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말에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건강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령은 만들어졌지만 건강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시행령, 시행규칙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시행령, 시행규칙을 잘 만들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 의견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장총련)에선 그 의견을 듣고자 장애인아고라 ‘당신의 건강, 안녕하십니까?’를 지난 18일에 개최했다.

필자는 장애인 건강권에 관심이 있어 이번 아고라에 참석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당사자들은 의료서비스 이용·접근, 의료비 등의 측면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장총 김동범 사무총장과 장애인아고라 패널들 모습 ⓒ이원무

먼저 장애인의 의료서비스 이용·접근에 관련해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 패널은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더니 의사선생님이 못하겠다고 대충 하고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들으며 필자는 의사가 그 당사자에게 증상에 대해서 알기 쉬운 말로 설명을 전했는지가 궁금해져 후에 사)함께가는송파장애인부모회 김경미 총괄국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어디가 아파요?’라고 하면 그 당사자가 어디가 아프다고 대답한 후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더 이상의 소통이 진행되지 못했다 한다. 증상에 대해 그림, 손짓, 알기 쉬운 말 등의 상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오영철 소장은 건강검진 건으로 병원을 방문했는데,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일어서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이 말을 듣고는 ‘나 전동휠체어 탔는데요, 못 일어섭니다.’라고 말하며 병원 측과 10분 정도 실랑이를 벌였다 한다. 한 척수장애인 당사자 패널도 병원 검사실에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또 응급상황이 생겨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자필서명이 되지 않아 서명할 수 있는 가족이 와야 하는 기다림이 힘들었다고, 토로한 시각장애인 당사자 패널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들으며 필자는 의료진의 장애인식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것을 의료진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실제로 의과대학이나 대학원에서는 장애인식이나 장애인의 특성 등을 알 수 있는 교과과정이 있어도 필수가 아닌 선택교과이고 이를 수강하는 의과생이 많지 않다. 그게 현실이다 보니 의과생들이 의사가 돼도 장애인에 대한 지식, 감수성이 부족한 상태라 진료, 수술 등에 있어 장애인을 꺼리는 심정이 이해된다.

장애인 치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일재단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도 치과대학에서의 공부과정에 학생들이 장애인에 대해 공부하는 커리큘럼이 없고 장애인치과학을 배우는 대학, 대학원에 있다 해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들으니 그런 환경에서 치과의사들의 장애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국가는 의료진들이 의과대학, 치과대학, 대학원 등에서 장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교과과정을 거칠 수 있게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함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래야 의료진들의 장애인식 제고가 되는 길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내용이 장애인건강권법 시행령, 시행규칙에 녹여졌으면 한다.

또한 응급상황에서의 장애유형과 정도, 성별, 연령에 따른 대응매뉴얼을 개발해 모든 병원의 응급실, 근무자에게 배포 및 교육 실시가 이루어지는 것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도 장애인건강권법 시행령, 시행규칙에 녹여졌으면 한다.

의료서비스 이용 시 불편을 토로한 당사자 패널들 모습, 좌측에서부터 충남시각장애인연합회 박재흥 천안시지회장,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윤도균 대의원,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김형희 대표, 발달장애인 당사자 이현우씨와 사)함께가는송파장애인부모회 김경미 총괄국장, 서울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오영철 소장 ⓒ이원무

의료비와 관련해서는 과다한 비용에 대한 불만을 당사자들이 쏟아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의 한 관계자는 여성장애인 임신·출산과 관련해 아이의 장애여부를 검사하는 것들이 다 비급여인 것 등 비용이 어마 무시하지만 정부는 고작 100만원 지원이 다라며 여성장애인 임신출산비용의 현실적 증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영철 소장도 의료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얼굴에 맞는 보톡스는 뇌병변장애인에게는 피부미용이 아닌 근육이완용이고 보톡스 한 방에 50만원이라 분기별로 맞으면 200~300만원 정도 되어서 소득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자세의 경우도 문제가 있어 목 디스크가 올 것 같다고 걱정했는데 이와 관련한 수술비용이 비보험이고 500~1000만원 정도라 역시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장애유형별 비급여 항목 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비급여의 급여화를 바라는 입장을 전했다.

김경미 총괄국장은 장애가 심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경우에 도전적 행동을 경감시키는 정신과 약이 비보험이라 의료비 부담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척수장애인, 신장장애인 당사자 패널들의 경우엔 각각 간병비, 신장이식비용이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의료비 부담이 상당한 게 현실인데, 이와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서는 적립한 준비금을 투자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올해의 안을 작년에 발표했다. 현재 적립한 준비금이 20조원 정도 되고,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 2항에서는 이 준비금을 보험급여 비용과 지출 현금이 부족할 시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투자 목적으로 준비금을 쓴다면 장애인의 의료비 부담은 언제 줄여질 것인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조원의 준비금에서 일정 부분을 장애인 의료비 경감에 쓸 수 있도록 건보공단의 준비금 투자안을 다시 재고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준비금에서 나오는 이자수익만 해도 공공병원 5~6개를 지을 수 있는 금액이라 한다. 따라서 이자수익을 공공의료 시스템 구축에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의료비 경감 및 공공의료체계 구축 등의 구체적 내용이 장애인건강권법 시행령, 시행규칙에 녹여졌으면 한다.

이런 의견들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안국형 보좌관은 특정한 질환, 장애유형, 장애정도에 따라 공통진료와 이에 따른 공통매뉴얼을 만들어 불필요한 의료 비급여를 줄이게 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주시하자.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 25조 건강과 관련해 환자가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모습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이외에도 청각장애인 당사자 패널은 대형병원에 수화통역사가 없고, 들을 수 없는 관계로 어느 병원이 좋은지 알려면 직접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등의 불편함이 있다고 말하며, 수화통역사 의료기관 배치 의무화와 병원의 다양한 정보 인프라 구축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 내용도 장애인 의료서비스의 정당한 편의의 일환으로 시행령, 시행규칙에 담겼으면 한다.

이번 아고라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여러 불만과 의견을 쏟아냈지만 결국엔 장애로 인한 추가적 의료비 부담 경감, 의료진의 장애인식제고와 이를 위한 환경마련, 장애인 의료서비스와 관련한 정당한 편의 제공 등을 했으면 하는 바램을 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한국장총과 장총련에서는 이번 아고라에서 나온 의견을 취합해 장애인건강권법 시행령, 시행규칙을 만들 때 보건복지부에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 아고라처럼 앞으로도 건강권법 시행 전까지 장애인 당사자들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몇 번 더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욱 많은 의견들이 취합되고 걸러져 필요한 부분을 담아 장애인당사자 관점이 충분히 반영된 장애인건강권법 시행령, 시행규칙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이 건강할 권리를 제대로 누리는 시작점이 되길 필자는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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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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