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아는 것이 힘, 앎이 선이 된다는 사실을 필자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 했었다. 비단 장애인에게만 앎이 중요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보와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더 탐닉한다. 그들에게 앎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갖기 위한 수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앎은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차단시켜주는 방어기재라 할 수 있다.

‘앎이 선이니까 그에 반대되는 무지는 당연히 악이겠군.’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무지가 왜 악이 되는지, 알지 못함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2014년 서울시 송파구에서 세모녀가 동반 자살한 사건을 아직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식당일을 다니던 엄마(60세)와 당뇨병을 앓고 있던 큰딸(35세) 그리고 신용불량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던 작은딸(32세)은 엄마가 다쳐서 그나마 다니던 식당일을 못하게 되자 삶을 비관하며 연탄불을 피워놓고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은 SMS나 온라인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서 공론화 되었었다. 일반적으로 빈약한 사회안전망과 사회복지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그러나 일부 대중은 세모녀가 살아가려는 방법을 찾아보려 하지 않고 너무 쉽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다수의 의견처럼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그리고 사회서비스를 받기 위한 행정 및 조건이 보다 보편적이고 까다롭지 않았다면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나라 사회서비스에 대해 알거나 알고자 노력했다면 어떻게든 도움받을 방법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고자하는 의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지 않았고 살아갈 방법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살아갈 의지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본다.

나 역시 실명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이 끝나기만을 바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의 절망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도 같다. 살고 싶지만 살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에 살아갈 의지를 잃는 것이다.

내가 그나마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다시 살아가리라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터넷과 주민센터 등 관계기관에 전화하고 알아보면서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것들을 적극 활용하며 서서히 자립하기 시작했다.

송파구의 세모녀와 같은 일들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현재도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불행이 국가나 사회제도만의 문제일까?

실제로 이런 사례도 있었다. 20대 후반정도의 뇌병변 장애가 있는 남성이 있었다. 그는 지하 단칸방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부부는 밤업소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겨우 생활하고 있었단다.

아들이 장애가 있었지만 먹고 살아야했기에 부부는 밤일을 나갈 때마다 아들을 기저귀만 채워놓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갔다고 한다. 수년 동안 제대로 돌봄을 받거나 치료받지 못한 그는 장애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들 부부의 경제력이나 상황은 사회서비스를 받기에 충분했지만 부부는 무지했기에 장애가 있는 아들을 방치하다시피 하며 생계를 꾸려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장애인활동바우처 선생님의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하고 아들을 위한 적절한 치료와 돌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 빈국의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각종 질병과 영향 실조로 제대로 싹을 틔워 보지도 못하고 꺼져가는 생명들. 그런데 아이들이 질병에 걸리고 죽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엄마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적 기부단체인 DMI(Development Mediea International)는 5세 미만 아동들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유아건강을 위한 모유수유, 설사병 예방, 손씻기 운동, 말라리아 살충, 모기장 사용 등을 다룬 건강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라디오 및 TV 방송으로 내보낸다. DMI의 웹 사이트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매년 전세계 5세미만 아동 630만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2013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아동 11명 중 1명이 5세 생일을 맞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녀가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어도 알아채지 못하는 부모가 많고 알아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릅니다. 보건의료서비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지 탓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설사병이라는 것을 알고 어머니가 경구수분 보충요법만 써도 아이가 무사히 5세를 넘길 수 있습니다.”

이렇듯 무지는 우리 삶에서 사소한 부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악인 것이다.

속된 말로 흔히들 ‘복지도 알아야 챙겨 먹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신청주의로 당사자가 직접 원하는 서비스를 신청할 때만 그 혜택을 볼 수 있다. 내가 극한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해서 알아서 알아주지도 않고 알아서 챙겨주지도 않는다.

즉 다양한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아동복지 차원에서 다양한 바우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 역시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고 수시로 일정과 절차를 검색하고 발 빠르게 신청한 자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진다.

일반 서민들이 이러한 정보를 통해 서비스를 받는다고 해서 막강한 부를 획득하여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계 경제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 1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편 2013년 4월에 제정된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 1조에는 ‘이 법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는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도 사람들은 빈부와 성 그리고 장애를 잣대로 구분하고 차별한다. 그런 사람들의 태도가 불합리하고 억울하다 하여도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성을 바꾸거나 장애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 무지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사람들의 태도는 더욱 노골적으로 바뀐다. 그러나 상대방의 지적 수준이 높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의 태도는 또 바뀐다. 아무리 가난하고 장애가 있어도 함부로 무시하거나 얕잡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사회적 소외계층 일수록 배움을 통해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지가 범법행위도 아니며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무지로 놓치고 잃어버리는 것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것 역시 무지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습득된 전문적 지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장애를 가진 우리들은 정보의 접근성이나 학습에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앎을 게을리한다면 우리 삶은 무지라는 덫에 걸려 사회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질퍽한 흙무더기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지렁이가 뜨거운 뙤약볕으로부터 말라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 힘을 모아 흙구덩이 속을 파고 들어가야만 한다. 흙속으로 들어가야만 살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렁이만이 살아남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 지렁이는 뙤약볕 아래 말라 죽을 뿐이다.

무지에서 벗어나 앎을 획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책읽기를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장르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책은 인간을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깨닫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목적 없이도 그냥 책을 읽다보면 사고가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식한 사람이 되겠다든지 똑똑한 사람이 되겠다고 목적하지는 않았더라도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무지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앎이 유일한 선이요, 무지가 유일한 악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책읽기나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한다면 자신의 내면적 발전 뿐 아니라 삶 역시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되어 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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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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