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요즘 많은 여중‧고등학생들이 화장을 하고 다닌다고 한다. BB크림은 기본이고 어떤 학생들은 풀메이크업(full-make up)을 하고 다니는데 그 수준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이런 경우도 있었단다. 어떤 남자분이 버스에 올라타는 한 여자 승객을 보며 '참, 예쁜 아가씨네...'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통카드 단말기에서 "학생입니다."하고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자신이 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의 발육이 워낙 좋은데다가 두발자유에 그나마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교복을 벗고 평상복에 메이크업까지 한다면 단말기가 말해주지 않는 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기 힘들 것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발달단계의 특성상 또래집단과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메이크업을 한 뒤 예뻐진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기만족감과 예뻐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에서 느끼는 만족감도 한 몫 할 것 같다.

아름답고 예쁜 것에 더 눈길이 가고 호감이 가는 것은 본능적이다. 그리고 아름다워지려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욕구이다.

흔히들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생긴 게 밥 먹여 주냐?" 말을 하지만 타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자극에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하다. 그런 면에서 시각장애가 있는 여성들은 메이크업이나 옷차림에 있어서 원하는 대로 뜻대로 꾸미기가 쉽지 않다.

나는 빛조차 느끼지 못하는 전맹이지만 내가 원할 때에는 립스틱에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 그리고 브라이터까지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비장애인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누가 화장을 해주냐?"며 묻는 이들도 많다.

나는 정안일때 화장품 업계에서 판매사원들에게 제품 및 서비스 교육을 진행하는 매니저로 10년 이상 근무 했었다.

화장품에는 기초 뿐 아니라 메이크업 제품도 다양하고 특히 메이크업은 해마다 계절마다 트렌드가 있어서 교육을 위해 나 역시 메이크업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내 얼굴 정도는 무난하게 화장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시각장애가 있은 후 수년이 지나도록 여성 시각장애인들이 메이크업이나 꾸미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나 역시 시각장애로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여성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다니는지 무심할 수밖에....

그런데 어느 날 시각장애인 엄마들의 모임에서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아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때면 좀 예쁘게 하고 가고 싶은데 화장을 할 수 없으니 BB크림만 바르고 가곤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아이가 '엄마도 다른 엄마처럼 립스틱도 바르고 예쁘게 하고 오면 안돼?' 하는 거예요."

그때서야 알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그리 화장을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대학 입시가 끝나면 학교로 화장품 회사 관계자가 나와서 기초화장법이나 간단한 메이크업 방법에 대해 특강을 하곤 하였다.

엄마의 화장대 위에 줄지어 늘어선 것들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엄마 흉내를 내며 찍어 바르던 수준에서 이제 제대로 알고 본격적으로 화장을 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조금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예쁘게 화장한 언니들을 눈여겨보고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흉내 내던 것이 화장품 관련업에 수년 동안 일하면서 일반인들 이상의 메이컵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어릴 적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자란 여성들은 자신의 모습은 물론 타인의 모습도 뚜렷하게 볼 수 없으니 메이크업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나 같은 경우는 화장품 업에 수년 동안 근무한 덕분에 정안일 때만큼의 실력은 아니더라도 밉지 않을 만큼 화장을 하고 다니지만 일반적인 여성이 중도 실명하였다면 메이크업하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는 '먹고 사는 것도 팍팍하고 장애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도 불편한데 웬 화장 타령이야?'하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백발에 검버섯이 피어오른 어느 노쇠한 할머니가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할머니 병문안을 오겠다는 손자의 전화에 할머니는 손거울을 달라 하시더니 머리를 매만지고 얼굴을 살피시더란다. 흰머리에 아파서 병상에 누운 할머니가 손거울을 보며 단장을 한들 얼마나 예뻐 보이겠는가?

3살, 4살 밖에 안된 꼬마 아이조차 꽃방울에 핑크 원피스를 입겠다고 떼를 쓰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샤랄라 춤을 춘다. 이렇듯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모르기 때문에 그냥 자신이 아는 선에서 꾸밀 수밖에 없을 뿐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머리를 손질하고 예쁘게 메이크업한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만족감에 빠지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엄마 예뻐.", 남편의 "오늘 당신 예쁜데." 말 한마디에 그리고 사람들의 태도에서 나는 만족감을 느끼고 좀 더 당당하게 그들과 마주할 수 있다.

가르쳐주지도 않고 해보지도 않았는데 왜 시각장애인은 못할 거라고 생각할까?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그 의미가 완전 다르다. 같은 생얼이라도 안한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못한 사람은 선택의 여지없이 생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관의 프로그램을 보면 매년 똑같은 내용으로 획일적이고 단조롭다. 으레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만 매년 반복적으로 편성된다.

특히 여성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전무하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남성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은 분명 다르고 여성은 여성만의 신체적 정서적 특성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차별이 아닌 그 차이를 인정하고 여성들에게 필요하고 요구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역할에 있어서 여성이 가사나 육아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비장애인의 방식으로 요리나 육아를 할 수 없는 여성장애인들을 위해 그것을 가르쳐주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나는 시각장애인 엄마 모임이 끝나면 몇몇 엄마들과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밥을 해준다. 제일 처음 집에서 밥을 해주었을 때 한 시각장애모의 초등학생 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요 엄마가 직접 만든 이런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활동바우처제도로 배고픈 것은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바랐던 것은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음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엄마의 정성이 고팠던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요리는 당사자가 아무리 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제대로 가르쳐주는 이가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복지기관 관계자에게 메이크업이나 요리 같은 프로그램의 개설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관계자는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단다. '해봤어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예산이며 시설, 행정절차 등 그에 수반되는 준비사항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결과가 좋을 거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러나 기관에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린다면 여성 장애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배움의 기회를 가질까?

시각장애인 엄마들은 나에게 말한다.

"메이크업 좀 가르쳐줘요", "요리하는 것 좀 가르쳐 줘요."

재능기부라도 해서 그들을 돕고 싶지만 나 역시 재능기부를 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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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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