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하루하루가 새롭고 한 해 한 해가 다른 것도 많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이 오듯 매년 일정한 시기마다 반복 되는 정형화된 일들도 많이 있다.

4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여러 행사들이 진행된다거나, 10월 직업재활의 날을 앞두고 정부 인사들이 직업재활시설을 많이 방문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런 예이다.

장애인들에게 이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가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이다. 늘 이 무렵이 되면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계획'이 공지되고 신청접수와 순회전시가 진행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5월 8일부터 6월 23일까지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의 신청접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사업 또한 가만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점들과 문제점들이 있다. 오늘은 이러한 점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볼까 한다.

첫째, 지원규모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앞에서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 신청을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라고 적었는데, 그만큼 선정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특히, 고가의 보조기기는 어지간한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선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지원 받을 가능성이 낮은 듯하다.

그러다보니 매년 반복적으로 신청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기기별 지원대수가 사전에 공개되지 않는다.

'2017년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계획'에는 "지역별, 기기별 보급 수량은 신청수요, 보조기기 가격, 장애유형별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함에 따라, 고가 정보통신 보조기기의 경우 신청자가 많아 보급이 제한될 수 있음"이라 명시되어 있다.

엄밀히 말해 어떠한 기준으로 지원 기기수량이 선정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신청접수를 받아 보기 이전부터 이미 고가 장비는 신청자가 많아서 제한될 수 있다는 이야기 먼저 하고 시작한다.

대단히 뛰어난 예지력을 가지고 있어서 고가장비 접수가 많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이런 문구를 넣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예산이 부족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원해 주기 위해 고가장비는 지원수량이 적을 수 있다고 하면 괜한 불만은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보급수량 결정과 관련된 지침은 어떻게 되어 있나 싶어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 운영 관리지침'을 찾아보았다. 지침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23조(보급제품별 보급수량 결정) 운영기관은 보급사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예산 범위 이내에서 다음의 각 호를 고려하여 보조기기별 보급수량을 결정할 수 있다.

1. 보조기기별 신청 수요

2. 장애유형별 형평성

3. 보조기기별 형평성

4. 기타 운영기관이 보급수량을 결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

물론 4항을 통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모든 기준을 포괄할 수 있겠지만 지원의 시급성이나 효과성 등의 기준을 지침에 명시해 놓는다면 수량 산정에 대한 불만이나 의혹은 좀 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기별 보급수량이 사전에 공지되지 않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물론, 보급기기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신청접수를 받고 난 후 수요가 좀 더 많은 기기 중심으로 보급수량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전에 고가의 기기에 대해서는 수량이 제한될 수 있다는 언급을 하는 상황에서야 이것이 과연 신청자들의 입장을 배려하기 위한 방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정해진 예산범위 내에서 신청자 수를 조절하겠다는 의도는 아닐까 한다. 보급 대수를 미리 정해 놓고 이 수치를 고려해서 사용자들이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청서 작성과 접수처 방문 등으로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하며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사용자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수요측면을 고려하고 싶다면 사전에 정해진 보급수량 이외에 수요가 몰리는 기기에 대하여 일정 비율을 추가선정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순회전시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순회전시회가 진행되는 장소들을 살펴보면 접근성이 좋지 않아 시각장애인 등은 찾아가기 힘든 곳들도 상당히 많다.

순회전시회에 참여하는 업체들을 통해 '어디는 시각장애인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어디는 시각장애인이 2명 왔더라'와 같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2017년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을 통해 보급되는 제품들이 시각장애인용 49개, 지체·뇌병변 장애인용 18개, 청각·언어 장애인용 31개인 점을 고려해 보더라도 시각장애인들이 순회 전시회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전시장의 접근성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셋째, 사업기간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있다. 보급신청이 보통 5월쯤 진행되고 이보다 먼저 당해년도에 보급될 제품들을 등록하는 작업이 3월에 진행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정은 최신의 기기들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한계를 가진다. 국내에 보급되고 있는 정보통신보조기기들의 상당수가 외국 제품들이고 최신 제품들은 대부분 국제 보조공학 박람회인 미국의 CSUN이나 독일의 Sight City에 맞추어 발표되곤 한다.

그런데 CSUN은 보통 2월말~3월중 진행되고 Sight City는 4~5월 중 주로 진행된다. CSUN이나 Sight City에서 발표된 최신 제품들의 딜러십 계약을 체결하고 각종 인증 절차 등을 진행하는데 걸리는 기간을 고려해보면 해당 제품들은 다음해에나 등록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추세임을 고려해 볼 때 보급기기 등록 시점과 보급 신청 기간에 대한 조정도 검토해 볼만하다.

넷째, 그밖에도 소소한 부분들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점들이 있다. 이 사업에서 보급 대상자로 선정되는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재보급기간이다.

각각의 기기별로 재보급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해당 기간이 경과하기 전에는 다시 신청할 수 없다. 그런데 접수 안내문에는 어디에도 재보급 기간이 몇 년인지 나와 있지 않다.

전화로 문의해 보니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사업 웹사이트(http://at4u.or.kr)에 접속해 제품 카탈로그를 다운받아 확인하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물론, 카탈로그는 어김없이 PDF파일이었다. 그냥 신청공고에 이 표 하나 넣어 주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보통신보조기기보급사업 제품 카탈로그의 재보급 기간. ⓒ조봉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모순된 점이 있다. 가령 스크린리더를 보급 받았던 사람이 이 스크린리더가 PDF파일을 제대로 접근하도록 지원하지 못하여서 재보급을 받으려고 한다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은 웹사이트에서 카탈로그 파일을 다운 받더라도 재보급 기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결국은 전화로 상담을 받아야만 한다.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 계획 공고자료에 보면 '정보화를 통해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2017년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계획'이라고 적혀 있다.

이건 무언가 어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정보화 사회이지만 웹사이트를 통해 스스로 검색하는 것 대신 전화로 누군가에게 물어서 알아내라는 이야기가 된다.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계획 공고문 표지 중 일부. ⓒ조봉래

이 사업은 분명 취지도 좋고, 고가의 보조공학기기를 장애인들이 적은 비용으로 지원 받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장애인이 중심에 있지 않은 사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개선을 생각해 보아야 할 사항들이 많은 사업인데 우리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물론 신규기기 등록에 있어 사용자평가를 실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웹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운영관리지침은 2014년 4월 이후 개정된 사항이 없어 보인다.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 운영관리지침 일부. ⓒ조봉래

완전무결한 지침이라 더 이상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하지만 다른 일들이 바빠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라면 매년 이 사업 공고만을 기다리고 어떻게 하면 선정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수십 번 활용계획서를 썼다 고쳤다 하는 신청자들의 입장을 한 번 만이라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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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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