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당시는 정신지체인으로 지칭)의 성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쓴 90년대 중반은 성 정보에 오늘날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다. 당시 발달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쓴다는 것이 신기하거나 다소 무모하게 여겨지는 시대이기도 했다.

필자는 그렇게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학문적 여정을 시작했고, 그 여정은 성교육과 성상담이라고 하는 실천적 노력을 통해 2018년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거주시설 정신지체여성들의 성지식, 성적태도, 그리고 성적행동을 조사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나서 필자는 근무지인 장애인복지관의 발달장애 성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하겠다고 복지관에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 제안은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였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성에 대해 순진무구한 자녀들이 성교육을 통해 성을 알게 되면 성적행동을 하게 되어 문제가 생기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97년만 하더라도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는 거주시설의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강제불임이 사회적 이슈가 된 1999년이 되어서야 도래하게 되었다.

필자가 발달장애인들의 성에 대해 연구하고 또 그들에게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발달장애인들도 필자처럼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또, 그런 삶을 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사람들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필자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품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필자는 인간의 품위란 본능을 통제하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본능이라고 하는 것들은 주로 식욕, 수면욕, 성욕을 말한다. 인간이 이 세 가지 욕구 즉, 본능을 통제하지 못할 때 인간다운 품위를 잃게 된다. 이 욕구들은 충족되지 못할 때 인간의 생존이 위협 당한다. 먹지 못하거나 잠을 못 자면 개체로서의 인간은 살 수가 없다.

반면 성적 욕구인 생식을 하지 못하면 개체로서의 인간은 죽지 않지만 후손이 없어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멸망하게 된다. 본능으로서의 이런 욕구들은 일정 수준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개인적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내팽겨져서 짐승의 수준 이하로 인격이 떨어질 때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한다. 이는 흔히 본능을 통제 혹은 절제하는 것이 인간을 짐승과 구별 짓는 특징이라는 뜻일 것이다.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삶”이란 본능을 이성으로 통제하면서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삶을 사는데 있어 인지적 제한성을 갖는 발달장애인들이 이성의 능력을 키우는 일은 도전적인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흔히 발달장애인들은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 외현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많은 행동들이 보다 본능 중심적인 사람들로 그들을 보이게 만든다. 특히 성의 영역에서 발달장애인들은 성욕이 동물적이거나 혹은 성욕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라는 양극단적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본능을 통제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어릴 때부터 욕구를 통제하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존재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런 점에서 발달장애인들도 예외일 수 없다.

인간다운 품위를 지닌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들에게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을 통제하는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통제한다는 것은 먼저 통제되어야 할 그것이 존재하며 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발달장애인들도 자신들이 성적 욕망을 지닌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또 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은 통제의 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성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서 향유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발달장애인들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들이 상대, 때,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게 자신들의 성적 본능을 향유하거나 혹은 통제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품위는 교육을 통해 획득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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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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