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단어만큼 평생을 따라다니는 말도 드문 것 같다. 후회할만한 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간순간 마주하게 되는 선택들에서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후회할 일들이 참 많은 것을 보면 그리 현명한 삶을 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자주 기억하게 되는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

어린시절 집집마다 엽서나 카드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장애인들이 만든 것이라며 방문판매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거나 하지 않고 ‘안사요’라는 단 한마디로 매몰차게 문을 닫아 버렸다.

지난해 인사이동이 되어 다시 직업재활시설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리 시설에서 생산하고 있는 장애인생산품인 LED조명기구를 판매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담당공무원들을 대면 할 때 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장애인이 만든 물건을 팔러 다니던 이들을 문전박대 했던 일이 생각나며 후회가 몰려오곤 한다.

아마 그 때 나에게 냉대받던 이들도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때 그 사람들을 너무 차갑게 대해서 나도 똑같이 당하는가보다 싶기도 하다. 공공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내린 결론은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큰 변화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 한다.

경제발전이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른 요즘은 제품의 종류를 막론하고 무엇이건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많은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의 경우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제조사들이 참여하여 출혈경쟁까지 벌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시설이 생산하고 있는 LED 조명기구는 에너지 절약 이라는 과제와 함께 정부 부처들이 교체계획을 발표하고 난 뒤 엄청난 수의 기업들이 제조에 참여하게 되었고 저가의 외국산 제품들도 다수 시장에 공급되며 마치 치킨게임을 방불케 할 정도의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수 시장에서는 가격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장애인 생산품이 설 자리가 없다. 자연스럽게 공공구매 시장 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단 LED조명 뿐만 아니라 장애인 생산품으로 많은 시설과 단체들이 선택한 점보롤 화장지, 복사용지, 재생토너 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공공구매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공공기관들을 방문하게 되고 무수히 많은 담당공무원들을 만나게 된다. 장애인복지 분야의 일을 하다보니 본이 아니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영업사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다양한 기관의 다양한 담당공무원들을 만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몇 가지로 유형화 되어 있다.

첫째, 가장 많은 담당공무원들의 태도가 ‘잡상인 취급’이다. 사전에 약속을 잡고 방문을 하려고 전화를 하면 대부분 바쁘니 오지 말라 하기 일쑤이고, 이러한 반응을 피하기 위해 사전 약속 없이 방문을 하면 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도 맞추지 않고 바쁘니 카탈로그나 거기 놓고 가라 한다.

몇 마디라도 더 붙일라치면 이런 곳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아느냐, 그 사람들이 가지고 온 카탈로그만 해도 몇 상자씩 쌓인다 그거 치우는 것만도 일이고 그 사람들 때문에 도대체 업무를 볼 수가 없다며 하소연까지 늘어놓는다.

둘째, 잡상인취급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반응은 민원과 내부 방침 핑계이다. 최소한 이들은 앉아서 몇 분이라도 이야기할 기회만이라도 주니 그래도 나은 편일 것이다.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수의계약이 가능한 법률조항 등을 설명하면 자신들도 그 법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장애인 생산품을 수의계약을 통해 구매하게 되면 민간 업체들이 너무 많은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에 그렇게는 구매할 수 없으니 조달청에 입찰공고를 올리면 그 때 참여하라고 한다. 그게 구매방침이라 하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나라장터 쇼핑몰에 최저가로 등록해 놓으면 한 번 살펴는 봐 주겠다고 한다. 장애인 생산품 생산시설들이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특허출원 등을 통해 우수조달 품목으로 등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이 이야기도 긍정적인 답변이라 하기는 어렵다.

셋째, 예산이 없다는 이야기도 이들이 자주 보이는 반응이다. 구매해주고 싶지만 자신들에게 배정된 예산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상냥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상냥함에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을 보인 곳들 중 몇 달 후 입찰공고를 올리거나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려 LED등으로 교체해 에너지 절감 효과가 기대 된다거나 시민의 밤길 안전이 보장되었다거나 하는 기사가 올라오는 경우도 보게 된다.

넷째, 장애인생산품의 품질이나 다른 우선구매 제도에 대한 핑계도 자주 접하게 된다. 장애인 생산품을 구매 해 주려고 찾아보았더니 가격이 민간 기업들의 제품보다 크게 비싸다거나 부족한 예산을 투입해 교체 하는 것이다보니 AS가 확실히 보장된 중견업체의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이외에 각종 우선구매 제도들이 너무 많고 그 것들은 구매비율 조차 장애인생산품 보다 높기 때문에 그 제품들을 먼저 구매해야 하기에 장애인 생산품을 구매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공공구매 시장에서도 장애인생산품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특별법이 있고 정부의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실적 발표에서 평균 1%이상의 구매실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들이 그래도 어느 정도 숨통은 틔여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잘 마련되어 있어도 현장에서 그 제도를 적용해 나가는 이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그 제도가 갖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는 어렵다.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제도에 있어서도 담당공무원들이 먼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장애인생산품의 판로개척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새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중요 과제중 하나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 생산품 구매도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직접 관련되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욱이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하여 장애인생산품을 생산하는 시설과 단체들이 직면한 과제가 이들이 해결하기에 녹녹치 않기에 정부의 노력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이 제도가 좀 더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해 담당공무원의 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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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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