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둔 시기에 늘 나오는 이야기가 투표소의 접근성 문제나 후보자들의 정보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알권리 보장 등에 대한 문제 지적이다. 나 역시 장애인 등을 위한 거소투표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글을 등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어렵사리 거소투표 신청을 마쳤고 지난 주말 거소투표 안내문과 선거공보물, 투표용지와 회송용봉투 등이 든 등기우편물을 받았다.

지난번 칼럼을 쓸 때 이렇게 거소투표를 신청하고 나면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글을 적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김없이 딱 그런 형태의 투표용지와 우편물이 들어 있었다. 투표를 진행하며 또 한 번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투표용지 어느 칸에 어느 후보자 이름이 써 있고 어느 위치에 기표를 해야 하는지는 시각장애인이 확인할 방법이 없다. 거소투표다 보니 별도로 보조기구 등을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투표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좀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동봉되어 있는 ‘거소투표 안내문’이 그것이다. 일단 시각장애인 유권자인데 거소투표 방법에 대해서는 점자나 음성변환용 코드 같은 대체수단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무언가 QR코드가 인쇄되어 있기에 점자음성변환용 코드를 넣을 수는 없어서 부득이하게 QR코드로라도 거소투표방법을 안내하는 가 싶어서 스마트폰으로 인식을 해 보았다.

연결되는 페이지는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안내하는 페이지였고 거소투표 시 기표하는 방법 같은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 안내문의 좌측에 있는 ‘투표 시 유의사항’이라는 부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각장애인이 혼자 투표할 수 없는 우편물을 발송해 놓고 유의사항에 보란 듯이 “본인 이외의 다른 사람이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는 경우 처벌받을 수 있으니 반드시 본인이 투표해야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축구 경기에서 양발을 묶어 놓은 상태로 공을 손으로 치면 반칙이 되니 반드시 발로만 차시기 바랍니다 하고 안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거소투표 안내문. ⓒ조봉래

이런 저런 이해하기 힘든 것들 다 참고 확대독서기로 봐 가면서라도 투표 해야겠다 마음먹고 함께 들어있는 선거 공보물들을 보았다. 점자형 선거공보물들은 따로 배달되었었고 투표용지와 함께 동봉된 선거공보물은 비장애인들이 보는 인쇄물들이었다.

그런데 예닐곱 명 정도의 후보들은 점자선거공보물 대신 음성변환용 코드를 선택한 듯 공보물에 코드가 인쇄되어 있었다.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이 점자선거 공보를 의무화 하고 있고 점자공보물을 제작하지 않을 경우에는 음성변환용 코드라도 반드시 넣도록 하고 있으니 일부 후보들은 이렇게라도 했을 것이다.

지지하는 후보는 어느 정도 정해 두었지만 이 음성변환용 코드를 제대로 넣고는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일곱명의 후보 선거공보를 하나하나 음성변환용코드 어플로 인식해 보았다.

일단, 이 코드를 인쇄하는 위치부터 이상한 후보도 있었다. 보통은 우측상단 모서리에 인쇄하는데 자기 나름대로 디자인을 했기 때문인지 좀 많이 내려온 위치에 코드가 인쇄된 경우가 있었다.

또, 어떤 후보는 공보물이 가로로 넓게 인쇄되어 있어 코드의 위치를 찾는데 혼란을 주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래도 선관위에서 보냈던 거소투표신청 안내문처럼 인식도 안 되는 코드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는 ‘Untitled8’, ‘1페이지’, ‘책자형 16p 원고 0416’과 같이 제목조차 이상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던 것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공보물에 세금납부내역과 같은 자료들은 대부분 표의 형태로 인쇄가 되어 있는데 음성변환용 코드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 표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까닭인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만 한 텍스트로 바뀌어 있었다.

이 자료들만 가지고 후보자의 정보들을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듯 했다. 점자공보물이 좋은지 음성변환용 코드가 좋은지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존재하고 있으니 굳이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점자선거공보물이 점역사와 교정사가 검수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음성변환용 코드를 택한 경우에도 시각장애 당사자의 검수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면 좀 더 제기능을 할 수 있는 선거공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직도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들의 선거권 보장에 미온적이기만 한 현실이 유감스럽다. 우리나라의 장애출현율이 대략 5%내외라고 한다. 한 가구당 인구를 대략 4명 정도로 잡는다면 장애인이 속한 가구의 총 인구는 전체 인구의 20%가량이 되는 수치이다.

비교적 주목을 받고 있는 후보자들 중에도 지지율이 20%내외에 불가한 후보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원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선거가 있을 때 마다 늘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장애인들의 선거권 보장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하루 빨리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