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La difference invisible'의 프랑스어판 표지(좌측), 한국어판 책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표지(우측) ⓒ이숲출판사, 이원무

수도권 자폐성 장애인 자조집단 estas 페이스북에 estas의 한 회원이 글을 올린 걸 본 적이 있었다. 아스퍼거 장애인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낸 프랑스 작가의 책 ‘La difference invisible’의 한국어판 책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이 나온다고 말이다.

필자도 아스퍼거 장애가 있어 그 한국어판 책에 저절로 관심이 갔다. 그래서 6월 15일,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진행하는 ‘발달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프랑스 그림작가와의 만남’ 강연회에 참가신청을 하고 그 날 참석했다.

그 날 권용득 만화가가 책에 관련해 궁금한 것을 묻고 그림작가 마드무아젤 카롤린이 답하는 형태로 출판사 측에서 강연회를 진행했다. 아울러 카롤린이 장애 등에 관한 플로어 청중들의 궁금증을 풀어내는 시간도 가졌다. 원래 ‘La difference Invisible'의 스토리 작가 쥘리 다세 씨도 한국을 방문하려 했지만 개인사정으로 오지 못했다고 한다.

먼저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카롤린 씨의 친구인 파비엔 바슬레 씨에게 아스퍼거 장애가 있는 자녀 2명이 있었다고 한다. 파비엔 씨는 자녀와 같은 장애가 있는 스토리 작가인 쥘리 다세 씨의 블로그를 읽고 아스퍼거 장애인 이야기를 만화로 만드는 것을 제안했고 그녀는 이를 수락했다.

파비엔 씨는 친분이 있었던 친구인 카롤린 씨를 쥘리 씨에게 소개시켜 주었는데 쥘리, 카롤린 간에는 1년 동안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메일, 전화로 서로 연락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아스퍼거 장애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 장면을 그릴 때 쥘리 씨가 지적하면 카롤린 작가는 그림 수정을 했고 어떨 땐 서로 격렬히 토론하는 과정도 거쳤다고 한다.

이런 과정들 끝에 ‘La difference invisible’이라는 자전적 만화책을 만들었고 책 싸인회 당시 쥘리 씨와 카롤린 씨는 서로 만나 얼싸안았다고 한다.

쥘리 씨 마음을 경청하는 카롤린 씨의 노력, 서로간의 소통이 ‘La difference invisible’을 탄생시키고 아울러 한국어판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이라는 책까지 나온 원동력이라 생각하니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새삼 실감한다.

강연회에서 권용득 만화가, 마드무아젤 카롤린 작가, 통역자가 서로 소통하는 모습(좌측), 권용득 만화가의 궁금증에 대해 답하는 마드무아젤 카롤린 그림작가의 모습(우측) ⓒ이원무

아스퍼거로 확진 시 프랑스 정부 지원 여부에 대한 질문에선 정부 지원은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한 거기서는 아스퍼거 장애가 사람들 눈엔 잘 안 띄는 것인데, 최근에야 사회적 진단으로 밝혀졌고 자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이를 들으며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소득보장도 장애인 연금 정도가 고작이고, 최소한의 돈이 있으면 가족이 자폐인 생계비용을 책임지는 등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 성인 자폐인이 있음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상당히 많고 자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거의 없거나 최근에야 조금씩 생기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아스퍼거 아동을 포함한 자폐아동 취약률이 프랑스에서는 20%라는 말에 필자는 깜짝 놀랐다.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장애인 교육에 있어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외에도 프랑스 사회에선 여성/장애인/유색인종에 관한 쿼터를 도입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방송국에서 유색인종을 몇 % 이상 채용 규정을 두는 식으로 말이다.

이 부분에 관련해 관심이 있어 플로어 청중들이 물어보는 시간에 필자는 프랑스 정치에서 장애인 할당제가 법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직선거법에 국회의원과 관련한 장애인할당제 규정이 없어 장애인의 국회의원 피선거권은 법적 권리가 아닌 시혜 성격이 짙기에 그런 배경에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장애인 할당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들으며 프랑스에서 장애인의 정치적 권리도 우리나라처럼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연회 시간을 통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장애인식 개선은 물론 노동권, 정치적 권리 등의 증진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장애인 당사자들이 사회에서 권리와 책임을 다하며 정부에 당당히 요구하는 게 전보다 더 많아져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강연회가 끝난 후 한국어판 책 추첨시간 때 뽑힌 사람들에게 한국어판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책에 마드무아젤 카롤린 작가가 싸인하는 모습(좌측), 책을 받아가는 사람의 모습(우측) ⓒ이원무

결과적으로 나에게 강연회는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연회가 끝난 뒤 책 추첨 시간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필자의 추첨번호가 안 나왔다.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서점에서 한국어판 책을 구입해 읽어야만 했다.

책을 사서 읽었는데 내용상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그중에 하나는 아스퍼거 당사자인 책 주인공 마그리트가 초등학교 때 활발하게 노는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고 대인관계 작동방식을 몰랐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농담과 진담을 구분치 못하고 친하게 어울리는 방법을 몰랐기에 동료들의 놀림감이었다. 중학교 때는 잘난 척을 싫어하는 동료들 마음을 몰라 괴롭힘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괴롭힘은 더하였기에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가 좀 더 빨리 누군가로부터 내 장애을 알아내고,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식이 좋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주인공 마그리트를 통해 자연스레 하게 된다.

또한 마그리트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추어 삶을 살지 않겠다고 결정한 장면은 제일로 공감했던 부분이다.

위트가 있으면서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고 사람들 마음을 알아채며 사회적 코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필자에겐 그런 게 없다. 사회적 코드는 잘 이해 못하고 사람들 마음을 알아채지 못함은 물론 농담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4년 동안의 연구소 생활을 한 후로는 농담을 잘 못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채지 못해도, 나만의 강점을 살려서 최선을 다하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살려는 내 자신을 조금씩 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고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만 말이다.

책의 주인공 마그리트가 자신의 장애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해방감을 찾고, 상담가가 마그리트에게 자폐센터의 역할에 대해 알리는 등의 모습(좌측), 자신의 강점을 찾으려고 내면에서 싸우는 마그리트의 모습들 ⓒ이숲출판사

내용으로도 흥미와 공감을 많이 유발하는 책이지만 마드무아젤 카롤린 작가가 당사자 경험을 색과 색감의 적절한 선택·변화를 통해 녹여낸 건 그 책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핵심적 요소라 본다. 그만큼 이 작가의 예술적 감수성에 정말 놀랐다.

책 주인공 마그리트가 자신의 장애를 알기 전엔 검정, 빨강 등 어두운 분위기의 색이, 아스퍼거가 있음을 알게 된 후엔 하늘, 노랑 등 밝은 색깔이 주류를 이뤘다. 마그리트의 삶이 변화됐음을 금새 알 수 있음은 물론 다음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를 자아내게끔 색과 색감을 적절하게 선택·변화시킨 한 예라 본다.

마그리트 삶이 힘들었던 과거 시절을 묘사한 그림들 중 남자친구와 같이 파티에 간 그녀의 모습이 처음에는 나오나, 시간이 흐르면서 흐릿흐릿해지더니 나중에는 아무 모습도 없이 사람 형체 윤곽만 나오는 반면 파티 배경은 점점 진한 빨강으로 변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보며 주인공이 파티에서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음을 강렬하게 느꼈다. 지역사회에서 인식 부족으로 자폐인이 어울려 살지 못하는 우리나라 현실도 떠올라 당사자로서 마음이 시릴 정도였다. 이런 감정을 느끼도록 작가가 감수성을 발휘해 색과 색감을 적절하게 선택·변화시킨 또 하나의 예라고 본다.

주인공 마그리트가 자신의 장애를 알기 전 남자친구와 같이 파티에 참석했을 때 처음에는 주인공의 모습이 분명히 나타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지다 결국엔 사람 형체 윤곽만 남은 모습이 묘사된 장면 ⓒ이숲출판사

한편 강연회 전 이 작가의 책과 관련, 출판사가 텀블벅 페이지에 아스퍼거 증후군을 설명했는데, estas가 이와 관련한 입장문을 출판사 측에 보냈다.

먼저 ‘아스퍼거는 “대인관계에서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관심분야가 한정되는 특징을 보이는 정신과 질환”’이라고 하는 등 텀블벅 페이지에 자폐 당사자 장애를 정신질환으로 소개했다. 사실 아스퍼거는 회복 불능으로 장애인복지법 상 장애로 등록돼 있지만, 질환으로 소개해 자폐인 차별여지가 있음을 우리는 우려했다.

개인적으로는 페이지에 ‘아스퍼거 자폐증을 앓는다’ 등의 문장이 있어 장애가 병이고 고쳐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도 있음을 느껴 마음이 불편하고 아쉬웠다.

estas 구성원 중에는 한국의 아스퍼거 장애인은 대부분 감각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감각적으로 예민하다고 페이지에 소개한 아스퍼거 진단기준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페이지에 아스퍼거 진단기준들을 보고 나 자신이라 답할 때 아스퍼거 증후군일지도 모른다고 소개한 문구가 있었다. 자폐 손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문구를 읽으면 지역 발달장애인지원센터나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정확한 상담을 받기보단 낙담해할 것임도 estas에선 우려했다.

이에 관해 출판사 측은 아스퍼거를 정신질환으로 설명한 것이 서울대학교 자료에 근거한 점, 저자가 실제 감각장애가 있으며 책을 중심으로 아스퍼거를 소개했다는 것 등으로 우리 입장문에 대해 해명했다. 아울러 estas에서 대변하고픈 의견, 보도자료를 줄 수 있으면 이를 감안해 책 관련 소식을 올리겠다고 했다.

아쉬운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로선 프랑스 사회의 장애인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함은 물론 예술적 감수성과 당사자 경험을 함께 담은 감수성 깊은 책이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이라고 정리해 말하련다.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 책이라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발달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프랑스 그림작가와의 만남’ 강연회 전경 ⓒ이원무

마드무아젤 카롤린 작가는 마지막 말로 이 책이 아스퍼거 장애인 등 자폐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고 비장애인들의 인식제고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강연회를 마무리했다.

그렇다! 자폐성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책 출판과 같은 것이야말로 장애인 인식제고에는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언젠가는 필자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 장애인 인식제고는 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어울려 사는 계기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되도록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히 살련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이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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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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