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자 선생님이 쓴 김성영 씨의 구직과 직장생활 기록을 엮었습니다. (시설에서) 장애인의 구직과 직장생활을 지원하는 사람의 발걸음과 마음과 지혜를 봅니다. 이전 기록을 발췌하고 편집했으며, 최희자 선생님에게 물어 보완하고 다듬었습니다.

김성영(가명) 씨는 8년 동안 다섯 곳에 취업했고, 다섯 번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다섯 번 실직했고요. 계란 농장, 세차장, 학습지 사무실, 옷 가게, 미용실, 모두 청소 일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첫 월급을 기대하며 구직 중입니다.

김성영 씨는 입주 당시 학교를 다닌 적 없어 교육청에 문의했더니,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다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나이 서른, 이미 학부모 나이라서 포기하고 직장을 구했습니다.

최희자 선생님은 십수 년 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했습니다. 그때는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다 하겠습니다.’ 했답니다. 월평빌라에 입사하여, 당사자와 둘레 사람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게 중요하다고 배웠고, 그렇게 하기 힘썼습니다.

2009년 9월 1일, 김성영 씨가 입주하면서 최희자 선생님도 입사했으니 월평빌라 동기입니다.

월평빌라 문 열고 9개월, 김성영 씨 입주하고 한 달, 최희자 선생님 입사하고 한 달 지났을 때, 모든 게 서툴고 투박했습니다. 그럼에도 지역사회를 부지런히 다니며 직장을 알아봤습니다. 직장 구하는 당사자 김성영 씨를 앞세워서 말이죠. 여러 곳 다녔고 여러 번 거절당했습니다. 두 사람이 구직의 선구자였고, 뒤를 이어 여러 사람이 지역사회 일반 사업장에 취업했습니다.

2009년 10월 16일. 김성영 씨 취업 사례회의에서 성영 씨가 잘하는 일을 살펴봤다. 지적장애가 있다지만, 설거지 빨래 청소를 곧잘 한다. 목욕탕이나 미장원 같은 곳에서 청소는 할 수 있겠다.

10월 19일. 시장 어느 미장원에 장날 하루만이라도 일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어느 야채 가게에서 야채 다듬는 일이 있는지도 알아봤다. 두 곳 다 자리가 나면 연락하기로 했다.

10월 22일. 어느 횟집을 소개받아서 연락했더니 한번 보자 해서 바로 찾아갔다. 부푼 마음으로 나섰는데 가는 도중에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함께 일할 분들이 반대한단다. 이미 나섰으니 부담 갖지 말고 커피 한잔 주시라 하고, 일단 성영 씨를 선보일 욕심으로 찾아갔다.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 부탁하기 쉬웠다.

식당은 재빠르게 일해야 하는데 염려된다며 거절했다. 손님들 사이에서 주문 받고, 음식을 내고, 쏟아지는 그릇을 설거지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고맙게도, 사장님은 그냥 보내지 않고 계란 줍는 일을 알아보겠다며 그 자리에서 양계장 몇 군데에 연락했다.

돌아오는 길에 낙심치 않고 어느 농원에 들렀다. 남자가 할 일만 있다고 해서 이웃 아저씨에게 소개했다. 취업하기 힘들다는 게 실감난다. 다음 주에는 읍내 패널 공장에 부탁해 보자.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희망을 갖고 알아보자.

10월 26일. 일전에 방문했던 횟집에서 연락이 왔다. 계란농장 한 곳에서 계란 줍는 일이 났다며 찾아가 보라 했다. 곧바로 연락하고 성영 씨와 찾아갔다. 월평빌라에서 가까워 좋다. 사장님이 성영 씨와 직원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면접 합격, 취업했다.

10월 27일, 성영 씨는 삼십 년 만에 얻은 직장, 아란애그로 생애 첫 출근을 했다. 계란에 묻은 오물을 닦는 일이다. 컨베이어 밸트 위로 계란이 끝없이 나왔다. 계란을 집어 수건으로 닦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깨진다. 수건은 몇 개 닦으면 금방 더러워져서 새 것으로 바꿔야 한다. 계란만큼 수건도 많다.

성영 씨에게 어려워 보인다. 계란을 집어 깨끗이 닦고, 계란 판에 잘 놓고, 틈틈이 수건을 빨고…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사장님이 수건을 못 씻는다고 뭐라 했다. 수건을 못 씻으면 계란 몇 판 닦아도 소용없다고 했다.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사장님은 시설 직원이 동행해 달라고 했다. 성영 씨가 일을 잘 못하니 시설 직원이 거들어 달라는 거다. 내가 쉬는 날은 동료가 대신해야 하니 미안하다. 그래도 성영 씨가 안 가겠다 하지 않고 잘 다녀서 고맙다.

11월 1일, 출근 6일째. 주일이지만 출근했다. 바쁠 때는 휴일이 따로 없다. 휴일에도 나와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사장님이 마음을 열었다. 퇴근할 때, 월평빌라까지 태워주었다. 자가용으로 5분, 기회를 놓칠세라 일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성영 씨, 우리 힘들어도 참고 부지런히 배워서 사장님 마음에 들게 노력합시다. 힘내세요.’

11월 13일, 출근 18일째. 성영 씨 일하는 속도가 제법 빨라졌다. 성영 씨와 아란애그로 출근하면 나란히 앉아서 계란을 손질한다. 2시간 동안 성영 씨는 두세 판을 닦고, 나는 여덟아홉 판을 닦는다. 그래서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성영 씨가 이전보다 빨라졌고, 더 깨끗하게 닦는 게 위로고 희망이다. 일을 마치면 수건과 장갑을 깨끗이 빨아서 넌다.

일하다가 문득 생각하니, 내가 계란 농장에 취업했는지 월평빌라에 취업했는지 헷갈린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아침, 사장님이 성영 씨 혼자 해 보라고 했다. 시설 직원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혼자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걸까? 월평빌라 직원에게 아란애그 일을 시키는 게 부담이었을까?

성영 씨 혼자 일하니 속도가 느려졌다. 계란은 계속 나오고 사장님 손이 더 바빠졌다. 가만있을 수 없어 나섰다. 사장님이 고맙다고 하기에, “그냥 있으면 뭐 해요.” 하고 일을 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며 기도한다. 사장님이 마음을 열어 성영 씨 혼자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성영 씨에게 큰 지혜를 주셔서 깨끗하고 신속하게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12월 3일, 일한 지 한 달 되었다. 며칠 전, 이제는 성영 씨 혼자 일하면 어떻겠냐고 사장님에게 말씀드렸다. 머지않아 혼자 출근하는 날이 올 것 같다.

월급을 받았다. 성영 씨와 동행했던 동료가 노란 봉투를 건넸다. 계란 네 판도 받았다. 보너스다. 나는 마치 내 월급인양 봉투의 돈을 꺼내 흔들었다.

월급 15만 원, 어찌 액수로만 따지겠는가? 성영 씨가 자신감을 가진 것이 고맙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시간, 수고 덕분에 가능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곧바로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성영 씨 생애 첫 월급, 귀한 돈을 잘 사용하기 바란다.

12월 15일, 출근 50일째. 며칠 전, 사장님이 성영 씨가 가는 미용실이 어디인지 물었다. 알고 보니 미용실 사장님과 아란애그 사장님이 같은 성당에 다녔다. 사장님은 성당 교우들과 월평빌라에서 봉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목욕 봉사는 목욕탕 갈 때 함께 가는 것이고, 미용 봉사는 미장원 갈 때 같이 가면 되고, 고기를 사서 후원하는 것보다 외식이나 나들이에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미장원 갈 때는 내가 성영 씨와 같이 가야지.” 했다. 내일은 목욕탕 같이 가자며 목욕탕 갈 준비해서 출근하라고 했다. 12월 20일, 사장님 가족 외식에도 초대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직원은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출근한 지 50일 만이다. 수건 빨래하는 게 안 되어 어르고 달래고 칭찬도 하고 다투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는가 보다. 돌아오는 길에 계란 4판을 받았다.

‘사장님, 성영 씨를 가족처럼 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마운 마음과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했다.

12월 24일, 출근 59일째. ‘성영 씨, 월평빌라에 와서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죠? 입주한 지 두 달 만에 계란 농장에 취업했고, 도예교실로 교회로 직장으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네요.’

좋은 사장님을 만났고 사랑을 받았다. 12월 20일, 사장님 가족 외식에 성영 씨와 직원이 초대받아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 사장님에게 성영 씨를 딸처럼 여겨 달라고 부탁했다. 성탄절을 맞아 성영 씨가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 사장님과 사장님 친구 분에게 드렸더니 매우 기뻐했다.

두 번째 월급과 함께 계란 다섯 판을 받았다. 성영 씨는 월급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일하고 받은 월급, 일하지 않으면 누리지 못할 행복을 안다. 월급으로 필요한 것 사고, 남은 돈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겠다.

12월 29일. 한 해를 마감하고 한 해를 맞이하며 바람을 나눴다. 성영 씨의 2010년 바람은 ‘월급 타서 나이트클럽 가기’. ‘월급’을 앞세웠다. 일한 지 두 달 되었다. 제 힘으로 일하고, 월급으로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한다.

2010년 1월 15일, 81일째.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며칠 전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였고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다. 눈길을 걸어서 출근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성영 씨는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큰길 끝 농장 입구에서, “성영 씨, 혼자 가요. 이제는 혼자서 갈 수 있어요.” 하고 보냈다. 멀리서 지켜봤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자가용으로 출퇴근했다. 5분 걸렸다. 한 달 보름부터 걸어서 출퇴근했다. 30분 걸렸다. 며칠 전 부터는 100미터 남겨 두고 혼자 가게 했고, 이제는 300미터 앞에서 혼자 가게 하고 멀리서 농장에 들어서는 걸 보고 돌아온다.

연락 없이 결근하면 전화 달라고 사장님에게 부탁했다. 퇴근도 혼자 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성영 씨와 목욕 같이 간다고 해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얼마 후면 혼자서 출퇴근이 가능하겠지?

1월 29일, 95일째. 근로계약서 쓰려고 팀장님과 함께 갔다.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다. 성영 씨는 아란애그 직원답게 사장님 계신 곳으로 안내했다. 그 동안 농장을 파악한 것 같아 대견했다.

사장님은 흔쾌히 근로계약서를 썼고, 성영 씨도 자필로 서명했다. 첫 출근일로부터 일 년간 직원으로 채용했다. 사장님에게 고맙다고 인사드렸다.

성영 씨가 팀장님과 내가 보는 앞에서 실력을 보여줬다. 계란 닦는 손이 많이 빨라졌다. 사장님도 흡족해했다.

2월 4일, 101일째. 세 번째 월급을 받았다. 계란 아홉 판도 함께 받았다. 종종 사장님이 계란을 주신다. 월급으로 고기를 사 먹고 싶다 했다. 집에서도 고기를 많이 먹는데도 외식하는 게 좋은가 보다. 열심히 일하고 번 돈으로 외식하고 저축도 하니 참 좋다.

2월 12일, 109일째. 월급을 받아 운동화를 샀다. 월평빌라 입주 후 처음 사는 것이라 무척 좋아했다. 점심 먹고 12시 25분쯤 집을 나선다. 성영 씨가 앞서고 나는 뒤따르며 중산마을까지 가서 큰길을 돌아서면 나는 되돌아온다. 퇴근은 사장님이 큰길에 내려주면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온다. 큰길에 차가 많이 다녀 염려되지만 성영 씨가 감당할 일이다.

일자리가 주는 유익은 정말 많다. 자신감이 생겼고, 입가에는 웃음이 있고, 걸음에는 건강이 보인다. 직장이 가까워 걸어서 출퇴근하니 감사하다.

2월 16일, 113일째. 점심을 먹고 출근했다. 명절 끝이라 함께 갔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 걷기 좋았다. 성영 씨는 사장님에게 인사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성영 씨가 한 달쯤 쉬어야 될 것 같다고 사장님이 말했다. 조류독감으로 닭을 많이 바꿔서 계란이 많지 않다고 했다. 한 달쯤은 쉬어도 괜찮다고 답했다.

설 선물이라면서 한라봉을 주셨다. 먼저 인사드리고 돌아왔다.

3월 3일, 휴직 중. 입주할 때 통장에 37만 원이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월급과 장애 수당을 절약해 150만 원을 모았다. 일부는 정기 예금을 하고 남은 돈은 보통 예금을 했다. 네 달 일하고 절약해서 모은 재산이라 150만 원은 의미가 크다. 가족이 없으니 결혼 자금이나 꼭 필요할 때 쓰려고 한다.

성영 씨는 군것질과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한다. 먹고 싶은 마음, 노래하고 싶은 유혹을 절제하며 알뜰하게 돈을 모았다. 다음 주에 통장 두 개를 갖는 기념으로 외식한다.

4월 7일, 휴직 중. 직장을 두 달간 쉬게 되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 보름이나 쉬었다. 오늘은 시간 내서 성영 씨와 아란애그에 갔다. 사장님이 부담 가질까봐 쑥 캐는 준비를 해서 갔다.

성영 씨를 앞세워 걸었다. 쉬는 동안 출근길을 잊었을까 염려했는데, 다행히 잘 찾아갔다. 걸음도 부지런했다.

농장 입구에서 사장님을 만났다. 반갑게 맞으셨다. 아직도 계란이 한 동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일이 많아지면 부르겠다고 했다. 날씨가 따뜻해서 쑥 캐러 왔다고 했다. 속내는 사장님이 성영 씨를 기억하기 바랐다.

4월 20일, 휴직 중. 아란애그 사장님이 계란을 주신다고 해서 성영 씨와 받으러 갔다. 사장님이 바쁜 중에 반갑게 맞으며 계란 일곱 판을 주셨다.

조류독감으로 계란 농장들이 어려웠습니다. 그때 성영 씨는 첫 직장을 잃었습니다. 이듬해 여름, 세차장에서 한 달 일했고, 그 후 옷 가게와 학습지 사무실에서 청소 일을 몇 년 했습니다. 어떤 사정으로 그만두었고, 지금은 미용실에서 청소합니다. 그마저 그만둘 형편이라 다시 직장을 구합니다. 여섯 번째 첫 월급을 기대하면서요.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