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화학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기에 새로운 IT기기가 나오면 선뜻 지갑을 열곤 한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기기는 한 이동통신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스피커이다.

인공지능과 관련해서는 요즘 가장 활발하게 제품화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스피커이다. 통신사들이 앞 다투어 제품을 출시하였고, 네이버도 관련 제품을 이미 출시한 상태이며 카카오도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대형 가전사들도 출시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신기한 기능들에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오디오북 제작사와 연계하여 월정액을 납부하면 오디오북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시각장애로 인해 불편한 점들이 많이 있지만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다는 점도 큰 불편사항들 중 하나이다보니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욕심이 평소에도 좀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오북이라는 말만 듣고도 서둘러 구매를 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스피커와 오디오북 메뉴 구동 화면 ⓒ 조봉래

실제 기기를 이용해 보고 들었던 생각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 특성상 아직 좀 더 많은 사용자들의 사용경험에 대한 데이터 축적 기간이 필요하겠다는 것과 나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기술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이 글이 제품에 대한 리뷰가 아니기에 시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느낀 점들만 몇 가지 적어 볼까 한다.

첫째, 독서에 활용하기 좋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TTS를 이용한 독서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고 육성으로 낭독된 도서의 독서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녹음도서를 선호하는 이들은 오디오북을 이용하면 좀 더 다양한 도서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복지관이나 점자도서관 등에서 제작하는 녹음도서의 경우 특성상 제작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가 제한적이다. 그런데 일반 기업이 제작한 도서들을 읽을 수 있게 됨으로써 보다 폭넓은 독서생활이 가능하다.

둘째, 시각장애인 중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기기일 듯하다. 4년 전쯤 저작권 관련 이슈로 인해 음악 청취방법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의 관심이 높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음악전문 사이트를 이용해 시각장애인이 음악을 듣는 것이 접근성 문제로 인해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 인공지능 스피커라는 기기를 이용하면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들도 간단하게 스피커를 호출하고 곡명이나 가수명 등을 말함으로써 얼마든지 편하게 음악을 청취할 수 있다.

셋째, 스마트폰들처럼 이 기기도 날씨나 뉴스 등 간단한 정보를 손쉽게 몇 마디 질문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옷을 입거나 외출을 준비하며, 또는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간단하게 날씨나 교통상황, 뉴스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검색에도 반드시 보조공학 소프트웨어 등의 힘을 빌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는 편리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어플리케이션 사용의 과정을 단순화 해 준다. 접근성이 잘 보장되어 있어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라 해도 복잡한 입력과정 등을 필요로 하는 어플리케이션은 사용에 불편함이 따른다.

예를 들어 배달음식 주문 어플리케이션의 경우 음식점과 메뉴 선택, 결제, 배달받을 주소 입력 등 번거로운 여러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기기를 사용하면 간단한 말 몇 마디로 주문도 편하게 할 수 있다.

반면, 이 기기가 스마트폰과 연동되어 작동하는 까닭에 반드시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런 저런 설정들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조금 번거롭기도 했고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만약 이 기기를 개발하는 과정에 보조공학 관련 전문가나 시각장애인 등이 함께 참여했다면 보다 편리한 기기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부터 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해서 무언가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노력이나 비용이 장애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진 무언가를 사후에 수정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이나 비용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다.

또, 그 편의성 또한 전자가 훨씬 우수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인공지능 기기와 같은 신기술이 적용된 기기들을 개발하고 제작함에 있어 장애 당사자의 의견 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보조공학 분야에서도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변화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연초에 국내의 한 보조공학기기 개발업체에서 점자정보단말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근래에 그 업체 대표와 잠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발비용 등에 많이 힘겨워 하는 눈치였다.

정부의 R&D사업 관련 공모들을 보면 4차산업 혁명이나 인공지능 기술 등에 대한 것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는데 보조공학 관련 R&D는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인공지능이나 새로운 기술 등에 대한 공모는 보지 못했다.

결국 보조공학이 딱 그만큼 정보통신기술로부터 뒤처지고 있다는 이야기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보조공학은 늘 새로운 IT제품이 나오고 난 후 그것을 사용하는데 불편을 느끼는 장애당사자들의 요구에 의해 뒤늦게 개발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운영체제가 나오고 나면 이 운영체제에서 화면읽기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아 운영체제 발표 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에 맞는 화면읽기프로그램이 발표되는 과정을 되풀이해 왔다. 이로 인해 비용부담도 컸지만 기능면에서 부족한 점도 많았다.

공지능스피커라는 기기를 사용해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시각장애인용 도서관어플을 이러한 기기와 연동하면 우리는 얼마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간단히 어떤 책을 읽어달라는 말 한마디면 손쉽게 원하는 책을 찾고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정보화교육과 정보제공을 담당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 통신사의 인공지능 스피커 개발과 관련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이나 의견 등을 전달하기 위해 개발자들과 면담을 요청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이 제품 개발과 관련해 그 과정에 장애인의 의견을 반영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보조공학 분야에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인간에게 이기는 것 못지않게 인공지능을 이용한 장애인이 장애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 이기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