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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생애 처음 내 손으로 한 끼 식사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28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6-07 16:41:42
‘진석 씨도 남은 힘으로, 자기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밥을 먹여주는 것보다 지저분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력도 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밥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포기할 수 없다.’ 이런 바람으로 훈련에 가까운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박진석 씨는 뇌성마비를 앓았습니다. 양손이 불편해서 식사 때마다 도움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과 살 때도, 특수학교를 다닐 때도, 학교 졸업 후 시설에 살면서 줄곧 그랬습니다.

월평빌라 입주 당시, 진석 씨의 투지는 대단했습니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어 휠체어를 움직였고, 입으로 자판을 두드려 글을 썼습니다. 무엇이든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가 컸습니다. 그래서 입주 한 달쯤 되었을 때, 진석 씨의 남은 힘으로, 자기 손으로 밥을 먹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진석 씨는 양손 모두 불편합니다. 숟가락을 움켜쥐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첫날은 오른손으로, 또 왼손으로 먹어봤습니다. 직원이 진석 씨의 손과 팔을 잡아 고정했지만, 밥알과 반찬과 국물이 사방으로 튀며 식탁과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무모했습니다. 위로라면, 두 번 시도 만에 숟가락을 움켜잡았다는 것과 오른팔이 더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걸 알았다는 겁니다.

남은 힘으로, 자기 힘으로 밥을 먹는다는 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사자의 의지와 노력은 물론 직원의 의지와 노력도 필요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건 아닌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할 수 있는 만큼 하게 하자 했지만,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진석 씨와 밥을 먹기 전에 기도한다. 내 뜻으로 인해 그가 불편하지 않기를, 너무 힘들고 지쳐 스스로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박진석 씨도 임우석 선생도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일주일 뒤에 다시 시도했습니다. 의료기 상사에 알아봐서 손목보호대를 구입했습니다. 손목보호대는 손목이 마음대로 꺾이는 것을 얼마쯤 고정했습니다. 의료기 상사 사장님이 진석 씨 사정을 듣고, 연습하라며 휠체어에 부착하는 식탁을 빌려주었습니다. 뭔가 갖추었으니 나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손목에 손목보호대를 끼고, 보호대 사이로 숟가락을 넣어 손으로 쥐었습니다. 직원은 진석 씨 손과 팔 대신 밥그릇을 잡아 고정하고, 진석 씨가 숟가락으로 밥을 펐습니다. 한 번 두 번…, 인상이 굳어지고 일그러지더니 급기야 짜증을 냈습니다. 이번에도 식탁과 바닥은 밥알과 김치와 국물로 엉망이었습니다. 직원도 짜증이 일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해 봐요. 할 수 있어요.’ 하며 격려했습니다.

직원이 떠서 먹여주면 10분 만에 끝날 식사가 1시간 30분 걸렸습니다. 스무 번 시도했고 겨우 두 숟가락 먹었습니다.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기보다 입을 가져다 손에 맞추는 격이었습니다. 어쩌다 입에 맞았다고 할까.

‘1시간 30분 동안 식사, 스무 번에 겨우 두 숟가락, 어쩌다 밥이 입에 들어간 것’, 숨 쉬듯 밥 먹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석 씨와 임우석 선생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삼십 년 평생에 처음으로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자기 손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두 숟가락이나!

‘큰 바람은 없고, 그저 지 손으로 밥만 먹었으면 좋겠어요.’ 언제 한탄처럼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바람이 생각나서 전화했습니다. 서른한 살 아들은 드디어 자기 손으로 밥을 먹었다며 자랑했고, 예순 넘은 어머니는 목이 메었습니다. 수만 번 넘어진 끝에 첫발 떼는 아이처럼 엄마처럼.

양손 양팔이 불편한 진석 씨에게 도움이 될 만한 보조기를 알아보고 장만했습니다.

손목보호대를 착용하고 숟가락을 그 사이로 집어넣어 손에 쥐었습니다. 숟가락 잡은 손을 붕대로 감아 고정하기도 했습니다. 숟가락 손잡이가 불룩하면 잡기 좋고, 숟가락 바닥이 깊으면 담기 좋습니다. 숟가락 손잡이와 바닥을 나란히 해서, 조금 구부려서, 90도에 가깝게 꺾어서… 여러 모양으로 조절해 봤습니다. 포크를 겸하는 숟가락은 반찬을 집기 좋은 반면 입술이나 입천장, 혀를 다칠 수 있습니다. 목구멍 가까이에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팔꿈치 각도 조절기’는 진석 씨의 식사를 단번에 한 단계 높였습니다. 팔꿈치 각도를 조정하여 고정시켰더니 진석 씨의 팔이 휘둘리지 않았고,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이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30도, 60도, 90도… 여러 각도로 해 봤습니다.

휠체어에 부착한 식판에는 홈을 파서 밥그릇과 국그릇을 고정했습니다. 나중에는 식판에 스텐 그릇을 부착해서 밥그릇과 국그릇을 담는 틀로 사용했습니다.

의료기 상사 사장님, 의료기 제조업체, 시설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시설 동료, 병원 의사와 물리치료사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했습니다. 월평빌라 웹페이지의 진석 씨 식사 기록을 읽고 서울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경험을 나누고 정보를 주었습니다.

보조기를 알아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부탁할 때, 보조기를 사용할 때, 무엇이든 진석 씨가 알아보고 부탁하고 선택하고 사용하게 했습니다. 진석 씨는 발로 ‘트랙볼마우스’를 조종하고 입으로 ‘빅키키보드’를 두드려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그러니 진석 씨가 알아보도록 지원했습니다. 시설 직원이든 보조기 업체 직원이든,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의논하고 부탁하든 진석 씨를 앞세웠습니다. 진석 씨 삶이고 진석 씨 식사이니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식판을 직접 만들까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시중 제품은 비싸고, 시중 제품을 본뜨면 쉽게 만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신중하고 삼갔습니다. 시설 직원이 만들 수 있다면 지역사회 누군가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시설 사회사업가가 하는 일은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돕는 일이니, 보조기를 구실로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어울리고 돕고 나누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설 직원이 직접 만들면, 식판을 구실로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어울리고 더불어 사는 기회를 빼앗게 됩니다.

시설에서 시설 직원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지만, 신중했고 삼갔습니다. 진석 씨가 도울 분을 찾고 직접 부탁드리게 주선했습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의논하고 궁리해서 이루었습니다.

목공소를 소개받고 찾아가 의논했더니 비용이 너무 비쌌습니다. 의료기 상사에서 빌렸던 아크릴 식판을 사서 변형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단골 자전거 가게 사장님이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듣고 진석 씨와 찾아갔습니다. 사장님은 사정을 듣더니 흔쾌히 만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식판 만드는 김에 책꽂이도 만들었습니다. 재료비만 받고 도와주셨습니다.

식판 하나 만드는 것 갖고 무슨 야단이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치를 허무는 함정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보조기 갖추며 순항할 때,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직원(들)과 이웃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보조기를 갖추고 요령이 생기면서 많이 발전했다지만 여전히 여러 번 시도 끝에 한 숟가락 먹고, 한 숟가락 먹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밥알은 날아다녔고 국물은 흐르기 일쑤였습니다. 진석 씨는 진석 씨대로 애가 타고 짜증이 났고, 직원은 직원대로 애가 타고 속상할 때가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받은 스트레스는 이웃과 불화로 이어졌고, 진석 씨와 직원들 사이에, 진석 씨 전담 직원과 동료 직원들 사이에도 미묘한 감정이 생겼습니다.

그렇잖아도 이런저런 말을 듣던 차에, 식당에 흩어진 밥알과 진석 씨의 짜증으로 두 손 든 동료 직원의 모습을 본 임우석 선생님은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하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힘든 일을 매일 하니, 그것도 먹는 것을 앞에 두고 실랑이하듯 하니 어떻겠습니까. 이대로 뒀다가는 식사는 물론이고 생활이 엉망이 되겠다 싶어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목표를 낮추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먹는 식사도 좋지만 우선은 식사다운 식사를 궁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흉하지 않게, 품위 있게 하자고 했습니다. 식탁과 바닥에 떨어지는 밥과 반찬, 국물은 즉시 닦고, 침이나 국물이 입가에 묻으면 즉시 닦았습니다. 식판도 수시로 닦았습니다. 진석 씨가 자기 손으로 어느 정도 먹으면, 식탁을 깨끗이 정리한 다음, 따뜻한 밥과 국을 다시 차려 제대로 식사하게 도왔습니다. 식사라는 걸 명심했습니다.

그 날 그 끼니의 상황을 살펴서 대처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은 라면을 끓여서 먹고, 어느 끼니는 처음부터 직원이 떠서 먹여드렸습니다. 진석 씨가 편안하고 하겠다는 하는 날에 집중했습니다.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2010년 3월 20일, 드디어 기대하던 순간을 맞았습니다. 그날은 직원 수가 부족했는지 임우석 선생이 다른 분의 식사까지 돕느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보조기와 식판을 갖추고 진석 씨 혼자 식사해 보시라 부탁하고, 떠서 먹여드려야 하는 분을 도왔습니다. 진석 씨 식사를 잊고 있다가 돌아보니 떡볶이 국물과 밥알로 식탁과 바닥이 엉망이었습니다. 얼마나 드셨는가 하고 밥그릇을 보니 깨끗이 비었습니다.

“다 드신 거예요?”
“네.”

직원이 경황없는 바람에 진석 씨가 30년 생애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한 끼 식사를 마쳤습니다. 너무 아프면 웃음이 나고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는데, 지금이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게 어제오늘 일이야.’ 하듯 태연하고 무덤덤합니다. ‘다 드신 거예요? 네.’ 기적 같은 이 순간에 말이죠. 좌충우돌하며 오래 기다렸습니다. 네 달 보름 만입니다. 그 인내와 수고와 열정이 고맙습니다.

그 후, 1년쯤 드문드문하다가 멈췄습니다. 지금은 시를 쓰고, 보치아 동아리 활동과 대회에 힘쓰느라 식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 박진석 씨를 지원하는 월평빌라 임우석 선생의 글을 엮었습니다. 월평빌라 웹페이지에서 관련 일지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식사, 박진석 (관련 일지 모음 2009.11.14~2011.1.18)”
http://cafe.daum.net/ilove392766/bbXR/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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