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고 걷고 있는 그녀 그림 ⓒ최선영

주르륵 투둑 주르륵 투둑

이리저리 제마음대로 불어대는 바람 탓인지 내리는 빗줄기도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우산을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온몸을 흠뻑 적시고 있습니다

비를 피한다는 핑계로 들어선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혼술에 익숙한 듯

소주와 어묵 우동을 자연스럽게 주문합니다

그녀의 그늘진 얼굴도 지친 듯한 힘없는 목소리도 빗물에 젖어버린 옷만큼이나 초췌해 보입니다

​​소주 잔 가득 소주를 따르고 그는 한참을 술잔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혼자 말없이 웅크린 그녀의 가녀린 어깨는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해 보입니다

그녀가 막 첫 잔을 들이켜고 있을 때 그녀만큼이나 비에 흠뻑 젖은 옷을 툭툭 털며 들어서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에 젖어 포장마차에 들어오는 그 그림 ⓒ최선영

그는 빈자리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다 비어 있는 그녀의 옆 테이블로 와 역시 소주와 어묵 우동을 주문합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다 폰을 넣고 긴 한숨을 쉬며 첫 잔을 들이켭니다

우산도 없었는지 그는 그녀보다 더 많이 젖어 있었고 조금은 길게 느껴지는 그의 머리에서 곧 물이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촉촉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그의 고개 숙인 처진 어째는 그녀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해 보입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약속이나 한 듯 그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녀가 먼저 계산을 하고 나오자 그도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옵니다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비는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고 있었습니다

우산을 펼쳐든 그녀는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넵니다

그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녀 그림 ⓒ최선영

"저... 택시 타실 건가요?"

"아... 네"

"그럼 저 앞까지 우산 씌워드릴게요"

그녀는 같은 공간에서 혼술 친구인 그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 모든 경계심을 풀고 우산을 내밀었는데 그는 괜찮다며 그냥 비속을 걸어갑니다

"내가 이상한 여자로 보이나?" 그녀는 혼잣말을 한마디 던지고는 택시를 타기 위해 그가 걷고 있는 그 길을 그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택시를 기다리는 그의 뒤에 그녀도 택시를 타기 위해 섭니다

슬쩍 뒤를 돌아본 그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하고는 말없이 택시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택시가 연이어 와서 그들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다음날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를 만큼 휴일 아침이 화창한 합니다

햇살이 좁은 창문 틈 사이로 환하게 들어오고 있지만 그녀의 낯빛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아니 어젯밤 비가 내리던 그때보다 화창한 오늘 아침이 더 어두워 보입니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 거야..."

그녀는 어젯밤 비가 온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더니

이 아침에는 날씨가 좋다는 것에 불만 썩인 말을 내뱉고는 또 선반에서 술을 꺼냅니다

그녀에게 술은 기억을 무디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였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단 하나의 친구입니다

한 잔 두 잔으로 시작된 술은 이제 알코올중독이라는 딱지를 달게 했습니다

해장술을 빈속에 마시고 그녀는 어제 비에 젖은 옷을 세탁소에 맡기려고 대충 벗어서 둘둘 말아둔 옷을 들고 슬리퍼를 끌고 집 밖을 나섭니다

세탁소에 막 들어섰을 때 어디서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어제 포장마차에서 혼술 하던 그 남자...

번득 그가 떠올랐지만 그녀는 모른체하고 옷만 맡겨두고 얼른 세탁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이동네 사람이라니..."

그리고 다음날 술이 떨어져 이른 아침부터 그녀는 마트를 향해 투덜거리며 걸어갑니다

그때~ 어제 본 그 사람이 마트 옆 빌라에서 나옵니다

아마 출근을 하나 봅니다

헝클어진 머리에 슬리퍼 차림... 그녀는 그가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그런 모습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른 마트 안으로 들어가 소주를 담아서 계산하려는데 그가 마트 안으로 들어옵니다

"술...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

표정 없이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체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계산하고 얼른 마트에서 나와버립니다

왠지 모를 창피함이 그녀를 그에게서 도망치게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주말이 되어 그녀는 딸 예린을 만나기 위해 모처럼 외출 준비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녀는 예린을 만나기 위해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시댁을 향합니다

그녀와 그녀의 딸 예린 그림 ⓒ최선영

예린은 발달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 사람을 만나 사회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결혼생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결혼 3개월 만에 예린을 임신했고 예린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것도 그녀에게는 낯선 삶이었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예린 아빠의 무능력함은 그녀를 더욱 고되게 했습니다

시댁에서의 모든 경제적 지원이 단절되고

그녀는 어렵게 직장을 구해야 했고 슈퍼맘이라도 된 것처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예린을 잘 키워보려고 젊은 나이를 하루하루 바치고 있었습니다

예린 아빠는 날이 갈수록 무기력해졌고 그녀는 3년간의 고된 생활에 지쳐만 갔고

그럴 때마다 한잔 두 잔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삶을 내려놓으려고까지 했습니다

망가져가는 그녀를 그녀의 남편도 감당할 수 없었는지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는 일방적으로 이혼을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받아들였고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예린을 남겨두고 옷가지만 챙겨 들고 무작정 나왔습니다

친정의 도움으로 작은 원룸을 구했습니다​

예린을 그녀의 품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고 술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린을 데리고 와 하룻밤 함께 보​내고 다시 예린을 데려다줄 때는 피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그녀는 예린과 함께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간간이 번역해서 들어오는 수입으로는 먹고살기도 빠듯했습니다

술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그녀가 그나마 번역 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린을 만나 예린에게 옷을 사주고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엄마를 만나고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예린은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엄마품이 그리운 예린은 울고 또 울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결국에는

"엄마 또 언제 만나?"라는 말을 백 번쯤 반복하다 눈물로 얼룩진 손을 흔듭니다

예린을 데려다주고 오는 날은 더 술이 고픕니다

비 오는 지난밤에도 예린을 데려다주고 발걸음을 옮기다 길목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술을 마셨습니다

"예린아 우리 어디 갈까?"

"엄마 집 엄마 집 엄마 집 갈래"

예린은 엄마 집을 제일 좋아합니다

예린을 데리고 와서 집에서 놀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말에 예린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그를 만납니다 그는 예쁜 딸아이와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는 예린 그림 ⓒ최선영

"엄마 아이스크림 엄마 아이스크림"

조금은 달라 보이는 예린의 모습에 그 아이들은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아빠 쟤 아픈가 봐 말을 이상하게 해"

그는 민솔이라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평소에 아픈 사람 보면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 물어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안 좋은 거라고 말해줍니다

민솔이도 아빠의 말을 듣고는 자기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반성합니다

옆에 있던 민솔이 누나 혜솔이 민솔에게 꿀밤을 줍니다

그는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가며 그녀에게 옅은 미소를 보내며 눈인사를 합니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인사에 답을 합니다

그리고 예린을 데려다주고 그녀는 다시 포장마차를 갑니다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우고 있을 때 그가 들어섭니다

그는 그녀를 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에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혼술이 싫어서 그러는데... 술친구 좀 되어주시겠어요?"

그는 몹시도 피곤해 보였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아주머니에게 소주 한 병과 잔 하나를 주문합니다

소주를 나눠 마시는 그와 그녀의 손 그림 ⓒ최선영

둘은 거의 말없이 술만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소주 한 병을 나눠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없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은 재현 윤희라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술친구가 되어 거의 매일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재현은 3년 전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윤희를 만나기 3일 전에 윤희 동네로 이사를 왔었고 그날 포장마차에서 윤희를 본 순간 야속하게 먼저 떠난 아내와 닮아 놀랐다는 말도 합니다

윤희의 알코올중독 사실을 알고부터 윤희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재현은 도와주었습니다

둘은 더 이상 술잔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윤희가 번역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일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린이 오는 날이면 헤솔이와 민솔이도 함께 만납니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없는 그들의 깊어가는 감정 속에 2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예린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재현은 예린을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말과 함께 특수학교에 보내자고 제안을 합니다

2년 동안 윤희는 재현의 도움으로 열심히 일을 해서 예린을 데려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린 아빠에게 찾아갔을 때 윤희의 삶을 본 그는 다시 재결합하자는 말을 합니다

예린은 자기가 키울 테니 경제활동에만 전념하라며...

윤희는 예린을 위해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다시 그 사람과 살 수는 없었습니다

예린을 데려오는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예린을 사랑하는 마음은 양심 없는 그도 조금은 있었는지 예린을 잘 키워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는 물러섭니다

예린과 함께 살게 된 윤희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더 흘렀습니다

혜솔과 민솔은 어른들도 하기 힘든 예린 돌보기를 누구보다 척척 잘 해냅니다

때로는 재현과 윤희의 등을 떠밀며 예린이랑 잘 놀고 있을 테니 영화를 보고 오라 고도 합니다

"아이들을 어쩜 저렇게 잘 키웠어요?"

윤희의 말에 재현은 조금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중학교 때 반에 발달장애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그 친구를 많이 놀리고 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모른체했던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책을 찾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을 하며 그 친구에게 아직도 많이 미안하다는 말을 합니다

재현의 그런 속 깊은 마음이 윤희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재현과 윤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며시 손가락 고리를 만듭니다

새끼 손가락을 걸고 걷는 그와 그녀 그림 ⓒ최선영

"예린에게 멋진 아빠가 되어주고 싶은데... 헤솔이와 민솔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않을래?"

"우리 애들 기다리겠어요 빨리 가요"

아픈 사람들이 만나 그 아픔을 어루만져 주며 이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며 빈 마음을 가득 채워가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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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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