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1년 전이다. 작년 4월말 KOICA사업의 중간평가를 위해 네팔을 방문했을 때 만나게 되었다.

두 내외가 모두 척수장애인이다. 남편이 먼저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다행이 불완전마비로 매우 불안하지만 지팡이를 짚고는 보행이 가능하다. 산 위에 있는 밭을 일구고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이후에 불행히도 그의 부인이 하반신마비의 척수장애인이 된다. 집을 수리하기 위해 흙을 파는 과정에서 흙더미가 무너져 깔리면서 그 무게에 눌려 척수가 손상이 된 것이다. 사고 전에도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부부의 정을 쌓았다.

그나마 거동이 가능한 남편은 부인의 신변처리는 물론 가파른 지형에서도 부인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활동을 도왔다. 무심하게도 하늘은 그 부부에게 시련을 또 주었다. 2015년 네팔에 불어 닥친 대지진으로 어머님과 내외가 같이 살던 단란한 보금자리가 파괴가 되었다.

내외가 지진 전에 살았던 집. 지진으로 균열이 많이 가서 거처가 불가능하다. ⓒ이찬우

집수리를 한다면 흙집 전체가 무너진다는 이유로 지연되면서 부부는 집 근처 형님소유의 빈 양계장 한 구석에 침대하나 놓고 생활을 하고 있었고 세계화장실협회의 후원으로 새집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필자가 현장을 방문하면서 그 내외와 조우를 한 것이다.

짚차를 타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산 넘고 물 건너서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 방문을 하였다. 미리 나와 있던 자상한 인상의 남편과 어머님의 배웅으로 그 부인이 거처하고 있는 양계장으로 갔다. 지진의 영향인지 양계장에는 닭 한 마리도 없었고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고약한 냄새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부인이 휠체어를 갈아타고 나왔는데 근심이 가득한 표정에서 불안함을 느낄 수가 있었고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한국말을 영어로 통역하고 다시 네팔어로 통역을 하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멀리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휠체어를 타고 온 흰머리의 필자를 그제서야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새로 지은 집에서 가족들과 단체 사진. ⓒ이찬우

척수장애인인 부인을 위해 조리가 가능하도록 주방을 설치해 주었다. ⓒ이찬우

사실 당시에 ‘MBC 다큐프라임’ 프로그램의 취재로 네팔지진의 상황과 그 척수장애인부부를 위한 집을 새로 짓는 과정을 촬영 중이었다. 촬영 내내 미소 한번 띠지 않던 부인이 같은 척수 장애인인 필자를 보고 미소를 띠는 것을 보고 사업담당자가 신기하다고 연신 이야기를 했었다.

원래는 지진으로 파손이 된 집을 고치는 것을 촬영하기로 했으나 보수가 불가능하여 바로 앞의 공간에 신축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시작을 하였는데 난관이 많았다고 한다. 지진이후에 건축법이 바뀌어서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야 건축이 가능하도록 되었고, 이전에는 흙벽돌로 집을 지었다.

예정에 없던 자재가 소요되고 그 자재를 산꼭대기로 옮기는 과정에 비용은 연신 추가되어 몇 번이나 작업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지지부진할 때 필자가 방문을 하게 되었다. 새로 짓는 집이라고 해야 부엌과 침실이 있는 두 칸짜리 공간이고 기둥만 세워있고 지붕도 없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협회 담당자와 공사관계자에게 빠른 진척을 부탁하였고, 그 부인에게 내가 가을쯤에 다시 와서 완성된 집을 볼 것이며 그때는 부인이 직접 끓여 준 짜이(네팔 전통차)를 나에게 대접해달라고 부탁하였고 부인도 승낙을 했었다.

다행이 필자가 다녀간 후에 몇 가지 어려움은 있었지만 공사가 진전이 있어서 완공이 되었다는 소식은 한국에 돌아온 후에 한참이나 지나 들을 수가 있었다. 금년의 일정은 네팔 척수센터의 준공식을 위해 가는 일정이지만 시간을 쪼개서 그 내외를 만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절을 하였다.

다시 같은 여정으로 산 넘고 물 건너 산위의 집을 가는 길에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기대와 염려가 공존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여전히 자상한 남편과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지신 어머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마치 친 가족을 만나듯 서로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밝은 표정의 부인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이전보다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찬우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가니 아담한 집 한 채가 완성이 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환한 미소로 부인이 반겨 주었다. 1년 전에 느꼈던 불안함과 근심은 간대 없이 하얀 치아를 들어내며 천사 같은 얼굴을 보니 그때서야 내 마음이 안도가 되었다. 마치 큰 짐을 덜어 놓는 것 같은...

그간의 안부와 건강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신 밝은 모습을 보니 동병상련의 같은 마음은 국경과 성별과 상황도 큰 문제가 아닌 듯 했다. 동료상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체험했다. 1년 전에 약속한 부인이 직접 준비한 짜이는 마실 수 없었지만(가스가 설치가 안 되었다고 한다) 마신 것 이상의 대접을 받은 마음이다.

네팔 어머님은 연신 싱글벙글하시며 대접을 해주고 싶어서 물도 가져다주고 집주위의 과일나무에서 열매도 따오곤 하셨다. 마치 필자의 친어머님을 보는 듯 마음이 흐뭇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이별을 해야 하지만 1년 전의 애잔함은 없었다. 이제는 편하게 기쁜 이별을 할 수가 있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척수장애를 가진 애틋한 마음으로 그 내외와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런 것이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성과가 아닐까 싶다.

세계의 척수장애인은 모두 하나이고 그 척수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연대하고 교류하기를 희망한다.

부인의 시어머니이신 인자하신 할머님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이찬우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