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있는 그 그림 ⓒ최선영

조금은 한가로운 오후...

tv 앞에 앉은 그는 영화를 봅니다.

그는 화면 속에 보이는 한 남자에 시선을 빼앗겨 잠시 일시정지를 누른 채 화면과 함께 그의 모든 생각도 몸동작도 일시정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화면 속 그와 함께 그는 모든 것을 멈추고 첼로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그는 다시 화면을 재생합니다.

'굿바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은 첼리스트였습니다.

그가 속한 오케스트라가 해체되면서 실업자가 되고 고향으로 내려가 새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데​...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첼로를 켜며 그의 지친 마음을 달래는 모습을 본 그는 첼로에 대한 매력에 그만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도 저 주인공처럼 첼로 연주를 하고 싶다..."

그는 혼잣말을 하며​ 첼로를 배워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첼로를 배우겠다는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악기를 구입하고 레슨 선생님을 알아보고...

이런 사소한 일들이 그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사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가 만난 시청각 중복 장애라는 또 다른 삶을 통해 그는 다른 사람과 조금은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도 알 수 없이 어느 날 그에게 불쑥 찾아온 시청각 중복 장애... ​

그는 저시력 고도 난청으로 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영화 속에 흐르는 첼로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첼로의 진동이 들려오는 그 느낌으로 첼로의 깊고 아름다운 소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굿바이'를 본 이후 그가 바라는 첼로에 대한 꿈이 현실이 되는데 걸린 1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선뜻 첼로를 지도해주겠다는 선생님이 나서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에게 첼로를 지도해줄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그의 바람을 하늘은 외면하지 않고 그를 이해하며 정성껏 지도해줄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레슨 받던 날 첼로를 켜는 그 그림 ⓒ최선영

첫 레슨을 받던 날...

선생님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그의 장애를 잘 이해하며 섬세하게 그를 첼로와 하나 될 수 있도록 지도해주었습니다.

케이스를 열고 갈색의 첼로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려 꼭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설레었습니다.

활 잡는 법, 송진으로 할 닦는 법 첼로의 구조와 각 명칭 첼로 다루는 방법 등을 설명 받은 뒤 첼로의 4줄을 활로 긋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첼로를 배우게 되어 기쁜 건 사실이지만 그는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청력으로 과연 첼로 소리를 들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그의 걱정은 첼로의 줄을 긋는 순간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첼로의 진동이 들려오는 게 느껴졌고 그 감동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소리를 정확하게 들어내지는 못하지만 감각으로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첼로를 전공해도 될 만큼 재능이 있어요..."

선생님은 그에게서 재능을 발견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할게요"

그는 첼로를 배우며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선생님의 칭찬을 기억하며 다시 용기를 내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를 많이 이해해 주시는 선생님과의 레슨이었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레슨을 받을 때도 노트북을 펼쳐놓고 선생님이 그에게 하고싶은 말을 타이핑으로 치면 그는 그걸 보면서 레슨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흐름이 흐트러지기도 했기에 습득이 더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선생님도 말이 아닌 자판을 통해하다 보니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게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부족함을 그는 연습으로 채워나갔습니다 .

"선생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편하지 않을까... 희미하게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는 그런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어두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래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첼로를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 그를 잘 이해해 주었던 선생님은 1년이 좀 지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좀 더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지 못하는 것을 선생님은 많이 안타까워 했고 그도 큰 아쉬움에 많이 서운했습니다.

"시작했으니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배우기를 바랄게요...미안해요..."

선생님은 끝까지 지도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뿌려놓으신 그 수고가

열매가 되도록 할게요"

그도 선생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신 후...

얼마나 선생님이 그를 위해 열정적으로 지도했고 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새롭게 만난 선생님과의 수업으로 첼로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계속되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첼로 레슨은 중단되었습니다 .

​하지만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평생 친구처럼 첼로와 함께 하려 했던

첼로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현관에 붙여져 있는 이웃이 보낸 쪽지 그림 ⓒ최선영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근무하며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어느 날 현관문 앞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같은 건물 거주자인데 악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러는데 자제 좀 해주세요"

쪽지를 보고 누구에겐가 피해를 주었다는 미안함과 첼로 연주를 마음껏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속상함 때문에 그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우두커니 혼자 서 있는 첼로를 바라볼 때마다 그의 마음에 작은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했습니다.

첼로를 켤 수 없는 공허함으로 몇 날을 보내다 그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포스트잇을 꺼내고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고 첼로 켜는 것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매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딱 한 시간만 연주할 테니... 시끄러우시더라도 조금만 양해를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그리고 그는 쪽지에 폰 번호를 남겼습니다. 그래도 시끄러워서 안된다고 하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웃들 문 앞에 쪽지를 붙이고 "이래도 되나..." 그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겠다고 이렇게 이기적이어도 되나..."

​그의 걱정은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그에게 속속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인생의 즐거운 부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해서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저는 당연히 찬성이고요. 예쁜 첼로 연주 잘 감상하겠습니다"

이웃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는 그 그림 ⓒ최선영

세상의 따듯함에 사람들의 배려에 그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그는 학교에 나가는 날 외에는 오후 1시가 되면 첼로 연주를 합니다.

그렇게 첼로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어 그는 기뻤지만 첼로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너무 큰 소음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장 마음에 감동을 주었던 문자를 보내 준 이웃에게 "소리를 확인할 수 없어서 도움을 청합니다 첼로 소리가 어느 정도로 들리시는지..."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처음 그의 문에 붙어 있었든 그 쪽지가 내내 마음에 불편한 걸림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송해요... 제가 처음 그 쪽지 붙인 사람이에요... 시끄러울 정도로 방해가 된 건 아니에요 그저 방음도 잘 안되는데서 연주하는 거 같아서 ​한 마디 드린 건데...

첼로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체 그런 쪽지를 붙여놓았는데 양해해달라는 답글을 보고 나름 죄책감 같은 것도 들었어요. 제가 너무 경솔했구나 싶기도 했고... 마음에 걸려 하지 마시고... 아름다운 첼로 연주 많이 들려주세요"라고 답이 왔습니다.

그는 늘 마음에 걸려있던 불편함을 털어내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따스한 봄...

이제 그는 첼로를 들고 캠퍼스로 나갑니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캠퍼스의 봄을 느끼며 첼로를 켭니다.

캠퍼스에서 첼로 연주를 하는 그 그림 ⓒ최선영

추운 겨우내 집에서 연습해야 했던 그에게 이웃은 배려라는 좋은 공간을 선물해 주었고 그 배려 속에 그는 집에서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연습으로 그의 실력은 더 좋아졌고 그리고 그는 강의 후에도 아이들에게 연주를 해줄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었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장애청년 드림 팀 국내캠프 장기자랑 때도 그의 첼로 연주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시간을 만들었고, 시청각 중복 장애인 자조모임 송년회에서도 그 밤을 아름답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첼로 연주는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연주를 듣는 모든이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꿈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있어도 도전해 보지 못하며 삶에 묻혀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도 시간과 환경을 핑계로 미루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는 시청각 중복 장애라는 조금은 낯설고 많이 불편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학교에서 강사로...

기자로...

첼로를 연주하는 연주자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며 꿈을 이루고 바라는 것에 도전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어딘가가 불편함을 볼 때 장애라고 생각하며 그런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것이 장애인지... 과연 누가 장애인인지... 그를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아름다운 삶은 혼자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그의 꿈이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 준 선생님과 그의 연습을 응원하며 지켜봐 준 이웃과 그가 용기 있는 삶을 살아내도록 늘 응원해주는 가족과​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과의 어우러짐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배려가 만들어 낸​ 그의 연주가 세상을 아름답게 치료하는 소리로 이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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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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