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산다. 보통은 하루 세끼를 기본으로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사람들의 식사방식도 횟수도 다양해 졌다.

과거 흰밥에 고깃국을 부의 상징으로 여기며 성찬으로 취급했으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오늘날에는 건강을 위해 흰밥이 아닌 잡곡밥을 선호하고 국을 회피하는 분위기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 수렵이나 농경생활을 하던 때와는 달리 신체적으로 사용해야할 에너지가 많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음식 섭취로 비만과 다양한 성인병에 시달린다고 주장하며 1일 1식 혹은 2식을 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식사를 할 때 나의 의지나 선호도에 따라 먹거리를 선택하는 듯 하지만 그전에 가장 먼저 고려되고 반영되는 것이 생활방식이다.

출근이나 등교 준비로 바쁜 아침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빵이나 콘 후레이크, 과일 등으로 식사를 대체하고 혼자 생활하는 이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라면 혹은 배달음식 등으로 저녁을 해결하려 할 것이다. 이렇듯 생활방식이 바뀌면 자연스레 식습관도 바뀐다.

나는 예전부터 밥보다 반찬을 많이 먹는 편이었다. 즉, 탄수화물이 아닌 기타 영양소로 배를 채움으로써 다이어트 효과를 바란 것인데 어느새 이것이 나의 식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한정식이나 뷔페를 무척 좋아했다.

상이 휘어질 정도로 그럴싸한 한정식이 아니더라도 그냥 소박한 나물과 여러 가지 밑반찬 거기다 생선구이 한 접시면 반찬 그릇까지 깨끗이 비워 먹었다. 게다가 뷔페식은 평소 내가 접해보지 않은 음식을 굳이 밥과 함께 먹지 않아도 술술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이 있어서 뷔페에 가면 충분히 본전을 톡톡히 뽑았다.

그러나 실명 후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먹는 것에 대한 식욕을 잃었다. 옛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든지 모 맥주광고 카피에 ‘눈으로 마신다’는 표현은 음식을 먹고 맛을 느끼는 것은 입이지만 눈으로 음식을 즐기는 것 역시 미각 못지않게 식욕을 자극함을 말한다.

어쩌면 시각은 우리가 주 메뉴를 먹기 전 에피타이저를 먹는 것처럼 신체의 뇌와 위장에 준비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먹음직스럽다’라든지 ‘먹고 싶다’라는 표현은 실명 후 거의 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위에서 신호를 보내면 위장을 달래주기 위해 무언가를 먹지만 어떤 경우 음식을 먹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

실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어떤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꽤 큰 규모의 행사여서 참석 인원이 족히 300여명은 되었던 것 같다. 점심 식사로 주최측은 도시락 업체에 의뢰해서 꽤 푸짐한 불고기 정식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불고기 외에도 갖은 반찬과 밥으로 알차게 채워진 도시락을 받아들고 입으로 넣으면서도 전혀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촘촘히 채워진 반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집히는 대로 입에 넣었고 입속에서야 비로소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내 선택과 상관없이 먹고 있는 그리고 먹어야하는 상황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몇 입 먹지 않고 도시락을 덮었다. 그즈음 주위에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냥 먹기 편한 비빔밥이나 김밥을 주지. 이건 완전 빛 좋은 개살구네.”

그렇다. 시력을 잃은 우리에게는 잘 차려진 밥상보다 내가 선택하여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잘 차려진 밥상이라도 나의 선택권이 결여된 음식은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제 한정식이나 뷔페를 즐기지 않는다. 함께 한 비장애인이 음식의 종류와 위치를 설명해줘서 나에게 골라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하여도 많은 가지수의 반찬 위치와 종류를 다 기억할 수 없기에 결국 젓가락이 가닿는 곳의 음식을 집어 먹을 수밖에 없다.

뷔페는 더더욱 싫다. 홀을 돌면서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접시에 담았지만 한 접시에 경계 없이 담긴 음식은 내 젓가락이 닿는 순간 뒤죽박죽 뒤섞여 정체불명의 새로운 음식이 되어 버린다.

뱃속에서 섞여야할 음식들이 접시에서 뒤섞여 본연의 음식 맛도 모르고 내가 담아온 음식을 처리한다는 기분으로 접시를 비울뿐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으며 한끼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자 한다.

먹는 것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입에만 넣어주면 되겠지만 그렇게 먹을 때면 나 스스로 내 인격을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 살수 없는 법. 이래저래 인간관계를 맺고 살다보면 원치 않은 모임에 나가야할 경우가 있다.

그 모임이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일 경우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어서 가격이나 형식 따위는 뒤로하고 일단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수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과의 식사 자리에서는 나의 곤란함과는 상관없이 모임의 내용이나 격식에 따라 음식이 정해지다보니 즐겨야할 식사 자리가 한없이 불편하고 답답해 온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을 깡그리 무시하고 장애가 있는 나를 위해 메뉴를 정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어쨌든 다수가 비장애인이고 나홀로 장애인이라면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될 수밖에…

이러한 이유로 나는 언제부터인가 비장애인과의 식사 자리를 피해온 것 같다. 뒤죽박죽 뭔지도 모르는 음식을 먹어야하는 나 자신도 싫었지만 이것저것 물어가며 내 맘껏 원하는 걸 챙겨먹기 위해 비장애인들의 식사를 방해하기도 싫었고 주섬주섬 주는대로 받아먹는 내 모습을 비장애인들에게 보이는 것도 싫었다.

소박하고 몇 안 되는 찬이지만 그리고 이것저것 밥상을 차리는 게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그래도 잠깐 고생해서 밥상을 차리면 최소한 식사는 내가 원하는 음식을 즐기며 먹을 수 있기에 내가 차린 집밥을 선호하게 되었다.

나는 시각장애인 엄마들과의 모인인 ‘아이 위드 맘스’의 엄마들과 아이들을 간혹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한다. 얼마 전 딸아이에게 ‘아이 위드 맘스’ 회원들을 초대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말하자 딸아이가 대뜸 “엄마, 메뉴가 뭐야?”한다. “국수” 그러자 아이가 또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사실 딸아이는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그릇 후루룩 먹는 국수가 간단한 식사거리일지 몰라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육수와 갖은 고명에 양념장을 만들고 면을 삶고 씻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밑반찬에 생선 구워 상 차려내는 것이 더 편하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음식을 먹으면 느꼈던 불편함이나 곤혹감을 알기에 나는 언제나 간단히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했던 것이다. 계절 따라 물국수, 비빔국수, 떡국, 김밥 혹은 삼겹살에 쌈거리 등. 냉장고에 다른 밑반찬이 수두룩하더라도 나는 김치 외에는 일체 꺼내놓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빛 좋은 개살구가 될게 뻔하니까.

이솝우화 중에 여우와 학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상대를 식사에 초대한 그들은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여우는 넓적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학에게 대접하고 학은 주둥이 긴 병속에 음식을 담아 여우에게 내놓는다.

음식은 군침이 돌 만큼 먹음직스러워 먹고 싶지만 입의 구조상 학은 넓적한 접시의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여우는 호리병 안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지만 상대에게 괘씸함과 섭섭함만 느끼며 불쾌한 시간만 보내게 된다. 이야기속의 여우나 학처럼 비장애인들의 행동이 고의성은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고의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대에게 불쾌감이나 난감함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내 장애를 탓하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감내할 뿐이다.

필자의 이야기가 일반적일 수는 없다. 장애 정도나 성격, 취향 등 개인차가 있으니 무작정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먹기 편한 간단한 음식만 선호할거라 지레 짐작하여 행동하시지는 마시길 바란다.

그리고 비장애인과의 식사 자체를 꺼려하고 불편해 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다만 장애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식사에 있어서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없는지 알아봐주고 물어봐주는 작은 관심과 배려가 있다면 함께 하는 식사가 더 즐겁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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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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