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던 간에, 우리가 혁신적인 과학기술 발전기를 달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과학기술이 압도적으로 발전한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상상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큰 기대를 가진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특정한 과학기술발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늘 절대적 수혜자로 호출되는 장애인으로서, 이 지겨운 (장애인이 벌떡 일어나 걷고,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보고, 장애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기대에 몇 가지 우려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그 중 한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바로 ‘돌봄’과 ‘대면상호작용’의 문제이다.

로봇 돌봄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5년까지 노인에 대한 돌봄 인력이 크게 부족하리라 예상하고 로봇에 대한 예산지원을 시작했다. 인간의 돌봄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켰다. 노인요양시설, 장애인거주시설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헌신적으로 돌봄을 제공하지만, 때로 장애인을 학대하고, 인격적으로 모욕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돕는 일에는 언제나 감정이 개입하고 두 사람의 관계 사이에서 갈등이 야기된다. 가족이 다른 가족을 돌보다 불화가 생기고 극단적인 경우 그를 살해하는 일들도 일어난다.

로봇은 그와 같은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로봇은 날씨와 개인사정, 신체 상태, 돌봄을 받는 존재와의 관계에 따라 돌봄 내용과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로봇은 언제나 비슷한 정도로 합리적인 돌봄을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로봇에게 용변처리나 목욕 도움을 받을 때 훨씬 수치심을 느낄 일이 적을 것이다.

돌봄 노동에 곧 활용될 기술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만이 아니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와상장애인의 침대, 호흡기, 전동휠체어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장애인의 요청에 따라 적절히 자동화되어 움직일 수 있다.

침대의 등받이가 올라가고, 전동휠체어가 침대 앞으로 다가와 침대에서 휠체어로의 이동(transfer)을 돕는다. 호흡기가 빠져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침대나 휠체어에서 혹시라도 넘어지는 등 신체적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해당정보가 중중장애인을 위한 거점 응급의료센터로 전송되어 장애인이 거주하는 지역 응급 의료인력이 긴급 출동한다.

근육질환을 가진 장애인이 혼자 있다 호흡기가 빠져 사망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이정도의 돌봄 시스템은 기술적으로는 지금이라도 제공될 수 있고,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해 보편적인 사회보장의 일부로 포함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즉 장애인들은 ‘살기 위해’ 꼭 ‘살아있는 인간’을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몸과 몸이 만날 기회의 소멸

교육, 의료, 근로, 여가 등 모든 사회참여가 원거리에서 디지털정보로 구현된 자아를 통해 대체될 수 있을 때 장애인들은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폭넓게 가질 수도 있지만, 정작 장애인들이 자신의 몸으로 대면상호작용에 참여하는 빈도는 줄어들 수 있다. 돌봄의 제공이 인간에서 인공지능 로봇-사물인터넷으로 이전되는 변화도 이런 대면상호작용으로부터의 소외라는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활동보조인이나 이웃, 친구, 자원활동가 등 가족이 아닌 돌봄 제공자들은 장애인들이 (보통은 가족을 제외하고) 거의 처음으로 대면상호작용을 깊이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때로 갈등하고, 반목하지만,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인간감정의 복잡한 교류가 돌봄 제공자와 장애인 사이에 일어난다.

인공지능만큼 객관적이고 안정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인간-인간의 대면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돌봄제공-돌봄받기의 관계는 사회 참여가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유일하거나 혹은 중요한 관계의 한 형식이다.

아마도 꽤 먼 훗날 우리가 인간 신체의 미묘한 정보들까지 완전히 디지털화하는 시대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가상현실을 통한 인간-인간의 만남은 우리 뇌가 타인을 인지하는 방식 그대로 신체의 작은 정보, 냄새, 분위기, 고유한 움직임의 속도까지 완벽히 디지털정보로 변환, 전송하며 교류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서 ‘장애’가 제거된 자아로 등장하므로(현재의 카카오톡 메시지에서조차 시각, 청각, 지체장애 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공간 안에서 우리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주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디지털로 상호작용 가능한 세계에서, 느리게 말하고, 천천히 움직이고, 부정확하게 발음하고, 화장실에 자주 가고, 강직으로 차를 마시다 음료를 쏟는 우리 몸의 실재(reality)가 비장애인들과 만날 수 있을까? 장애인의 몸은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수용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속도에 조응하고, 발음에 익숙해지고, 예측 불가능한 강직에도 대응할 수 있는 여유와 경험이 쌓일 때 우리 몸은 타인에게 한 사람의 편안한 친구이고 연인이고 동료이며 가족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과 사물인터넷으로 우리 몸을 돌보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 밖의 모든 활동에 디지털 정보로 완전히 사회참여가 가능하다면, 누가 우리를 직접 만나고 싶을까?

물론 근본적인 질문이 가능하다. 꼭 직접 몸과 몸으로 만나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냐는 의문이다. 이 질문은 고도로 디지털화되어 각 인간의 개별성을 정보의 형태로 완전하게 ‘업로딩’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의미있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와 같은 시대 이전에(그런 시대가 가능할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대중교통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만나 대화하고 우정을 나누고 음식을 같이 먹고, 섹스를 하고 놀이를 즐기는 등 ‘신체적 대면상호작용’의 기반 아래서 살아가는 시대라면 무엇이 문제일지 쉽게 이해가능하다.

아무리 디지털화된 자아로 의사소통을 많이 하더라도, 우리가 다른 사회구성원과 달리 홀로 대면상호작용으로부터 소외된 채 살아가야한다면, 과거 장애인거주시설에서만 살던 당시의 장애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만약 지금이 진정 새로운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시기라면, 그 어느 때보다 장애를 가진 정신과 신체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김원영님은 현재 RI KOREA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이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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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KOREA(한국장애인재활협회 전문위원회)'는 국내·외 장애 정책과 현안에 대한 공유와 대응을 위해 1999년 결성됐다. 현재 10개 분과와 2개의 특별위원회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천전략 이행, 복지 사각지대 해소 등 국내외 현안에 관한 내용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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