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입주자는 실수(실패)할 권리가 있습니다.

배향미 씨가 라면 먹고 싶다 하니 한집 사는 강자경 아주머니가 끓여 주겠다며 나섰습니다. 면과 스프를 따로 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주머니가 라면을 끓이겠다며 나서기까지 족히 1년 정도 걸렸습니다.

집집마다 싱크대와 전기렌지를 들이고 요리할 여건이 되자 아주머니가 밥을 했습니다. 밥을 곧잘 했고 밥은 쉬웠습니다. 라면은 달랐습니다. 아주머니는, 밥 짓는 물은 잘 맞추는데 라면 끓이는 물은 늘 넘쳤습니다.

직원이 여러 번 설명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물이 많아도 아주머니는 맛있다고 했습니다. 싱겁게 드신다고 여기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잔소리하는 것 같아 멈췄습니다. 가끔 아주머니가 라면을 끓여도 냄비의 물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물 조절로 실랑이하지 않으니 마음이 여유로웠고 아주머니를 더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끓인 라면을 우연히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물이 적절했습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주머니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끓였다고 했습니다.

짐작하기는 아주머니 혼자서 끓이며 조금씩 줄여간 것 같습니다. 직원이 옆에서 알려줄 때는 머뭇했지만, 혼자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며 요령이 생긴 겁니다. 실패할 권리가 필요했던 겁니다.

“당신의 기대가 아이의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언젠가는 컵으로 물을 마시는 기술을 습득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당신은 아이가 성공하기 전에 가능하면 보다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반면에 당신이 그렇게 기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가 보내는 첫 번째 어려움의 신호에 도움을 준다거나 그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그가 그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뇌성마비 아동의 이해>>, 일레인 게라리스 지음, 시그마프레스, 192쪽.

기대한다면 더 많은 기회를 주라고 합니다. 어떤 기회요? 컵의 물을 쏟고 컵을 놓치고 심지어 컵을 깨뜨려 물을 엎지르는 기회, 자기 삶을 살 기회, 실패(실수)할 권리를 주라고 합니다.

어느 시설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시설 직원이 시설에 사는 아저씨를 모시고 마트에 갔습니다. 마트 입구에서 설명하고 필요한 것 사도록 안내했습니다.

마흔 넘은 아저씨가 한참 둘러보더니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저씨가 문구 코너에 멈추더니 여자 아이나 하는 작은 머리핀을 집었습니다. 순간 시설 직원은 아저씨를 말리려고 했습니다.

‘안돼요, 아저씨! 머리핀은 아저씨에게 필요 없어요. 그건 아저씨가 살 물건이 아니에요.’ 하는 말이 치닫는 것을 참고, ‘머리핀을 어디에 쓰는가 보자’ 하며 그냥 두었습니다.

아저씨가 천 원짜리 머리핀을 계산하고 시설로 돌아왔습니다. 차가 멈추자 아저씨는 쏜살같이 사무실로 달려갔습니다. 직원은 놀라서 뒤쫓았습니다. 사무실로 들어선 아저씨는 어느 여직원 앞에 서더니 머리핀을 꺼내서 건넸습니다. 그 여직원은 아저씨와 동행했던 직원의 팀장이었고요. 아저씨에게 필요 없고 아저씨가 살 물건이 아니라며 말렸더라면….

그 직원은 당황스럽고 다행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했습니다. 이야기하는 내내 목소리가 반쯤 젖어있었습니다. 당신은 부끄럽다 했지만, 아저씨를 말리지 않아서 다행이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시설에 사는 성인 남성이 ‘고작 천 원짜리’ 머리핀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헬스클럽을 한두 달 다니다 포기할 수 있을까, 미용실을 바꾼 지 얼마나 되었나, 여행 중에 계획을 바꿀 수 있을까, 직장을 구하며 거절당하거나 이직과 사직한 적이 있는가, 자장면을 먹겠다는 계획서와 달리 짬뽕을 먹을 수 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나를 돕는 사람이 전지전능하면 그보다 큰 불행도 없겠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모르는 것이 없고, 그의 선택은 항상 올바르며 최선인, 그런 전지전능한 사람이 나를 돕겠다고 하면 어쩌나.

그 앞에서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그는 나에게 선택하라 하고 답하라 하는데, 그의 전지전능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가 나에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라 하는데, 나는 그 앞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주저한다.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만 골라서 해 보라 하는데 그마저 하지 못할까 두렵다. 또 어떤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마저, 해 볼 만한 것마저 그가 한다. 그의 전지전능함으로.

나를 돕겠다는 사람이 조금 만만하면 그보다 큰 행운도 없겠다. 나라도 챙겨야 할 만큼 연약하면 좋겠다." <월평빌라 2015년 여름 단기 사회사업 수료사> 중에서

‘성공해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는 성공 신화, 행복 신화가 실수(실패)할 권리를 제한합니다. 갈림길에 서는 걸 막고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할 기회를 빼앗습니다.

성공 신화, 행복 신화의 희생양이기는 기관과 직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화의 유혹은 치밀하고 대단합니다. 보고서에 실패와 실수를 적는 건 용기가 필요하고, 그나마 성공이라는 반전이 있어야 가능해 보입니다. 직원은 혼란스럽거나 무례해지고, 기관은 표류합니다.

"환자에게도 ‘실수할 권리’가 있습니다. 실수나 고생에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이나 의료진은 ‘재발을 막는’다는 대의명분 아래 정신장애 환자에게서 지나칠 정도로 ‘실수할 권리’를 빼앗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델의 집’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어려움과 실수를 ‘살아가는 고생’으로 소중히 여기는 장을 만들어왔습니다.

저(간호사) 역시 ‘실수해도 좋다’, ‘불안한 것도 당연하다’, ‘헤매더라도, 중도에 실패하더라도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자연스런 일이다’라고 존재 자체에 대해 안도감을 갖게 되어 마음이 아주 편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몹시 괴로웠던 ‘베델의 집’이 가장 편하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베델의집 사람들>> 궁리 출판, 2008년 179쪽

시설에 사는 아주머니가 라면 끓이는 물을 맞추지 못할 권리, 시설에 사는 아저씨가 천 원짜리 머리핀을 살 권리, 그럴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실수(실패)할 권리가 삶을 살게 하고, 여유를 주며, 갈 길을 밝힙니다.

"입주자가 저마다 나름대로 자신의 희망 계획 필요에 따라 살아가게 돕습니다. 저마다 나름대로 하는 일이 있고, 저마다 나름대로 만나는 사람이나 다니는 곳이나 즐기는 것이 있게 돕습니다.

빠르고 쉽고 전문적이고 풍족하고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서비스로 생존 연명시키지 않습니다. 더디고 힘들고 어설프고 부족하고 불편하고 위험할지라도, 실수 실패하고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래도 입주자 그 사람의 인생이고 그 사람의 삶이게 합니다. 사는 게 그냥 생존 연명이 아니라 삶이고 생활이게 하는 겁니다." 『복지요결』 「시설 사회사업」

실수는 없다는 실수가 큰 실수입니다.

실패는 없다는 실패가 큰 실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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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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