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재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주 간단한 자기소개다. 이 사소한 말에 유달리 감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이다. 이 말을 입으로 한 것이 아니라 수화로 했기 때문이다. 수화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수화라고 할 줄 아는 것은 인사말, 지화 뿐이다. 그럼에도 농인을 만나면 수화로 인사하곤 한다.

수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그저 청각장애인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가르쳐 달라고 해서 배웠다. 배운 걸 응용할 때마다 기뻐하던 친구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외국어처럼 수화 역시 자주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잊지 않기 위해, 청각장애인과 수화통역사를 만날 때마다 사용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금세 친구가 되곤 한다.

지난해 27만 명 농인의 염원을 담아 한국수화언어법이 국회를 통해 제정됐다. 법이 제정되기 이전엔 지상파 뉴스를 중심으로 볼 수 있었던 수화통역이 법 시행 이 후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접할 수 있게 됐다. 아직 미비하고 그 변화가 선명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법이 제정되고 나서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

한국수화언어법의 법률을 검토하면서, 문득 ‘수화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가져봤다. 수화는 ‘농인만이 필요한 것일까? 단순히 농인에게 필요한 정보만 일방적으로 제공하면 그 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는 언어다. 언어는 인간관계에서 소통하는 데 필요한 도구다. 즉,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전달받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수화는 농인들만의 특별한 문화가 아니다. 비장애인도 수화를 배워야 한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사람은 영어로 한국 사람은 한국어로 각자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과 같다.

몇 해 전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년 2시간씩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수화도 마찬가지로 년 몇 시간을 정하여 의무교육을 실시했으면 한다. 교육을 통해 보다 많은 비장애인 학생들이 수화를 배우고 자유롭게 농인들과 대화한다면 농인에 대한 편견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수화언어법은 농인만을 위한 서비스 법에 그쳐선 안 된다. 농인에게는 인권과 권익향상을 위한 인권법의 역할과 비장애인에게는 차별금지와 인식개선의 계기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소통과 통합을 강조했다. 모든 국민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소통하겠다는 말엔 농인도 포함된다. 그런 취지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통령의 브리핑 시간에 수화로 발표하는 대통령을 만나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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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칼럼리스트 법학을 전공하고 법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관련해 10여 가지의 법들이 존재합니다. 법은 존재하지만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알면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모르면 두려움의 대상이 바로 법입니다. 법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을 장애인 문제와 함께 풀어나갈 수 있도록 쉬운 칼럼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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