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을 발의하는 목적은 청각장애인들이 선거방송 등에 접근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를 개선하여 참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방송토론과 관련하여 청각장애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청각장애인들의 주된 불만은 수화언어통역(이하 수어통역)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애인정보문화누리(이하 장애누리)가 선거 기간 동안 활동을 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진정과 피켓시위, 선거관리위원회 앞 항의집회, 홍보활동 등을 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보고 당시 대선후보로 출마한 심상정 후보가 페이스북을 통하여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사실 심상정 후보의 이와 같은 모습은 우연이 아니다. 2012년 치러진 18대 대선 과정에서 예비후보로 출마를 했던 당시 심상정 예비후보가 장애누리 등 단체의 요구를 받아 대선공약으로 다른 후보보다 가장 먼저 수화언어법 제정 공약을 약속한바 있다.

이러한 약속을 이어 받아 당시 같은 당 국회의원이었던 정진후 의원이 2013년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안”이 발의하였고, “한국수화언어법”을 만드는데 국회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노회찬 의원이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이다.

2013년 장애인정보문화누리가 추진한 수화언어법 제정 국회 청원 서명운동에 당시 정의당 정진후의원이 서명판에 서명을 하고 있다.ⓒ김철환

발의하는 선거법 개정안의 내용은 선거과정에 후보자를 비롯한 정당의 방송광고, 방송연설, 토론 등에서 수어통역 또는 폐쇄자막(이하 자막)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방송에서 후보자나 정당의 정책토론의 경우 수어통역 화면의 창을 1/6으로 키우고 한 화면에 2명 이상의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선거방송에서 자막과 수어통역 제공은 임의(任意) 사항이다. 그러다보니 지상파방송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채널에서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 수어통역은 대부분 제공하고 있지만 일부 방송사는 자신들의 사정을 들어 제공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 제공방식도 문제가 있다. 얼마 전에 치러졌던 19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방송토론들이 진행되었다. 방송토론마다 후보자와 사회자 총 6명이 출연했는데, 1명의 수어통역사가 2시간 내내 통역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토론을 시청한 청각장애인들이 어느 후보가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는 불만들이 많았다. 더욱이 수어통역 창도 작아 내용 분간은 더욱 어려웠다고 한다.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2004년 4월 실시된 17대 국회위원선거 때 방송에서 수어통역을 모니터링 한 적이 있었다. 모니터링 결과 전국 181개 지역 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서 주관한 대담과 토론회 289회 가운데 25%가 수어통역이 없었다.

당시 청각장애인들이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 내용을 조사한 후 국회의장과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선거법의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청각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하여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나 선거관리 위원회는 법률 개정을 추진하지 않았다.

19대 대선 당시 방송토론회를 주최한 한 지상파방송사를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소속 회원들이 항의하며 진입하다 방송국 앞을 지키던 경찰과 마찰을 빚고 있다.ⓒ김철환

2006년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헌법소원도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 제공을 의무화하는 것에 반대를 하였다. 방송사의 기술적인 문제와 시설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도편성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법 적용대상자가 방송사만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당시 헌법재판소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헌법재판소는 수어통역 이외에도 공보물 등을 통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방송사들이 선거방송 이외 프로그램에 수어통역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어통역을 의무화 할 경우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자유는 물론 방송사업자의 보도·편성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사업자의 시설장비와 기술수준을 고려하여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의 의무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을 기각하였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장애누리가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의 방식 개선을 요구를 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2017년 지금, 청각장애인들이 차별 진정을 했던 2004년이나 소송을 진행했던 2006년과 많이 다르다. 방송은 케이블, 위성 등 다채널 시대를 넘어 인터넷 모바일 등 다매체로 확장이 되었다. 방송 기술 또한 방송과 인터넷이 결합된 형태로 진화하였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소속 회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선거 방송토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김철환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영화나 영상에서 자막에 대한 거부감도 줄었고, 수화통역 화면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다. 그리고 차별받던 언어인 수어가 독자적인 언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장애인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확대되고 있으며, 장애인들도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방송에서 선거관련 문제는 일반 방송과 다르다. 이미지 정치가 강조되면서 선거과정에서 방송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방송에서 보이는 출마자의 말과 행동이 유권자의 마음을 표심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거관리위원회나 방송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선거방송과 일반 방송을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 방송이 정착이 되고 있는 지금 수어통역의 질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누가 어떤 말을 했고, 말을 하는 뉘앙스는 어떤지, 후보자의 공약이나 가치관은 어떤지 등을 청각장애인들이 자세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토론 등에 출연하는 사람 수에 비례하여 수어통역사도 한 화면에 여러 명 배치하여야 한다.

이러한 조치야말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진정한 참정권(헌법 제24조)의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청각장애인들이 국민으로서 권리행사를 통하여 행복추구권을 올바로 행사(헌법 제10조)할 수 있으며, 대한민국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목소리가 실현(헌법 제1조제2항)될 수 있다.

따라서 방송사의 사정을 우선에 두는 것보다는 청각장애인의 알권리와 참여권을 먼저 살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물론 국회도 선거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또한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청각장애인 유권자들이 공정하고 바른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회찬 의원이 발의하는 선거법 개정안은 침해받는 청각장애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더 나아가 수화언어법 제정 등 청각장애인의 권익을 위하여 움직였던 정의당 소속 의원들의 활동의 연장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수어가 대한민국의 언어로 자리를 잡는데 역할을 한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것과 같이 선거법도 개정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정보접근권을 비롯한 참정권 등 국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기본권들이 청각장애인들에게도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