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하원 차량을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처럼 어르신 한 분이 말을 걸어오신다.

"아이 기다리나?"

할머니는 80세를 훌쩍 넘으셨는데 날씨만 허락한다면 어김없이 골목길에 나와 앉아 계신다. 뵐 때마다 물었던 것을 묻고, 했던 말을 또 하시는 것을 보면 약간 치매도 있으신 것 같다.

할머니의 두 번째 질문은,

"어디 아프냐? 왜 벽을 짚고 휘청거리냐? "

내 상태를 대충 설명하고 나면 다음은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아이는 몇이냐?", "신랑은 있냐?", "신랑은 멀쩡하냐?" 등.

질문의 앞뒤가 바뀔 뿐 거의 매일 똑같다.

그리고 마지막 나에게 하시는 당부 말씀도 똑같다.

"신랑한테 잘해라. 멀쩡하지도 않은데 데리고 사는 게 얼마나 고맙냐."

지금이야 '네, 네'하고 곧잘 대답하지만 사실 처음 할머니의 상태를 몰랐을 때는 그 말에 엄청 불쾌했었다.

일반적으로 할머니처럼 '멀쩡하지 않은데 데리고 산다'는 노골적인 표현까지 하지는 않지만 비장애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이 비장애인이라고 하면 "남편한테 잘해야겠네."하는 말이 도돌이표처럼 들려 나온다.

남편의 장애 여부 뒤에 나오는 비장애인들의 그런 말에는 멀쩡하지 않는 나와 살아가는 남편에게 잘해라는 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성품은 어떠한지, 경제력은 좋은지 나쁜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잘해라는 것이다. 아니 어쩜 남편의 조건이 아니라 장애가 있는 내 조건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하라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위나 가치는 크게 평가하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려면 사회적 체계와 사투를 벌이며 남성보다 몇 갑절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배제하고 단순히 성으로만 따진다면 남성에게 더 관대하고, 더 존중하며, 더 가치 있어 하는 게 아직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 장애를 가진 여성의 가치는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진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모멸을 받던 것이 장애라는 허울에 그 강도와 정도는 더 심해진다. 한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가치까지 무시한 채 장애 여부나 성에 의해서만 상대를 속단하고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특히 60, 70년대를 살아온 오늘날의 50, 60대 이후의 사람들은 남아선호와 남존여비 사고에 장애에 대한 선입견까지 덧대어져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 장애인에 대해 극단적으로 평가절하하며 무시하고, 깔보고, 얕잡아 보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택시를 이용하다 보면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저분이 내가 여자라서 저런 걸까? 장애인이라서 저런 걸까? 여자라도 내가 비장애인 이였다면 좀 더 조심스러워했을 것이고, 내가 장애인이라도 남자라면 또 좀 더 조심스럽게 말하지 않을까?‘

남성들도, 비장애인들도 불친절한 택시 기사들로부터 불쾌감을 느낀 경험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장애인의 경우는 그런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가령 접촉사고가 났을 때 상대가 여성 운전자이면 일단 심리적으로 안도하며 얕잡아보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과 같이 여성이라는 조건에 장애라는 요소가 결합하면서 그 부정적 시너지는 불쾌감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이런 여성 장애인에 대한 이중적 차별은 힘겹게 사회로 나아가려는 여성 장애인들에게 걸림돌이 된다.

대학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지난해 겨울 학과장님은 만학도들과 일대일로 대면하며 진로 상담을 하였다. 그런데 학과장님이 나한테 말씀 하셨다.

"경미씨도 상담이 필요한가?“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이런 식으로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그 의중을 알 수 있을 만큼의 뉘앙스를 풍기며 말한다.

굳이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대학 2년 동안 과에서 1, 2등의 높은 학점을 받았고 내내 성적장학금을 받았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학생이면 추천이나 진로에 있어서 학교 측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교수님의 단 세 마디 속에는 "젊은 사람도 취업하기 힘든데 나이도 많고 여자에 장애까지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취업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만약 나이나 장애 등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내 성이 남성이었다면 교수님은 나에게 '상담이 필요한가?' 따위의 질문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음으로는 상담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언정 형식적으로라도 상담을 진행하려고 했을 것이다.

한 개인의 가치는 스스로의 노력이나 마음가짐에 의해 획득되고 높아지기도 하지만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부여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여된 사회적 가치는 한 개인의 역량을 향상시키고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여성 장애인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기는 커녕 인정도 용납도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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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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