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오전 제주를 가기 위해 공항에 모인 발달장애인 가족들. ⓒ서인환

발달장애인 중 자폐성 장애인들은 비행기 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다. 폐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비행기를 탈 수 없듯이 발달장애인도 비행기를 탑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려고 하고,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을 꼬집는다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마구 기내를 돌아다니는 등 비행기의 환경에 적응을 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자폐성 장애인이 탄 비행기가 난동으로 간주하여 회항한 적도 있다. 탑승 매뉴얼에는 모두의 안전을 위하여 이러한 행동이 과하면 결박하여 경찰에 인계하거나 회향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은 비행기 타기가 어렵고, 장애인을 돌보아야 하기에 집에 장애인 혼자 두고 여행을 가기란 있을 수 없어 결국 가족 모두에게 가족여행을 갈 권리가 실현되기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발달장애인 지현이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지현이의 애칭이 효니다. 발달장애인 여행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효니 프로젝트팀'이 구성되었고, 이러한 내용을 만화가 장차현실은 시리즈로 만화작품을 그려나갔다. 만화가 현실로 실현된 것이 5월 30일 2박 3일의 '효니 프로젝트' 제주 여행이다.

이번 제주 여행을 위한 '효니 프로젝트'는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동작구지회장 김종옥씨가 총 책임을 맡았으며, 종로구지회장 김수정, 부모회 부대표인 조미영씨 등 8명이 프로젝트팀을 구성하였다. 한 가족도 여행이 어려운데 224명(장애 가족 184명, 자원봉사자 40명)의 단체여행을 준비하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우리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단체시위였다. 그리고 승객들이 조금만 참아주면 우리도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캠페인행사이기도 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서울시는 아시아나 항공사에 특별 전세기를 준비하도록 교섭해 주었고, 박원순 시장은 장애인들과 같은 비행기로 출발하여 1일 봉사활동을 했다. 아시아나 항공은 특별 태스크 포스를 조직했다.

전세기라고는 하지만 과연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엄마들은 비행기가 뜨지 못할 가능성에 각오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돌발행동으로 기내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면 여행은 취소될 수 있는 것이었다.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기도하는 마음은 준비 기간 두 달 동안 늘 조마조마하였다.

아시아나 항공사에서는 전세기에 남자 승무원 수를 늘려 장애인들을 돕는 등 만전을 기했다. 몸부림치거나 돌아다니는 발달장애인들을 보호자와 승무원, 자원봉사자들이 진정시키며 한 동안 소란스럽더니 자리가 정돈되자, 발달장애인 가족 184명을 태운 비행기가 힘차게 땅을 박차고 창공을 가르며 떴다.

모두 ‘우와!’ 하는 함성을 질렀다. 설마 했던 꿈이 현실이 되는 것에 함성이 저절로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사회적 차별과 그 동안의 힘들었던 기억이 사라지고, 이런 날도 오는구나! 감탄을 연발하였다.

김종옥씨는 소란스러움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거, 맘껏 들떠도, 기분이 안 좋아서 맘껏 소리 지르고 몸을 앞뒤로 마구 흔들어도 평온할 수 있다는 거, 그런 기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의 행동이 비정상이 아니라 일상의 평화로움임을 알았다.

발달장애인의 전세기 여행,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탄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특별한 여행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서울시장이 동승하고, 제주지사가 마중을 나와서인지,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발달장애인들이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하기에 인사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지만 내빈들은 불만이 전혀 없었다.

제주여행 첫날 저녁 서귀포 예술극장, 그곳은 꿈의 장소였다. 작은 극장인데 태풍에 지붕이 날아갔다는 그곳은, 그래서 사방 벽만 남았다는 그곳은 하늘이 뚫려있는 아름답고 커다란 상자 같았다. 그 속에 제주의 보석 같은 연주가와 공연인들이 선물해준 음악과 춤과 마임이 장애인가족들은 행복하게 해 주었다. 억만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무료공연이었다. 환호의 도가니, 자유와 해방은 장애인 가족에게는 희열이었다. 보랏빛 물빛 조명 속에서 손뼉치고 펄쩍펄쩍 뛰고 소리 지르면서 속이 후련하게 놀았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이런 기쁨을 누렸어야 할 부모들은 고개 숙이고 놀라고 울어야 했던 그 마음을 이제는 여느 아이와 같은 기쁨이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서귀포 예술극장에서의 무료 공연. ⓒ서인환

제주의 바다와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창가에서 잠든 첫날밤, 하얀 침대 속에서 장애인 가족들은 무슨 꿈을 꿨을까? 새벽에 일어나 앉으니, 출발 때의 긴장과 어젯밤의 흥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여행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고마움이 밀려왔다. 어제 밤 힐링의 도가니 속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들은 돌아가며 강강술래를 하듯 부채질을 해주며 모두의 엄마가 되어 주었던 감동적인 모습도 떠올랐다. 도움을 주신 기업인들(특히 폭스바겐 판매사인 마이터스모터스는 후원금과 직원의 자원봉사로 큰 힘을 보태었음), 서울시, 항공사, 제주의 자원봉사자 모두가 파노라마처럼 부드러운 얼굴들이 지나갔다.

숙소 창문 너머로 안개가 낀 바다가 보였다. 또 다른 방 창문 너머로는 멀리 구름 속의 한라산이 보였다. 그러니까 바다 옆에서, 산 옆에서 잠을 잔 것이다. 여전히 누구의 집 아들은 새벽 2시에 발을 구르고 누구의 집 딸은 새벽 4시에 깨서 울었다. 선잠을 잔 엄마들은 아침에 부스스해진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일부러 찾아와주신 솜씨 좋은 숲 해설가들이 절물휴양림에서 숲속 놀이를 도와주었다. 절에 물이 있어서 절물이란다. 무심히 툭 던져놓은 이름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별나지 않아도 예쁘니 참 좋았다. 아이들은 잰 척하지 않는 고운 이름의 아름다운 숲속에서 다람쥐들마냥 들어가 놀았다.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어디론가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장애인부모들은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발달장애 가족으로서는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여의치 않았었다. 요란한 시설물 없는 한적한 바닷가 숲속의 밥집에서 맛집 찾는 식객이 되어 보았다.

오후엔 함덕 해수욕장에서 놀았다. 한나절 절반은 숲에서, 또 절반은 바다에서 논 것이다. 휠체어를 번쩍 들어서 내려놓고 발목에 시원하고 푸른 바닷물을 부어주었다. 한 아이가 환하게 웃자 온 바닷가가 다 웃었다.

바다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어떤 엄마들은 근사한 카페에 삼삼오오 들어가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모래밭에서 비눗방울 놀이도 했다. 저 멀리서 해녀들이 물에 들어갔다. 이제 곧 아이들에게 헤엄쳐 오겠지만 부모들은 깜짝 놀라려고 짐짓 모른 체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해녀들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나타났다. 진짜로 저 멀리서부터 물질을 해서 미역과 소라와 성게와 문어를 망태에 한 가득 잡아 나타났다. 물컹한 문어를 만져보는 아이의 짜릿한 표정을 보니, 엄마들의 마음도 뭔가 질기고 탱탱하고 물컹한 무엇에 닿았다.

휠체어가 바다에 빠져도 아깝지 않은 즐거운 웃음바다. ⓒ서인환

저녁에는 자유시간이었다. 올레시장과 이중섭 거리로 마실을 나가는 가족들의 얼굴이 편안하다. 오는 시선, 가는 시선이 모두 편안해서 맘 편한 이틀째의 밤을 맞았다.

다음날, 두 번째의 호텔 아침을 먹으면서 눈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이랑 섞여서 긴 줄을 서고 아침을 먹었다. 흘깃거리거나 수군거리는 이들이 없어서 아침밥이 술술 넘어갔다.

오늘은 일정이 짧아서 아쉬운 마지막 날이다. 천지연 폭포에 갔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야했다. 고마운 분들 이름 수백 개를 빼꼭히 채운 우리의 아름다운 현수막을 쭉 갖고 다니면서도 자주 펴지 못했는데, 오늘도 역시 현수막 뒤에 모두가 들어가지 못했다. 천지연 폭포의 푸른 물빛도 오래 감상하지 못하고, 아이스크림도 시간 없어 못 먹어서 속상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이 고요했다. 짧은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언젠가 다시 제주에 올 수 있겠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맘 편히 비행기를 타고, 배려와 격려를 받으며 여행을 할 수 있겠지만, 순간순간이 가족과 함께 하는 의미 있는 시도였고 힘겨운 도전이었던 이런 여행을 다시 함께 하지는 못하겠지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서울행 비행기에서 동그란 창문 밖으로 푸른 제주가 멀어져갔다. 뭐라고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은데 한참 생각하다 놓쳤다. 마음이란, 망설이다가 전하는 것을 놓치기 일쑤다. 장애인 가족들은 세상을 설득하려고 전세기를 탔었다. 거칠고 서툴렀지만 공들여 준비했던 여행이 이제 끝났다. 아름다운 설득이라고 이름붙인 ‘효니 프로젝트’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기를 바랐고, 모든 참가자와 도와주신 분들 덕에 얼마간 그 소망을 이룬 것도 같았다. 장애인 가족들은 제주바람에 흔들리는 종처럼 세상을 계속 울리고 있을 것이다.

방송 다큐팀에서는 혹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 있는 7인 발달장애인을 정해 놓고 집중 취재를 했으나 그들의 꿈만 건졌지 문제는 건지지 못했다. 특장차 버스 6대, 효니 프로젝트는 김수정 종로지회장님과 김종옥 동작지회장님의 고생이 컸다.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지 못하고 식탁을 치거나, 공연 중에 드러눕거나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해 점검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거나 공연시간에도 공연장을 마구 돌아다녀야 하는 발달장애인들의 이야기보다 부모회 카톡방에는 여행 후 20년 만에 부부가 여행을 갔다거나, 장애자녀와 처음 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감사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

* 이 글은 김종옥씨의 일지를 토대로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천지연에서 마지막 행사를 즐기는 발달장애인 여행가족들. ⓒ서인환

장차현실의 만화 작품 '비행기를 타요' 중에서. ⓒ서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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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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