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은진슬

내가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의 절친 일본인 친구는 한국의 산후조리원 시스템이 너무 부럽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 자신은 미혼이었는데도 말이다. 같은 동양권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일본 역시 서양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산후조리 문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산후조리원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갑론을박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런 것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새내기 엄마에게는 구원의 불빛과도 같은 곳임에는 틀림 없다.

한 손으로 꼭 쥐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갓난 아기를 어떻게 안아 주어야 할지, 기저귀는 대체 어떻게 갈아 줘야 할지, 젖은 어떻게 물려야 하며, 모유량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하기만 한 초보 엄마들이 파자마 바람으로 둘러 앉아 앞으로의 육아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하며, 숙달된 조교에게 아기를 케어하는 법을 배우고, 미니 베이비페어 수준의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하며, 앞으로 그녀들의 인생에 펼쳐질 전투육아에 대비하면서 끈끈한 전우애를 다지는 곳.

남자들에게 약간은 부풀려진 풍선과도 같은 ‘군대이야기’가 있다면, 여자들에게는 다소 과한 시럽과 크림이 들어간 커피와도 같은 ‘조리원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새내기 엄마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이자 구원과도 같은 산후조리원, 과연 장애엄마들에게도 그런 곳일까?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산후조리원의 이용 단가는 대부분의 장애인 가정에서 부담하기에 너무 높다.

아무래도, 비장애인 가정에 비해 장애인 가정의 소득은 여러 모로 낮을 수 밖에 없다. 고용률도 비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가, 일상생활에서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출산할 때는, 장애여성이나 장애가정에 대한 출산지원금 같은 것이 제대로 없었는데, 그나마 요즘에는 지자체 별로 기준이 다르기는 해도 조금이나마 출산지원금이 지원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 준비를 위해서는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의료비 및 돌봄 비용 등 너무 많은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기에, 산후조리원에 갈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장애가정이 너무도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장애여성 당사자가 출산할 때에라도 복지 바우처 형태의 지원금을 통해, 산후조리원 비용의 일부라도 지원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으로는, 산후조리원의 장애인 이용 가능성(?) 내지는 이용 편의성(?)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출산을 앞둔 장애인이 돈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수 있을까?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다.

나의 경우, 임신 중기 때, 이러한 문제를 염려하시던 친정엄마께서 올케가 두 아이를 낳고 몸 조리했던 산후조리원에 함께 가셔서, 나에게 장애로 인해 산후조리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데에 어떤 불편함이 있을지를 미리 설명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점검하고 예약을 진행했었다. 다행히, 원장님도 사명감을 가지고 조리원을 운영하시는 분이셨고, 내 상황을 잘 이해해 주셔서, 적재적소에 적절한 도움을 주셨다.

아이에게 젖을 제대로 물리기가 어려워 고생하는 나를 위해 신생아실 선생님들과 원장님께서는 수유 시간이 되면 밤이고 낮이고 직접 아이를 내 방으로 데리고 와, 시각장애가 있는 내가 편하게 수유 자세나 요령을 배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다.

뿐만 아니라, 원장님께서는 선배맘 입장에서, 장애엄마로서 더욱 더 불안하고 걱정될 수 있는 내 심리적인 측면까지 잘 다독여 주셨다. 덕분에, 2주 동안의 조리원 생활을 마칠 때는 앞으로의 엄마 노릇에 조금은 자신감이 붙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듯 하다.

나의 경우, 운 좋게 좋은 원장님과 조리원을 만나, 비교적 편안하고 좋은 산후 조리 경험을 가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산후조리원에 입소하려고 해도, 받아주지 않는 곳이 부지기수이다. 게다가, 장애에 따른 여러 가지 접근성 문제 역시, 장애산모들의 산후조리원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주된 원인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이용했던 조리원은, 서울에서 산모들에게 식사의 질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공동 배식 형태로 운영되는 식당이라 시각장애인인 내게 편할 리가 없었다.

산모는 잘 먹어야 한다는데, 처음 며칠 간 밥을 먹을 때는, 공간이 익숙하지도 않고 사람들도 잘 모르니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아 식사시간이 매우 불편했다. 물론, 차츰 사람들 얼굴도 익혀 가고 내 사정도 알게 되니 점점 도와주는 사람도 생겨 식사가 덜 불편해 지기는 했지만, 시각장애인에게 뷔페식 단체 배식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요즘에는 개별 배식에 방으로 가져다 주는 조리원도 많으니 시각장애인이라면 그런 곳을 선택하는 것도 스트레스 지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산모들이 이제 막 아이를 낳고 본인들조차 몸이 회복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 신경이 자기 아이를 돌보는 데에 가 있기에, 내가 장애가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 해도, 편하게 어떤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 좀 불편하고 쉽지 않은 환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산후조리원의 Care-giver들이 장애산모의 어려움을 잘 도울 수 있는 인성적 자질과 실질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장애산모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하여, 장애부모의 산후조리원 이용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산후조리원을 처음 설립할 때부터 최소한의 장애인 접근성을 갖출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강화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산후조리 관련 인력을 양성, 교육할 때, 장애이해교육 및 장애인을 케어하는 기본적인 방법 등을 의무적으로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산모의 장애가 너무 심하여 조리원 보다는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편한 경우,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전문성을 갖춘 산후 도우미 서비스를 적절히 지원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산후도우미 파견 서비스의 대상 및 기간을 좀 더 확대하여, 출산과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장애엄마들에게 좀 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제공되기를 바래 본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일이다.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모든 예비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은진슬

엄마 노릇의 시작은,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어렵고 두려운 일일수록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처음 엄마가 된 장애산모들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자원이 제공된다면, 엄마가 자신의 장애 때문에 부모로서의 효능감 내지는 유능감에 회의를 느끼거나, 자신감을 상실하여 주양육자 역할을 시어머니나 친정엄마에게 넘기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사족이 길어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예비 장애엄마들에게도 말해 주고 싶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의 엄마 자격에 의심과 회의의 눈초리를 보낸다 해도, 지금 당신의 뱃 속에 있는 그 아이의 엄마는 당신이다. 그러니, 아무리 겁이 나도, 걱정이 되어도, 당신은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가서, 어리버리한 내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며 엄마라고 선언하는 일이, 4개월 아기를 안고 처음으로 문화센터에 가서 나는 장애엄마라고 말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용기를 내어 엄마로서의 사회생활의 첫 시험대인 산후조리원에도 가기를 바라며, 문화센터에도 당당히 가기를 바란다.

비록, 처음 시작은 힘들겠지만, 이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앞으로 당신의 장애엄마로서의 지난한 여정의 성패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되어 줄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장애인의 부모됨에 관한 이야기들을 열심히 쓰면서 당신의 ‘엄마됨’을 열렬히, 격하게 공감하며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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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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