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의 학예회가 있었다.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바라볼 딸아이를 생각하며 서두른 덕분에 공연장 제일 앞줄 중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강당에는 학생회 임원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음향이며 무대시설 등을 점검하고 체크하느라 분주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학예회가 시작되었다.

자신을 학생회 부회장이라고 소개한 한 남학생과 여학생의 사회로 아이들이 준비한 발표회가 시작 되었다.

우크렐라, 방송댄스, 음악 줄넘기, 마술 등 1년 동안 방과 후 활동을 하며 배운 것들을 선보였고 객석에서는 감탄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공연이 시작되고 한 팀, 한 팀 바뀔 때마다 남편은 아이들의 무대 의상과 동작을 설명하랴, 구경하랴, 박수치랴 정신이 없었다. 또래 딸아이를 둔 아빠로서 남편은 아이들의 공연때마다 “아이고, 예뻐라.”, "대단한데."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방과 후 활동에 대한 발표가 끝나자 학급별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제일 앞줄 중앙에 앉은 나는 최대한 시선을 무대에 두고 아이들의 공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스피커의 소리를 따라 내 시선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쏠리는 듯 했다.

좀 있으면 딸아이의 공연인데 나의 엉뚱한 시선에 속상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의식적으로 무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시선을 무대에 고정하고 스피커의 음악 소리와 남편의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무대 위 공연을 상상했다.

사회자의 설명에 따라 1학년의 수화 공연이 시작되었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받쳐 입은 20여 명의 학생들이 반주에 맞춰 노래하며 수화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며 너무 너무 예쁘고 예쁘다며 그 어느 공연보다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첫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이 흘러 나왔다. '나는 행복합니다.'로 시작되는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공연을 보고 감동 받은 것도 아니였고 노랫말이 좋아서 센티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는 게 슬퍼서 울었다.

세월이 흘러 이 어둠속의 삶도 익숙해졌고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소리로 머릿속 이미지를 떠올리며 살아가며 특별히 보고 싶다거나 궁금하다는 마음도 퇴색되어 갔다. 그러나 그 순간 무대 위 아이의 모습이 너무 보고 싶었다. 저 예쁜 모습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볼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에 눈물은 두 볼 위로 자꾸만 흘러 내렸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눈앞의 어둠도 어둠속의 생활도 볼 수 있음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 따위도 어느새 무디어져 가고 내가 본래 세상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이 삶이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인 양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마음 아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눈물 대신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은 무디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세월과 반비례하며 그 마음은 더 짙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아기일 때는 비록 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내 품에서 손길로 아이를 느끼며 보지 못함을 대신했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와의 공간은 벌어지고 아이는 이제 아이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그런 아이의 성장이 당연하고 부모로서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눈으로 관찰할 수 없는 나로서는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관자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그들 역시 세월 따라 변하겠지만 그 모습은 흰머리와 주름진 모습 등으로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자라는 아이의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내 기억 속 어렴풋이 남아있는 아기일 때의 딸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삐졌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부분이 예쁜지, 말할 때나 웃을 때 보이는 특징은 없는지 그런 세세하고 작은 것들이 아이가 커갈수록 더 궁금하고 보고 싶다.

하루하루 커가는 자식을 지켜볼 수 있는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받은 일인지 그들은 알까? 아이에게 눈 맞추며 웃어줄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까? 아이가 또 자라고 자라서 사춘기가 오고 신체적 정서적으로 변화하고 힘들어할 때 나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까? 말해주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엄마에게 사춘기의 아이가 얼마나 시시콜콜 자신의 감정을 얘기해줄까?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니고 앞으로 수년 뒤의 일이지만 커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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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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