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순환식 피난설비의 구조. ⓒ서인환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에서 화재가 발생한 층의 사람들은 화재사실을 알고 대피하였으나 위층의 사람들은 대피 도중에 유독가스가 상부로 올라와 희생되는 일이 있었다. 고양시 시외버스 터미널 지하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현장의 인부들은 대피를 하였으나, 유독가스가 위로 상승하여 상부층의 사망자가 7명이나 발생하였다.

건축물의 고층화에서 장애인의 화재시 대피 수단으로 휠체어 의자 뒤에 롤러를 부착하여 계단에 슬라이딩 레일을 설치하여 구조인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는 방안이 연구되기도 하였으나, 구조인을 기다리는 동안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하강식 피난설비로 줄이 달린 낙하산처럼 내려오는 방안이 연구되기도 하였으나, 고층에서 내려오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엘리베이터 전원이 차단되고 출구가 화재로 막히고 나면 비장애인도 대피할 방법이 없다. 피난 사다리나 로프를 이용한 탈출 등이 오히려 낙상사고를 일으킬 수 있고, 이러한 피난설비는 장애인에게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공기순환식 피난설비’는 건축물의 창쪽 절개면에 대피공간을 마련하여 구조가 이루어질 때까지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안전하다는 말은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이동에서의 접근성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고, 열과 유독가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안전박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박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유독가스도 함께 유입될 수 있으므로 외부에서 신선한 공기가 공급된다. 그리고 화재로부터 차단되는 벽이 있고, 이 벽은 외부에서 1천도의 열이 가해져도 내부 온도는 거의 변화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내부의 온도가 유지되는 것은 공기순환식으로 외부의 찬 공기를 이중벽의 공간을 돌게 하여 식혀주기 때문이다. 주전자에 차가운 얼음을 넣으면 공기와 접촉하는 주전자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다. 사막에서 흰개미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집을 짓는데 여기서 사람들은 힌트를 얻어 집을 높게 지어 집의 벽들을 이어 좁은 골목을 만들어 더위를 피하고 집도 냉방시설 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게 한다.

딱정벌레나 사막풍뎅이 등은 그 건조한 사막의 공기 속에서 안개의 작은 수분을 수집하여 습기와 체온조절을 하는데, 이러한 기술이 공기순환식 피난설비에 숨어 있다. 온도가 높아진 공기는 위로 상승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피난박스의 천정의 높이를 비스듬하게 하여 내부의 열을 빼앗아 공기가 밖으로 나가게 한다.

공기순환식 피난설비의 출입구와 아파트 각층의 설치모습. ⓒ서인환

화재가 발생하면 건물 주위에는 온통 유독가스로 포위된다. 그런데 어떻게 신선한 공기가 유입될 수 있을까? 공기순환식 피난설비는 1층부터 설치가 되며 지상에서 유입된 공기가 각층의 공기순환식 피난설비로 한 층씩 올라가면서 흡입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공기순환식 피난설비는 출입구가 휠체어가 접근 가능하도록 유효폭을 900mm 이상 확보하여야 한다. 그리고 15cm 정도의 단차를 극복하기 위한 경사가 급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내부 공간의 너비가 회전공간까지는 확보하지 않더라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 1500mm 이상은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규격은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며, 안전 시험에서는 이러한 규격을 감안하여 시험하였다.

이러한 공기순환식 피난설비가 각 층에 설치되면 장애인은 비상시 최단거리로 이 공간으로 대피하여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리면 될 것이다. 이 공간 안에서는 화재로부터 절대 안전하다.

다만 이러한 설비를 갖추도록 촉진하기 위해서는 용적률에서 제외시켜 주는 등의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며, 편의증진법이나 소방시설 관련 법률에서 장애인의 피난설비로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공기순환식 피난설비는 장애인만이 이용하는 설비가 아니라 장애인도 이용 가능한 피난설비이다. 피난약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설비이다.

ISPL에서 개발한 이 피난설비는 관련 전문기관이 안전평가를 하였고, 고층건축물에서의 장애인의 피난대책으로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는 좋은 평가를 하였다.

1층에서도 장애인은 피난이 어려울 수 있어 소방시설물 관리법에서는 피난설비를 갖추도록 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이 피난설비는 매우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장애인의 피난설비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점멸등을 이용하여 비상을 알리는 것이 고작이었고, 각종 피난설비나 기구는 장애인에게 적합하지 않아 대피공간을 별도로 확보하는 방안만이 고려되고 있었는데, 그 대피공간도 방화문을 이용하여 유독가스나 열을 차단하기는 하지만 완벽하지가 못하였다.

이 공기순환식 피난설비는 이동이 어려운 최중증 와상장애인도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구조를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유독가스가 퍼지기 전에 일부 흡입을 하였더라도 다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생명을 구할 것으로 기대된다.

외부에서 1천도의 열이 가해졌을 때의 20분 후와 30분 후의 내부 온도의 변화. ⓒ서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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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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