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월드 빛축제 -세계야경 판타지 빛축제-’. ⓒ은진슬

지난 11월 4일은 점자의 날이었다.

시각장애부모들의 육아 자조모임인 심봉사임당은, 이날, ‘아인스월드 빛축제 –세계야경 판타지 빛축제-’에 다녀왔다.

부천에 위치한 아인스월드 ⓒ아인스월드 홈페이지

부천에 위치한 아인스월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세계 주요 도시의 대표 건축물 등을 1/25로 축소한 건축물로 꾸며 놓은 미니어처 테마파크이다.

바로 옆에 글램핑 시설을 갖춘 캠핑장도 있고, 한국 만화박물관도 있으며, 7호선 삼산체육관역에서 평탄한 길 10분내의 도보로 편리한 접근이 가능하여, 시각장애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하기에 매우 훌륭한 장소이다.

7호선 출구에 엘리베이터도 잘 설치되어 있으며, 아인스월드나 만화박물관 등은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여 접근하는 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어, 휠체어 사용 장애가족들에게도 매우 훌륭한 나들이 장소가 되어줄 것 같다.

특히, 장애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우리 같은 가족들은, 아이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캠핑의 맛을 느끼게 해 주기가 여간 쉽지 않은데, 이곳은 글램핑 장비들이 다 갖추어져 있어 비교적 단출한 짐을 꾸려 떠나, 아이들에게 손쉽게 캠핑 분위기를 체험하게 해 주는 데에도 적격일 듯하다.

스파이시하고 시즈닝이 들어간 음식이 많은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니 아이들보다는 엄마, 아빠들이 더 신났다. ⓒ은진슬

이번 나들이는 야간 빛축제 관람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비교적 늦은 2시에 아인스월드 근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자 만났다. 엄마 아빠들이 20, 30대 초반에 자주 갔던 추억이 폴폴 솟아나는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니, 엄마 아빠들만 신났다.

사실, 패밀리레스토랑이 아이들과 밥 먹기 좋다고는 하나, 유아기 아이들에게는 썩 그런 것도 아닌 것이, 스테이크도 스파이시한 시즈닝이 들어간 것들이 많고, 아이들이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기에는 아직 덜 살았다.

그래서, 의외로 이런 레스토랑식 스테이크나 파스타 등을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다녀 본 내 경험으로, 아이들은 대부분, 돈카츠, 떡갈비, 함박스테이크, 새콤달콤 탕수육 등등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솔직히,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달콤짭짤한 시즈닝이 들어간 떡갈비 계열의 스테이크 등을 시키고 싶었으나, 공적 예산 집행으로 소셜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메뉴가 아니면, 구매할 수가 없어서 집행이 불가능해 너무 아쉬웠다.

아이들은 대부분 무료로 제공되는 허니버터와 그 레스토랑 특유의 빵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이미 부모로서는 예상했던 일이라 너무 아쉬웠지만, 예산 규정에 따라 집행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알면서도 별 수가 없어 좀 미안하고 답답했다.

원래, 투명하고 공정한 예산 집행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제약이 필요하다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알지만, 그래도 이번 경험들을 통해, 우리 모임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가족 상황에는 예산집행의 유연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지 않으면 너무 힘들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나와 남편이가 이 까다롭디 까다롭고 너무 비합리적인 규정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 멤버들이기에, 다음부터는 예전처럼 우리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부담하여 진행하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들 입을 모았다. 그래도, 리필 빵도 주고, 후식 커피도 주니, 엄마 아빠들은 옛날 생각난다면서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우며 아이들이 안 먹은 몫까지 배 터지게 먹었다.

이 레스토랑의 트레이드마크인 포장해 주는 빵까지 가져와, 이 날의 나들이가 피곤했던 나는, 다음 날 아침으로 시리얼 등과 함께 매우 유용하게 먹었다는 사실.

아인스월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세계 주요 도시의 건축물을 1/25로 축소한 건축물로 꾸며 놓은 미니어처 테마파크이다. ⓒ은진슬

원래는 시간 상황을 보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근처에 있는 만화박물관도 들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을 계산해 보니, 그 곳에 들르게 되면 한 번 들어간 아이들을 쉽게 몰고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고, 귀가시간이 생각보다 매우 늦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했던 만화박물관 관람은 생략하고, 바로 아인스월드로 향했다.

입장시간 보다 30분 정도 이르게 도착했지만, 아이들은 넓고 탁 트인 공간에서 그저 자기들끼리 신났다. 어른들은 급 쌀쌀해진 날씨에 조금 추웠지만, 든든히 옷을 입혀 온 아이들, 그리고 몸을 우리보다 훨씬 많이도 움직이는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만나 서로 신이 났다.

입장시간인 5시가 되어 아인스월드에 들어가니, 아직 해가 완벽히 지지 않아 불빛을 밝히지는 않고 있었다. 이것도 그 나름으로 괜찮았던 것이, 건축물에 대한 설명 등을 어두워지기 전에 좀 더 수월하게 읽어보며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세세하게 모든 설명들을 읽어가며 꼼꼼히 관람한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으나, 여기저기 즉흥적으로 이끌리고, 자기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건 별 관심 주지 않고 넘어가는 아이들에게는 채 50분도 걸리지 않아 아인스월드 한 바퀴 관람이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딱 한 명의 홍일점 아이를 제외한 7명의 아이들이 혈기왕성 남자아이들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들 키우는 부모들은 너무나도 공감하겠지만, 아들이라는 생명체는 절대 결코 Never Ever 걷지 않는다.

장소도 야외겠다, 탁 트여 장애물도 없겠다, 사람들도 별로 없겠다…

관심 있는 건축물을 보겠다고 우르르르 우당탕탕 공룡떼가 지나가듯 달리고 또 달린다. 아빠 품에 안긴 두 살 남자 아기를 제외하더라도, 여섯 명이 달리니 그야말로 지축이 흔들렸다. 각자 자기에게 꽂히는 조형물들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크리스마스 썰매, 거북선, 콜로세움 등등에 아이들은 관심을 보였다.

이응이는 5세에서 6세 사이에 세계의 국기와 나라, 수도 등에 홀딱 빠져 있었던 터라, 각 나라를 대표하는 높은 건물들에 관심을 보여 왔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프랑스의 에펠탑,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부르즈 할리파 등등, 심지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 할리파는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지었으니 우리 것 아니냐는 항변 아닌 항변도 자주 했었다.

얼마 전, 심봉사임당 나들이로 갔던, 롯데타워 서울스카이가 생긴 후로는 가장 높고 멋진 건물을 가진 나라들에 대한 동경과 질투 아닌 질투가 좀 누그러지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아는 한에서,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각 나라의 건축물 등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고, 우리 중에 유일하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멀쩡한 송이씨가 전시물의 텍스트 설명을 간간히 읽어 주기도 하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만나 서로 신이난 아이들. ⓒ은진슬

어쨌든 아인스월드를 한 바퀴 돌아본 아이들은 뭔가 다른 자극이 잠시 필요했다. 반짝반짝 불이 켜진 조형물들을 보고 가야 하는 것이 오늘의 주된 목적이기에, 그냥 돌아가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래서, 기념품샵에 가서 아이들에게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등등의 미니어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작은 레고를 하나씩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조형물들에 불이 반짝 켜졌다.

추운 저녁 관람을 대비해 가져왔던 따끈한 둥굴레차를 마시고는, 다시 불 켜진 예쁜 아인스월드 관람 시작.

예쁜 색색의 조명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좋아했다. ⓒ은진슬

이미 한 번 훑어 보았던 조형물들임에도, 반짝이는 예쁜 색색의 조명들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다행히 지루해 하지 않고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며 사진도 찍고 재미있게 보았다.

엄마 아빠들은 서로, 누구는 일본 여행을 갔다 왔는데도 이름 외우기에 약해서 저 건축물은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하고, 누구는 미국에 어학연수 갔을 때 저 맨헤튼 록펠러센터를 가봤다 하고, 누구는 그렇게 오래 미국에 있었는데도 뉴욕 한 번 못 가봐 억울하다고 하고, 누구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가 보고 싶다고 하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반짝반짝 예쁜 불빛들 속에서 나름 즐겁고 여유로운 밤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일곱 시 반에 무료로 진행되는 마술공연이 있는데, 무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가성비도 좋고 괜찮다는 블로거들의 평에, 그것을 볼까 고민을 했지만, 모두들 집이 너무 가깝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기에 아쉽지만 포기했다.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른들과 달리 점심이 부실했던 아이들은 한산한 지하철에서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서로에게 자기들의 간식을 나누어 주며 풍성한 간식파티를 즐겼다.

한 가족 한 가족 자신들이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릴 때, 아이들은 너무 아쉬워하며 다음에 또 만나자며 인사를 하고 또 했다.

비록, 안 보이는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과 즐겁게 놀 수 있을 만한 곳들을 찾고, 안전하고 합리적인 대중교통 동선을 짜고, 티켓팅을 하고, 예산 관리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신나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 그 모든 노고를 다 보상 받는 기분이다.

어느 새, 심봉사임당 모임이 시작되어 나들이를 한 지도 2년이 되었다.

부모들은 이 모임을 통해 시각장애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다양한 고민을 나누고, 여느 부모들과 다름 없는 주도적이며 독립적인 모습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나들이도 하면서, 부모로서의 자기효능감과 자신감을 얻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아이들은 나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가족들이 있는 친구들을 접하면서 조금 다른 엄마, 다른 아빠를 가진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는 이응이를 포함한 세 명의 남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부디, 이 모임이 오래 오래 계속되어, 아이들이 쑥쑥 자라 사춘기가 되고, 행여나 부모의 다름으로 힘겨워하는 날이 오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에이, 우리 엄마는 어리버리 눈도 안 보여서 완전 짜증나 죽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선물해 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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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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