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마무리 되어 가는 시점이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기 시작했으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는 크리스마스캐롤도 들려온다. 아이들은, 민족 최대의 대명절을 맞아, 자신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조마조마 걱정도 하고, 어떤 선물을 받을지 두근두근 설레어 하기도 한다. 엄마 아빠도, 다른 때는 몰라도, 이 때만큼은,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가 평소 원하던 멋진 선물과 함께 엄마 아빠의 사랑과 행복한 추억도 듬뿍 담아 주고 싶어진다.

그런데, 세상은, 장난감회사들은, 이런 엄마 아빠들의 소박한? 바람을 이루기 너무나도 어렵게 한다.

이응이는, 평소 정해진 시간, 정해진 EBS프로그램 몇 편 외에는 TV도 전혀 보지 않고, 우리 집에 인터넷TV도 없다 보니, 트렌디한 장난감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다.(아들! 엄마가 이 시기에 호갱 되지 않을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사실, 우리 집에 인터넷TV를 두지 않는 건, 몇 안되는 내 확고한 육아철학이다.

우리 집에는 인터넷 TV를 두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육아철학이다. ⓒpixabay

TV? 볼 수 있다.

나도 봤고, 내 아이가 보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만화의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 형제 자매들이 TV 앞에서 기대하며 기다리던 그 설레는 기분도 잘 안다. 내가 이응이 나이 때, 일본만화나 미국만화를 더빙한 만화들만 보았던 것과는 달리, 요즘엔 한국 토종애니메이션들 중에 무척 교육적이고 멋지고 창의적인 내용들이 많아 부모로서 더 마음에 들기도 하다.

어떤 부모들은, 아예 TV를 없앤다고도 하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부모가 주양육자에 풀타임 육아가 가능해야 하며, 조부모나 육아도우미에게 육아도움도 받지 않는 상황일 때여야 가능할까 말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사회생활이란 게 있기에, 어느 정도 TV도 봐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서로 말도 통한다.

그런데, 인터넷TV 시청에 대해서만큼은, 도저히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할 수가 없는 것이 엄마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이 TV는 시간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가 만화를 볼 땐, 그 만화가 편성된 시간에만 볼 수 있고, 놓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인터넷TV는, 언제라도 리모콘에 손만 뻗으면 많고 많은 온갖 만화들을 밤이고 낮이고 언제라도 다 볼 수 있다. 시간을 놓쳐 못 본 만화도 걱정 없이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밤이고 낮이고 애니메이션 뷔페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어른도 이런 재미있고 신기한 물건이 우리 집에 있다면, 절제하기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또, 엄마 아빠들은 어떨까? 조금만 힘이 들면, 너무 피곤하고 우울해서 아이와 놀아주고 싶지 않은 어느 날, 그 마법 같은 상자의 달콤한 유혹에 내 아이를 내맡기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일곱 살 이응이가, 언젠가 나에게 이 문제로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친구들은 다 인터넷TV로 뭣도 보고, 뭣도 보는데, 나는 안 나와서 못보는 게 답답하다고…

그 말 일리도 있고, 속상하기도 할 것 같아서 일단 공감부터 해주었다. 그리고는, 전술했던 인터넷TV에 대한 내 생각을 아이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고는, 이응이는 아쉽겠지만, 이런 이유로 엄마는 인터넷TV는 우리 집에 설치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러니, 그 날 이후, 아이는 다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요즈음 아이들의 장난감은 애니메이션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KBS, 손오공

어쩌다 인터넷TV에 대한 엄마로서의 내 생각 쪽으로 이야기가 곁길로 빠져 버렸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장난감 주제는 도저히 애니메이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평소 생각을 기술하게 되었으니, 글이 다소 산만했어도 이해를 바란다. 사실, 애니메이션 노출과 장난감에 대한 선호 사이의 상관관계는 매우 극적인 정적 상관관계를 보인다.

왜냐하면, 요즘은 애니메이션 자체를 장난감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의 아니게 TV노출이 별로 없는 이응이는, 유치원에서 들어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는 해서 아는 장난감들이더라도, 딱히 그것을 미친 듯이 갖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아이들한테 많이 들었던 터닝메카드R 에반 RC카가 산타할아버지께 받고 싶은 선물 1순위란다. 그래서 터닝메카드에 대해 잘 모르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재우고는 열공모드로 인터넷쇼핑몰을 헤엄쳐 다녀 보았다. 그런데, 몇 주 전, 다른 쇼핑리스트를 보다가 분명히 보았던 터닝메카드R 에반이 인터넷마켓에서 약속이나 한 듯 싹 사라졌다. 심지어, 이 RC카를 작동하려면 전용 컨트롤러는 따로 사야 한다는데, 그것도 없다.

이건 명백한 독과점 내지는 매점매석?

사랑하는 세상 하나뿐인 내 아이의 간절한 기도, 절실한 소원을 외면하고, 호갱 탈출을 위해 다른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멘탈이 없는 부모들은 모두 호갱이 되어야만 할 판이었다. 그나마, 너무 궁금해서 어렵게, 어렵게 엄청난 검색 끝에 겨우 발견한 쇼핑몰에서의 금액도 10만원에 육박했다.

나의 경우, 아이가 커가면서 장난감 회사들과 인터넷샵 등의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몇 년째 보아오면서,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완벽한 호갱 대접 받는 것이 너무나도 화가 났기에, 이럴 때는 절대 이들의 계략에 낚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사 주고 싶은 눈치였다.

왜냐? 장난감 욕심도 별로 없는 아이니, 이럴 때 멋진 것 하나 사 주고 싶은 천상 아들바보 아빠맘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 맘 모르지 않는다.

하. 지. 만.

악덕한 상술에 호갱 되고 싶지 않은 엄마 마음도 마음이지만, 나는 아이 선물로 10만원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맘만 먹으면, 아이 하나인데 그 정도 못해주겠냐만은, 문제는 돈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이제 어느 정도 돈의 개념도 알고 가치도 아는 7세 아이인데, 크리스마스 때나 생일 때 이렇게 큰 선물을 받고 나면, 다음에 엄마 아빠가 주는 그 금액보다 금전적으로 작은 가치의 소소한 선물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견 조정을 위해 즉시 토론을 시작했다.

각자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던 중, 남편을 얼른 불렀으나, 좀 기다리라더니만 남편은 사주고 싶어서 이미 결제도 한 상태.

내가 전술한 이유로 이 선물에 대한 구매는 안 하고 싶다고 하니, 남편은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의견을 직설적으로 내지는 않았다. 남편의 이런 성향,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라고 부모로서 의견이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최소한, 내 말이 합리적이고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웬만하면 나에게 맞추어 주는 것임을 나는 안다.

그저, 다음 날 아침에 등원 전에 아이에게 에둘러 의사를 물어 보자는 의견을 주었다.

그것도 나름 합리적이겠다 싶어 동의를 하고 아침이 밝았다.

등원 준비를 마치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만약, 산타할아버지가 이응이가 원하는 터닝메카드R 에반을 구하지 못한다면, 어떤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어?, 알겠지만, 엄마 아빠도 인기 있는 장난감은 제 때 못 구하고 나중에 사주는 경우가 많잖아?’

내 질문에 아이는 의외로 쿨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 꼭 터닝메카드 못 받아도 상관없어. 요즘 내가 진짜 자동차에 관심이 많으니까 람보르기니 같은 RC카 받아도 괜찮아. 아니아니, 그게 더 좋은거 같아.’

(유후! 역시 내 아들. 그렇게 헛돈 쓸 필요가 없었던 거야.^^)

이 말을 들은 남편, 슬쩍 방에 들어가 앱으로 구매취소를 한다.

그래. 역시 물어보기를 잘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호갱탈출 성공!

이번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람보르기니 RC카로 결정! ⓒ텐바이텐

아이 등원시키고는 나는 바로 그간 검색하며 봐 두었던 3만원 대 중반의 람보르기니 RC카를 쿠폰 및 포인트 등을 사용하여 2만원 대 중반에 구입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 고민으로 쇼핑 앱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OX퀴즈 보드게임도 하나 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저렴하게 구매했으니, 이거 하나 더 사서 앞으로 방학에 아이랑 재미있게 놀아주고 싶어서였다.

이 보드게임은, 보드게임 단말기에서 음성으로 제공되는 OX퀴즈들을 주어진 규칙과 랜덤으로 제시되는 조건 등에 따라 함께 풀며 상식도 늘리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매우 시각장애인 친화적인 보드게임이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지나지 않아 사용해 보지 않아서 자세한 추천을 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보고 시각장애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할 만한 보드게임이면 추천해 볼까 한다.

이렇게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을 준비해도 5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5만원도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요즘 현실상, 어마무시한 장난감들의 가격을 고려하면, 부모들이 취학 전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마련을 위해 사용할 금액으로는 적정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이가 가지고 싶어하는 멋진 크리스마스선물을 고르고 전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록, 작은 선물일지라도 그 선물을 가지고 엄마 아빠와 즐거운 추억을 쌓아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시각장애엄마로서 늘 아이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무엇을 아이와 함께 가지고 놀면 좋을지 늘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OX퀴즈 보드게임을 선물로 준비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아이가 다섯 살때부터 사진과 함께 편지를 써준지도 벌써 3년 째, 아이는 그 편지를 너무 좋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스무살 때까지 써달라고 행복하게 이야기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한 해 한 해 지나가는 시간은 LTE급으로 빨라지는 것 같아 늘 아쉽기만 하다.

나는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아이와의 시간들이 너무너무 소중하고 아쉬워, 아이에게 매년 이맘 때면 한 해를 돌아보는 편지를 써 주고 있다. 아이가 수월하게 한글을 읽기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이 일이 벌써 3년째.

한 해 동안 아이와 무얼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를 이벤트 별로 구글 포토에 정리해 둔 앨범들을 보아가며 돌아보면서, 잊지 않고 싶은 아이와의 즐거운 추억, 힘들었던 일, 멋진 아이의 성장 등을 담은 사진들에 짧은 커멘트를 달아 가며 쓰는 편지인데, 아이가 책처럼 여기며 무척 좋아한다. 책꽂이에 꽂아 두고는 시시때때로 들춰 보니 말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매년 이렇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시작한 이 편지를 아이가 너무너무 좋아하며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올해는 한 해를 돌아보는 편지 안 써 줄거냐 묻기에 나는 이제 연례행사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가 스무 살 될 때까지 써 달라고 한다.

한해, 한해 아이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연말을 맞아, 며칠 간 편지를 쓰며 엄마로서의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 아이의 의젓한 성장, 엄마로서의 나의 성장 등이 조금씩 보이는 것 역시, 엄마로서의 내 삶에 대한 적정한 가치를 부여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부모로서의 삶은 그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다. 장애를 가지고 부모 노릇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만만치 않음이 더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한해, 한해 아이를 키워 가며, 아이와의 행복한 추억, 아이로 인해 겪는 난관, 아이의 성장을 통해 얻는 보람 등을 함께 하며,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오늘도 자란다.

한 해 동안 우리 아이들을 키우느라 울고 웃으며 수고한 우리 장애부모님들에게 응원과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내년에도 이 칼럼을 통해 서로 위로 받고 공감하며 육아의 망망대해를 잘 해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지금쯤 우리 독자들도 소중한 내 아이에게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까 머리 빠지게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모쪼록, 우리 장애부모님들도 소중한 내 아이와 함께 멋지고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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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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