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 강당 입구 근처에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강연회 전단이 붙여진 모습 ⓒ이원무

2년 8개월 전 UN장애인권리위원회 국가보고서 심의 당시 필자는 짧은 경험과 지식으로나마 한국 발달장애인 현실을 위원들에게 직접 또는 이메일이나 연대를 통해 이야기했다. 얘기한 것 중 가족지원서비스, 정보접근권 등은 최종권고에 들어갔다.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들 나름대로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위원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

하지만 작년 6월, 미국 뉴욕에서의 제9차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때 뉴질랜드 출신의 지적장애인 로버트 마틴 후보가 권리위원회 신임위원 9명 중 대표로 당선되었다. 이 소식에 필자는 상당히 기뻤다.

차후 국가보고서 심의 시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잘 이해하는 위원에게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얘기하면 발달장애인에게 이전보다 더욱 좋은 최종권고가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그랬다. 또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국제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권익신장활동을 하게 되는 자체야말로 기쁨을 주기 충분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나 지난 주 수요일인 17일, 장애인권리위원회 로버트 마틴 위원이 피플퍼스트 뉴질랜드의 조디 터너 자문위원, 자넷 도티 기금조성매니저와 함께 한국을 방문,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강연회를 했다.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이 강연회를 주관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로버트 마틴 위원과 조디 터너 자문위원 등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이야기한 것 중 필자가 강하게 느꼈던 것들을 중심으로 나누고 싶다.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강연회 전경 ⓒ이원무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강연회 시작 전 환영사 및 축사하는 사람들의 모습. 좌측부터 김상희 국회의원, 한국피플퍼스트 김정훈 전국위원장,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김형식 위원, 오제세 국회의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회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 ⓒ이원무

먼저 로버트 마틴 위원의 의견부터 보면, 그는 시설 폐쇄가 중요함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했다. 그는 청소년, 성인까지 총 1500명이 수용된 시설에 살았고 그 곳에서는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없이 강요되면서도 당연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15살이 되던 어느 날, 농장에서 오전 5시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문하며 부당한 노동 강요를 거부, 파업을 주도했다 한다. 불평하지 말라는 관리자 말에 ‘오늘은 일하지 않겠다. 대화로 풀자’고 말하며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지나 뉴질랜드에서는 작년 모든 시설이 폐쇄되었음을 말하며, 발달장애인도 자유를 얻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고 힘주어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일부 발달장애인에게 있는 폭력적인 것을 가지고 발달장애인을 시설에 가두어야 한다는 논리가 있으며 정부는 실제 시설수용 정책을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선택권 없이 시설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

또한 직원들 말을 듣지 않거나 지시대로 따르지 않으면 발달장애인들은 두들겨 맞으며 폭력대상으로 전락한다. 실제로 시설에서 폭행당하거나 죽어가는 발달장애인 소식을 요즘 계속 접하다 보면 분노가 치민다. 그래서 탈시설에 당연히 공감한다.

피플퍼스트 뉴질랜드의 자넷 도티 기금조성매니저가 질문한 것을 장애인권리위원회 로버트 마틴 위원이 답변하는 모습 ⓒ이원무

하지만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을 만한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현실을 보면 암울하다. 서울시의 장애인전환서비스센터 말고는 탈시설-자립생활 관련 국가차원의 체계·계획이 거의 전무함이 이를 말해준다. 또한 정신적 장애인에게 주거지원서비스는 소외되어 있고, 주거권 관련 정보접근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탈시설과 자립생활의 개념, 자립생활을 위해 준비되어야 할 것 등에 대한 정보를 시설에서는 잘 알려주지 않는다. 시설을 나와서도 이에 대해 알려주는 데는 없다. 그러니 발달장애인이 시설을 나왔다가 다시 시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체계적인 자기옹호 지원체계가 있다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따라서 체계적 자기옹호 체계, 정신적 장애인과 관련해 주거 정보접근성 제고 등의 자립지원체계가 국가차원에서 제대로 세워지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 발달장애인 등의 장애인 당사자들, 지원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피플퍼스트 김정훈 전국위원장이 장애인권리위원회 로버트 마틴 위원과 피플퍼스트의 조디 터너 자문위원과 자넷 도티 기금조성매니저에게 인터뷰하며 청중들의 궁금증을 해결하려 하는 모습 ⓒ이원무

마틴 위원은 또한 발달장애인 자신이 목소리를 내려면 정보를 얻어야 하고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일원이라는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연구소에서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과 장차법을 제작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 느낀 건 발달장애인에게 권리가 ‘그림의 떡’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는 게 쉬운 정보였다는 거다. 쉬운 정보를 얻음으로 발달장애인도 자신의 권리와 의무,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 등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이를 통해 차별을 받을 시 자신의 목소리로 권리를 말하며 정부에 당당하게 요구하고 불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김은 물론 자존감도 높아질 것이라 본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령, 책 등을 쉬운 정보로 바꾸어 제작하는 일에 기회가 된다면 필자도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발달장애인을 지역사회 일원으로 보지 않는 인식이 강하다. 장기적 인식제고를 위해 어려서부터 장애에 대한 생각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나누도록 하는 환경 구축을 국가, 지자체 차원에서 해야 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고립되지 않고 당당한 지역사회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도록 발달장애인 당사자, 정부 등 모두가 함께 노력할 때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알기 쉽고 모두 함께 누리는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 표지(좌측), 알기 쉬운 장애인차별금지법 ‘우리 모두 소중해’ 도서 표지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한국장애인재단, 법무법인 지평

아울러 마틴 위원은 탈시설, 접근성 문제 등에 있어 정부, 장애계 단체와의 강력한 연대가 중요함을 힘주어 말했다. 연대를 통해 발달장애인의 의견이 설득력과 힘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의견은 우리 장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작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장애계는 총선연대를 꾸렸다. 총선연대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장애계 단체들과의 협력보다는 개개인의 역량으로 가려 했다. 또한 19대 국회의원들은 진정으로 장애인의 삶이 나아지기 위한 지원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입지만 챙기는데 바빴다.

결국 장애계는 분열돼 있었고 이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안정권 장애인 비례대표 전무라는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도 신체장애 중심의 패권주의가 존재함은 물론 정신적 장애인들과 관련단체들과의 연대·협력은 방치되고 있고, 자신의 장애만 중요하다고 말하는 등 아직도 장애계는 분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애계 분열의 현실을 생각하면 탈시설/탈원화-자립생활, 인식제고계획 수립 등의 정신적 장애인들의 요구가 장애계를 통해 힘을 얻어 정부에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전달되리란 만무하다 본다.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해 장애인의 삶이 나아지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각 단체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음은 이해간다. 하지만 분열을 멈추고 장애계와 장애인이 함께 단결하고 연대를 이뤄 정부에게 한 목소리로 공통의 장애관련 이슈를 효과적이고 강하게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장애계, 장애인, 가족, 전문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본다.

한국장애학회 2017년 춘계 학술대회 ‘연대와 갈등 사이: 한국장애인운동사’에서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의 조력자, 그리고 정부’라는 주제로 토론하는 토론자들과 좌장 조한진 교수의 모습 ⓒ이원무

로버트 마틴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과 함께 우리나라에 온 피플퍼스트 뉴질랜드의 조디 터너 자문위원은 뉴질랜드 장애인들이 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받는지 여부를 모니터하는 권리협약 연대 구성원 중 하나가 피플퍼스트 뉴질랜드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필자는 권리협약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 전반에 관해서 포괄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데가 없다. 정부의 경우 내부적으로 권리협약 이행계획 등을 부처 내에 세우고 있는지는 몰라도, 장애인 당사자, 시민단체나 장애계 단체 등 외부로 이행상황, 이행계획 등을 공개·공유한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권리협약 이행상황 등을 외부로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단체 등의 NGO단체들도 거의 없다.

그런 현실과 뉴질랜드의 상황을 비교해보니 우리나라의 권리협약 이행은 멀고도 요원하다는 느낌에 씁쓸했다. 특히 발달장애인 가족지원의 경우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최종권고와 관련, 정부에게 저소득 중증장애인 가정에 한정된 지원, 불충분한 지원서비스 양 등의 우려점들을 전달했으나, 정부는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모든 권리협약 최종권고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로드맵과 세부계획을 마련하고, 인권위가 협약 모니터링 실시를 위한 구체적 안을 내놓으며, 이런 모든 과정들에 장애인과 장애계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권리협약에 대한 구체적 이행계획 마련 및 모니터링 등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장애인 당사자, 정부, 인권위, 장애계 등이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

피플퍼스트의 조디 터너 자문위원이 강연회에서 발표하는 모습(좌측), 조디 터너 자문위원이 발표한 것 중 지적장애인에게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는 프리젠테이션 화면(우측) ⓒ이원무

이외에도 조디 터너 자문위원은 피플퍼스트가 ‘뉴질랜드 정부의 장애실천계획’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도 남겼다.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인정책형성에 참여한다는 의미라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뉴질랜드의 현실이 상당히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당사자 관점에서 분석한 적이 있었다. 장애유형과 장애인 개인에 따른 욕구 등의 고려 없이 제공자 중심의 장애인정책을 세워 실행하고 있음을 필자는 분석과정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세울 초기 시점부터 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된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장애인정책을 세울 초기 시점부터 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하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식으로 내년부터 시행될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세워져야 함을 말하고 싶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표지 ⓒ보건복지부

정리해보면 탈시설-자립생활 체계 수립, 쉬운 정보 제공 및 지역사회에서의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제고 노력, 장애계 단합, 권리협약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장애인정책형성과정 참여 등이 어우러질 때 발달장애인 권리옹호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필자는 이번 강연회를 통해 배우고 느꼈다.

발달장애인 조력자로써 우리나라를 찾은 피플퍼스트 뉴질랜드의 자넷 도티 기금조성매니저도 발달장애인의 권리옹호를 위해 지원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원자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나누도록 하겠다.

2주 전 발달장애인 당사자 단체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가 개소식을 하는 모습 ⓒ이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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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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