실시 될 때 주장애(척수장애)에 맞는 정밀검사가 필수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방광초음파 검사나 요루동태검사, 대장내시경 등의 검사를 말한다. 그래야 2차 장애를 예방하는 파수꾼의 역할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재활의학과의 진찰 쏠림이 있는 척수장애인은 비뇨기과와도 친해져야 할 것이다. 척수장애를 잘 이해하는 비뇨기과가 없다는 불신도 있지만 이 문제는 비뇨기과학회에서 척수장애와 친한(?) 비뇨기과의사를 적극 추천하거나 양성해 주기를 바란다.

건강,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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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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